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9월 2001-09-01   1026

관변단체 지원에만 익숙한 한나라당의 자가당착

관변단체 지원에만 익숙한 한나라당의 자가당착

“시나리오대로, 언론장악 문건대로, 검찰이 흘리고, 방송이 불어주고, 외곽단체가 호응하는 방식으로…. 검찰 고발 후 매일매일 단체별로 돌아가며 하는 언론개혁지지 시위는 배후 사령탑에 의해 조정 의혹이 짙다. 이들 단체를 조정하는 단체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 박관용 위원장은 7월 26일 ‘검찰, 친여매체, 외곽단체는 한통속인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돌리며 언론개혁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에 발끈한 시민단체들은 한나라당사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 일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8월 14일 박 위원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지원을 받고)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일부 시민단체들을 배후조정하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는가.

“평소에는 언론개혁과 무관한 단체들도 언론사주에 대한 검찰 수사 착수 이후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물론 언론개혁시민연대 같은 단체들은 그렇지 않지만….”

그럼 일부 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꼭 돈과 연계시키는 것은 아니다. 뉴스를 모니터한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김영삼정권 때부터 시민단체에 정부지원금을 주기 시작한 것 아닌가.

“그 이전부터 정부는 단체를 지원해왔다.”

김영삼정부 때와 비교해 특별한 차이점은 없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모르겠다.”

김대중정부 들어 정부보조금의 근간이 되는 민간단체지원법 제정은 여야가 합의한 사항이다.

“그런가?”

시민단체들은 여야 합의로 법을 제정해놓고 시민단체의 정부지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하는데.

“건전한 시민단체의 지원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자활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가 정부가 추진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정의는 가급적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순수한 단체를 말한다.”

언론사주의 탈세혐의가 있다면 마땅히 구속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주장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 문제라면 조세범 처벌법이 있다. 법대로 하면 된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들의 주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문제는 현 정부가 권력을 동원해 언론을 손대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한나라당처럼 ‘정부의 언론장악 의도’를 비판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가급적 (정부로부터) 돈을 지원받는 단체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나선다면 의혹을 사기가 쉽다는 말이다.”

관변단체만 국고보조금 줘라?

박 위원장이 이처럼 일관되게 일부 시민단체들에 대한 정부의 배후조종혐의를 내세운 근거는 7월 9일 검찰의 신문사주 본격 소환 이후의 ‘방송모니터 요약자료’이다. 이 자료에는 7월 25일까지 시민단체들의 시위 내용과 이에 대한 방송3사의 보도 내용이 요약돼 있다.

이 요약자료 윗부분에는 ‘검찰수사 보도에 연이은 시민단체 지지상황 보도실태’라는 부제가 표시돼 있지만 검찰의 수사발표를 시민단체들이 받아서 시위를 벌였다는 인과관계에 대한 분석은 없다. 단지 매일 검찰의 수사 속보가 올라오고, 시민단체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것을 나열했을 뿐이다. 한나라당은 이를 근거로 제시며 ‘방송 3사가 검찰의 수사 진척 상황을 알리고, 시민단체들의 활동상을 보도했다는 것에 대해 3자가 공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배후조정세력으로 지목한 대상은 전국적인 시민사회단체의 상설협의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이다. 특히 박 위원장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표 중 14개 단체들이 금년도에 행자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을 지적한 뒤 이들이 ‘홍위병식’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4·11 총선 때에도 이와 흡사한 주장을 해 시민단체들로부터 반발을 산 적이 있다. 행자부가 시민단체들에게 지급하는 프로젝트 지원금은 한나라당이 시민단체들을 공격하는 단골메뉴인 셈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현재 문제삼고 있는 민간단체지원법이 탄생하는 데 한나라당 스스로가 기여한 역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나라당은 98년 정기국회 때 정부가 낸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 150억 원을 ‘신관변화’기도라면서 문제를 삼다가 막상 새정치국민회의와 협상에 들어가서는 보조금 수혜 대상으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자유총연맹 등 ‘구 관변’만을 고집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신 관변화’ 보다는 ‘구 관변’에 대한 지원이 축소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민간단체지원법은 한나라당의 이 같은 ‘옵션’을 전제로 통과됐다.

한나라당의 ‘옵션’은 행자부의 1차 지원 결과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3대 관변단체들은 행자부의 자체 지원금 75억의 41%에 달하는 30억8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행자부는 나머지 액수를 120여 개 단체들에게 쪼개서 지원한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지적하는 한나라당의 또 다른 이율배반은 민간단체 지원사업을 심사할 심사위원을 직접 추천하고도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민간단체 지원사업을 심사한 12인의 심사위원 중 3명이 국회추천으로 이뤄졌다. 이중 1인은 한나라당이 추천한 셈이다.

행자부의 한 관계자는 “민간단체 지원법은 의원입법으로 여야의 합의에 의해 제정됐을 뿐만 아니라 각 정당에서 추천한 사람이 1명씩 포함돼 있다”면서 “한나라당의 추천인사가 참여한 상태에서의 심사에 대해 정당성을 문제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사이에도 정부의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와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은 처음부터 ‘정부를 감시하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직접지원 형태의 정부 프로젝트 사업 보조금을 받지 않고 있고, 경실련, 녹색연합 등 일부 단체들은 프로젝트 사업비 때문에 말썽이 일자 지난해부터 정부의 지원사업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작은 정부’를 구현한다는 차원에서 정부의 업무를 민간에게 이양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외국의 시민단체들은 사업비 보조금 형식으로 정부의 직접지원을 받고 있다.

외국에서는 또 시민단체들에 대한 통신비 할인과 세제혜택 등 간접지원도 활성화돼 있다. 일본의 경우 공익법인에 기부할 때는 일정한도 내에서 과세 대상으로 삼지 않는 조치를 취해 공익법인에 대한 재정적 기여를 장려하고 있다. 또 미국도 ‘내국세입법 제501조 a항’에 근거해 조세감면혜택을 주고 있다.

시민단체 간접지원 늘려야

따라서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도 그동안 정부에게 꾸준히 간접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해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혜택은 전무한 상태이다. 소위 관변단체의 전폭적인 국고 지원을 주장하면서도 매번 시민단체들의 프로젝트 지원에 대해 ‘정치성 예산’이라며 홍위병 논란을 부추기는 한나라당의 이율배반적인 행태. 어쨌

든 시민단체들이 이같은 ‘관변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시민사회가 자율적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도 간접지원이 현실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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