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2월 2002-12-01   1138

이슬라마바드 한국종군기자들의 고백

파키스탄으로 전쟁취재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파리떼 같은 거대 언론사 기자들과는 좀 다른 취재를 해와라.”

지난 10월 15일부터 27일까지 파키스탄으로 전쟁취재를 다녀왔다. 그러나 기자는 끝내 전쟁중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탈레반정권이 외신기자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쪽짜리’ 취재에 머물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 글은 전황에 대한 보도가 아니라 아프간의 이웃나라인 파키스탄에 머물며 목격한 현지 한국대사관과 한국언론의 모습을 밝히는 데 있다. 짧은 기간의 경험을 사실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물론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보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재외 한국공관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이 글을 쓴다.

이슬람 국가에서 술을 마시다

지난 10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한 중국식당. 한국 대사와 특파원들이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였다. 대사관 관계자가 기자들을 안내해간 방 한켠엔 ‘하이네켄’ 맥주가 든 종이박스 한 상자와 신문지로 싼 상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술을 금지하는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파키스탄 이슬람공화국’(파키스탄의 정식국호 : ISLAMIC REPUBLIC OF PAKISTAN)에선 술을 팔지 않는다. 외국인들이라고 해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술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굳이 술을 마시려면 이슬라마바드 근교 암시장이나 유흥가의 중국식당을 뒤져야만 한다. 이날 나온 맥주의 출처는 오리무중. 누구도 그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기자에겐 미처 비우지 못한 맥주 네 병이 식탁 밑으로 전달됐다. 일간지 기자들에게는 신문지에 싼 상자가 하나씩 돌려졌다. 숙소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이것이 저녁식사 대접에 이은 대사관측의 ‘배려’란 것을 깨달았다. 폭탄주로 ‘단련’된 한국 기자들에게 ‘금주’란 일종의 형벌 같은 것이어서 대사관에서 기자들에게 건넨 양주는 이슬라마바드의 밤을 보내는 ‘귀한 양식’이 되었다. 양주를 뜯으며 기자들은 “이것이 다 우리가 낸 세금이니 마셔도 괜찮다”는 우스갯소리들을 주고받았다.

처음, 기자들에 대한 대사관측의 태도는 자못 당당했다. 파키스탄으로 취재를 가고자 하니 숙소 예약을 부탁한다는 말에도 “숙소 구하기가 어렵다”며 모른 척했다. 이에 기자 역시 “대사관 앞에서 노숙하겠다”며 대사관을 협박(?)하기도 했다. 기자들에게까지 이런 상황인데 자국민의 안전보장이야 오죽했을까. 그나마 “한국 기자들이 들어오고 난 후 대사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 현지 한국인들의 전언이었다.

현지 한국인들 사이에 돌고 있는 믿기 어려운 소문들은 대사관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례를 들어본다.

한국 여성 배낭여행자와 일본 여성 배낭여행자가 짝을 이뤄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이 납치를 당해 파키스탄 시골의 어느 토굴에 갇히게 되었다. 그들은 몇 달 동안 파키스탄 남자들에게 집단강간을 당하면서 끔찍한 날들을 지냈다.

