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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12월
  • 2002.12.01
  • 1153

'식품 갖고 장난치는 거 참지 맙시다!'


차림이 남루한 날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미인과의 약속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검지와 중지에 잉크가 잔뜩 묻은 데다 꾀죄죄한 손을 내밀기 민망할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닌 날이었다. 그도 그랬단다. 간밤에 1시간반밖에 잠들지 못했고, 저녁 6시까지 방송녹음 하느라 녹초가 되어 매니저에게 이렇게 부탁했단다.

“이번 달 아니면 그 잡지 폐간한다냐? 교통사고 났다 하고 미뤄줘, 제발.”

그래도 그는 칼같이 약속시간에 나타났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피곤한 기색이 없다. 사진촬영을 하는 동안 내내 싱그러운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역시 그는 프로였다. 오히려 지치는 쪽은 이편이었다. 어디 앉을 데 없나, 어슬렁어슬렁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는 모습이라니…, 동물원 곰순이와 다를 바 없었다.

가끔 운전할 때 나는 그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춘다. 그럼 절대 졸음운전을 할 수 없다. 경쾌한 그의 수다를 듣느라 눈물마저 훔지며 배꼽빠지게 웃는 모습을 차창밖 다른 운전자가 본다면? 아마도 정신나간 여자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래도 난 가끔 정오가 되면 FM라디오 107.7에 주파수를 맞춘다. 그와 만나기 위해서다. 상큼한 사과같은 여자, 최화정. 그에게 요즘 신문을 읽을 때 가장 답답한 것은 뭐냐고 물었다.

대선 앞둔 정쟁 꼴불견

“제일 답답한 게 정치판이죠. 테러소식도 사람 불안하게 하지만 대선 앞두고 정쟁하는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에요. 아주 어렸을 땐 개중 똑똑한 사람이 정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생각은 달라요. 학연, 지연이 얽히고설켜 막상 대통령에 당선되면 합리적인 생각은 저버리고, 얘, 쟤 다 생각해주다 결국 부정부패에 묶이게 되나봐요.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치 한번 하겠다… 왜 그런 게 안될까요?“

그는 투표 안한 지 오래라고 했다. 권리행사를 왜 하지 않느냐고 되물을 지 모르지만 그는 신성한 한 표로 정치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고난 뒤로부터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단다. 여느 동네 민초들처럼 그에게도 정치불신이 배어 있다.

“지난 총선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한 정치인이 2년동안 세금 한푼 안냈다고 그랬어요. 2년동안 수입이 없다니 정말 기가 막혀 웃음밖에 안 나와요. 월급쟁이들은 꼬박꼬박 세금 내는데 성형외과, 치과의사들은 1년에 돈 천만 원 내면 끝이야. 정말 세금 내고 싶지 않아요. 물론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그리 투명한 건 아니에요. 미장원에서 영수증을 끊어주나, 쑥탕에 가서 영수증 달라 할 수가 있나, 발맛사지 한다고 영수증 주나…. 아무리 그래도 국민들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을 거예요. 여기에 이런 생각도 팽배해 있어요. 야, 누가 세금을 다 내, 미쳤어? 조세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니까 그런 거예요. 국가적으로 보면 손해라고 생각해요.”

그는 지방자치단체 단위별로 예산낭비 사례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집 앞 도로 보도블럭을 이유없이 1년에 4∼5회 정도 뜯는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연말에 자치단체 단위별 예산이 줄어들까봐 관계당국이 쓸데없이 국민 세금을 허비하는 게 아니냐고 일침을 놓았다. 그의 지적은 이미 ‘함께하는시민행동’으로부터 ‘밑빠진 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대표적 예산낭비 사례 중 하나다.

최화정 씨는 일요일 저녁 TV프로 중 ‘러브하우스’ 코너를 보다 곧잘 눈물을 쏟는다. 아직도 저렇게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서 떨어지는 청정수이다. 가끔 그는 신문의 작은 상자 미담기사를 읽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ARS성금 올라가는 걸 보며 뿌듯해한다. 아무리 몹쓸 세상이라지만, 여전히 한 구석 어딘가엔 따스한 온기가 서려 있다는 게 감사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이렇다.

“랩퍼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내잖아요. 전 그때 이런 생각을 해요. 정말 저런 이들이 잘 살아야 한다고. 부유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삶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후진국일수록 자신의 일을 하면서 만족하고 살기 어렵잖아요. 좋은 차 있다고 으시대고, 프라다 구찌 명품으로 잰다면 그건 좋은 의미에서 삶의 질이 높다고 말할 수 없는 거죠. 환경을 생각할 줄 알고, 남을 돕고 사는 미덕 이런 게 얼마나 우리 가치관 안에 있느냐, 그 자체가 정말 큰 교육인데 우린 그 점을 간과하고 있어요.”

행복의 기준과 삶의 질

그런 차원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연예인들이 공익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마약퇴치콘서트, 환경콘서트 등 서서히 물꼬가 터져 다양한 차원에서 공익활동을 하고 있는 동료 연예인들을 볼 때 고무적이란 생각이 들고, 그 자신도 개인적으로 몇몇 단체를 돕고 있다고. 하지만 활동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참 힘들다고 고백했다.

“차라리 한꺼번에 백만 원 이렇게 내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매월 꾸준히 하기란 참 어렵더군요. 동료들끼리 뭘 해보자고 제안해도 흐지부지되기 십상이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라도 기부하고 있어요, 얼마 안 되지만. 그런데,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건 후원자들이 계속 후원하고 싶도록 카드도 예쁘고 깜찍하게 만들면 좋겠어요. 너무 딱딱하고 심각하게 하지 말고.”

그가 느끼는 시민운동에 대한 이미지도 비슷하다. 딱딱, 심각, 경직….

“좀 부드러워졌으면 해요. 반대편이면 다 응징해야 할 대상이라고 낙인찍지 말고, 설득할 수 있는 지혜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간혹 지나친 흑백논리에 빠질 때가 있어요. 그러지 말았으면 합니다. 너무 비장하게 얘기하기보다는 세련되고 쉽게 얘기했으면 해요.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동조할 수 있겠죠.”

앞으로 살면서 관심두고 싶은 분야는 환경문제. 후손들이 살아야 할 이 땅을 좀 잘 보전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냐는 것. 15년 전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에비앙 생수병을 들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했는데 불과 몇년만에 우리도 생수병을 들고 다니게 됐다며 그는 얼마 안 가 공기통 들고 다니는 사람이 부유층이 될 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환경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거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할 이슈라는 것.

“무엇보다 저 이건 더 이상 못 참아요. 만일 제가 나랏님이라면 식품 가지고 장난치면 큰죄를 내릴 거예요. 쓰레기 부대찌게, 납 넣은 꽃게, 숫가루 섞인 메밀국수 이게 말이나 되나요? 일본은 불량식품이 나오면 해당회사는 문을 닫게 된대요. 그런데 우린 어느 회사가 그랬는지 이름도 안 가르쳐줘요. 그냥 다 H사야. 정말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정교한 논리로 말하는 그는 청산유수였다. 학교 다닐 때부터 브라운관에서 봤던 그는 지금도 <젊음의 행진> MC를 하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새뮤얼 울먼의 말처럼 그의 “청춘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인 모양이다. 언제나 프레시맨(freshman) 같은 그를 10년 후에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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