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2월 2002-12-01   1016

대량학살 그치자 인신매매 활개

전쟁과 비극의 땅 캄보디아. 태국과 베트남에게 설움 받고, 미·소 냉전의 희생양이 되어 200만 명이 서로 죽이고 죽었던 캄보디아도 지난 99년 10월 23일 유엔이 중재한 평화안(案)에 동의함으로써 반세기 만에 평화 정착의 길로 들어섰다. 유엔의 깃발 아래 평화유지군이 들어가고, 전쟁에 가담했던 캄보디아 내 4개 파의 무장해제가 단행됐으며 자유선거를 벌이기 위한 민간인 선거감시단을 구성하는 평화안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평화안에 따라 지난 93년 5월 캄보디아는 다수 정당이 참가한 자유선거를 최초로 실시했다.

“97년 쿠데타’를 둘러싼 여러 해석

제1차 자유선거에서는 어느 쪽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제1당의 당수이자 시아누크의 아들인 노로돔 라나리드 왕세자가 제1수상, 훈센이 제2수상에 취임해 위태롭기 짝이 없는 연정이 실시되었다. 연정은 훈센이 97년 쿠데타 연루를 핑계삼아 라나리드를 태국으로 쫓아내면서 무너져 오랜 만의 평화가 무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국제기구와 서방세계까지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영국과 미국은 이 사건을 훈센이 라나리드를 축출하기 위해 감행한 모의로 보았다. 반면 캐나다·EU(유럽연합)·일본·아시아 국가들은 라나리드가 먼저 훈센을 축출하고자 모의하였기 때문에 훈센이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으로 보았다. 최근에 와서는 뒤의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 하다.

아무튼 타협 끝에 EU, 캐나다, 일본, 호주의 주선으로 98년 7월 26일 제2차 자유선거를 실시했다. 결과는 지난번과 반대로 나타났다. 훈센의 CPP 정당이 41.4%의 표를 얻어 64석을 차지했고 라나리드의 펀친펙(Funcinpec)당은 31.7%로 43석을 차지하게 됐다. 삼 레인시(Sam Rainsg)가 이끄는 제3당은 15석을 얻었다. 제1수상은 훈센, 제2수상은 라나리드 왕자로 지난번과 위치가 뒤바뀌었고, 삼 레인시는 야당을 이끌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는 캄보디아가 과거보다는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질서도 회복해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훈센파가 이끄는 캄보디아 연정은 99년 4월 동남아시아연합체의 일원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토지분쟁과 대인지뢰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지난 해 1월 캄보디아를 방문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집권층 특히 군인 장성들의 토지소유 문제이다. 권력층이 지난 혼란기에 토지를 마음대로 차지해버리는 바람에 평화가 정착된 후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빈손이 되었다. 야당 당수인 레인시는 농민들과 함께 토지를 원주인에게 되돌리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태국과 접해 있는 국경지역의 토지 분쟁은 치열했다. 전쟁중에 토지문서가 없어져버린 경우가 허다해 하나의 토지에 대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등 혼란이 극심했다. 태국 접경지역은 호텔 카지노 등 오락시설이 집중적으로 건설되고 있어 분쟁이 더 심했다. 토지분쟁은 앞으로 훈센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였다.

둘째는 대인지뢰 문제이다.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서는 도처에 널려 있는 대인지뢰를 먼저 없애야 했다. 지뢰를 매설하기는 쉽지만 제거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도 97년부터 캄보디아에서 지뢰제거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지뢰를 제거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인명피해가 따르고 전문기관의 협력을 받기도 어렵다. 현재 WCC는 영국의 전문기관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발전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사회 혼란이 점차 가라앉고 치안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야당의 목소리는 신문지면을 통해 전달되고 있으며 집권당이 야당과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는 정도도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인 베트남·라오스·미얀마보다 낫다고 한다. 지난 20∼30년간 실종됐던 사회질서도 차차 회복되어 대낮에 횡행하던 강도, 살인, 총격, 인권유린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인신매매에 희생되는 캄보디아 어린이들

그러나 여전히 심각한 어린이 인권유린은 캄보디아의 그늘진 부분이다. 영국 월간지 『Conviction』 2001년 8월호는 충격적인 기사를 실었다. 루이스 브라운 기자가 쓴 기사는 “변태성욕자인 52세의 영국 사업가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일곱 살 먹은 두 어린이를 성폭행해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이 인신매매돼 미얀마, 태국, 중국에까지 수출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프랑스 여성 마리 카말(Marie Camal)은 파리 한복판에서 ‘Sok Sabay’라는 이름의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인신매매당한 캄보디아 소녀들을 돕기 위해 프놈펜에 세워진 재활센터의 교육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캄보디아가 안고 있는 가장 어렵고 민감한 문제는 1975∼1979년 사이에 크메르 루즈가 저지른 대량학살의 주범을 가려내는 일이다. 이는 훈센 수상이 지난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에도 쓰여 있다. 훈센은 이 문제에 대한 재판의 범위를 1970년부터 1999년까지로 확대해 무고한 백성을 살해한 원흉들을 기소해 사법적 심판을 받게 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베트남까지 연루돼 있어 훈센의 희망대로 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야당이 살인자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앞으로도 논쟁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이 경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화해위원회가 캄보디아에 의미있는 선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냉전체제의 제물이 되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고 강대국의 경제 제재로 신음했던 캄보디아. 이제 그들은 질곡에서 떨쳐 일어나 가난한 뒷모습이지만 어깨에는 태양을 이고 희망의 밭을 일구고 있다.

박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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