우여곡절 끝에 구출되어 각자 자기나라 대사관에 연락했다. 일본대사관은 즉시 구급차를 보내 일본 여자 배낭객을 안전하게 옮겼다. 그러나 한국대사관의 태도는 딴판이었다. 여자가 왜 그 험한 곳을 혼자 여행하다가 이 지경을 당하느냐, 그러니 혼자 대사관으로 찾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대사관의 관계자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더니, 그는 “당시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이젠 여기 없다”는 말만 했다. 오히려 대사관측은 “한국 여성들이 제발 파키스탄 남자에게 속지 않도록 기사를 좀 써달라”고 주문했다. 한국에서 시집온 여성들의 수가 꽤 되며, 그들이 파키스탄의 가난한 시골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포기한 채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대사관의 한 영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한국 여자들이 파키스탄 남자를 보고 잘 반한다. 대체로 이혼녀, 노처녀 등 나이든 여자들이다. 파키스탄 남자들이 대개 잘 생기고 영어를 잘 하고 여자들에게 사근사근 친절하다. 그런 친절에 반해 결혼한 후, 한국에서 돈을 어느 정도 벌게 되면 파키스탄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들은 거의 집안에 갇혀 지낸다. 그들은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파키스탄에서 살기 어려운 한국여성들을 본국으로 보내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여권이 없을 땐 한국대사관에서 임시여권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10월 말 현재 이슬라마바드 주재 한국대사관이 파악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은 모두 4명. 그러나 이들은 모두 별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 교포사회에서마저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누구 하나 정확한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 어떻게 ‘한건’할 수 있을까>/B>

한편, 이슬라마바드에 머물고 있던 한국 특파원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서로 도와가며 동행취재를 하기도 하는 반면, 기삿거리를 숨겨두었다 터뜨려 상대방을 곤경에 몰아넣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한국 기자들 사이에 경쟁이 심한 것은 당연했다. 한국 기자들이 이슬라마바드에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도 “특파원이 너무 많다”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신문사가 자사의 특파원을 철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문사의 자존심 문제도 있고 경쟁지와 비교되기 때문이란 얘기였다. 『한겨레』의 특파원들을 두고 “돈 없는 신문사에서 어떻게 두 명이나 기자를 보냈느냐”는 뼈 있는 말도 나왔다. 한 일간지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창 때는 일본 기자단보다 한국 기자단이 더 많았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일본은 경제력이 한국의 10배나 되는 나라다. 그뿐 아니라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한국 신문들은 더 이상 파키스탄발 전쟁기사를 실어주지 않는다. 세계가 탄저균 테러 공포로 떠들썩한 마당에 파키스탄에서 보내는 기사가 더 이상 독자들의 호응을 크게 받을 리 없다. 신문사들이 자사 기자를 철수시키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모 특파원이 기사를 보내왔다는 표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월 중순 한국대사관이 파악하고 있는 한국 특파원은 27명 정도.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9월 중순엔 이슬라마바드에만 한국 기자들이 60명까지 상주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아프간의 탈레반정권이 기자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시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수도 카불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겠다는 욕망에 불타고 있었다. 한국 기자단도 아프간 입국을 보장하겠다는 각종 제안에 시달려야 했다. “돈을 주면 아프간 카불까지 취재길을 열어주겠다”는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파키스탄 코디네이터(가이드)들은 물론이고, 파키스탄 군부 실력자, 아프간 난민, 게다가 한국인들까지 국경을 넘는 데 대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1000달러에서 6000달러까지 요구하는 금액도 만만치 않은데다, 무엇보다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기자들은 거의 없었다. 기자에게도 파키스탄인이 접근해 “돈이 얼마나 있느냐? 1000달러면 국경을 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전쟁통이라고는 하지만, 파키스탄 안에서 취재할 만한 기삿거리가 없는 것 역시 문제였다. 이슬라마바드에선 일찍 해가 기우는 탓에 오후 6시만 되면 캄캄해졌다. 그 동안 술자리에서 취재원의 낯을 익히고 기삿거리를 구해온 한국 기자들에게 밤은 절대 휴식의 시간이 아니다.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과 일요일에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빌린 차를 타고 나가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를 하고, 좀더 근사한 식당을 찾거나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누군가가 한국 기자들에게 파키스탄 여성과의 잠자리를 제안해서 어느 일간지 기자는”밤마실’을 다녀왔다는 ‘흉측한’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한국 기자들의 바람은 오직 한가지였다. 어떻게든 전쟁터에서 그나마 ‘한 건’(특종)하느냐 하는 것, 저마다 어떻게 하면 전쟁상황을 좀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까 머리를 짜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 중순인 지금까지 카불 진입에 성공했다는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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