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1월 2001-11-29   900

방글라데시 총선감시단 참가기

여전히 불안한 민주주의

지난 9월말 참여연대가 속해 있는 아시아선거전문감시단체(ANFREL)로부터 방글라데시 총선 참관인으로 활동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0월 1일 방글라데시 곳곳에는 선거 포스터와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귀청을 때리는 확성기 소리와 선거홍보차량에 올라탄 사람들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지나가는 모습은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어린이들도 덩달아 후보자 이름을 외쳐대며 우르르 몰려다니는 광경이 흥겨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광경과는 달리 언론매체들은 수십 개 정당 중 세이크 하시나가 이끄는 현 집권당 아와미연맹(Awami League)과 칼레다 지아가 이끄는 방글라데시민족당(BNP)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혈충돌과 폭발 사건에 대한 기사로 도배되다시피했다. 8월 19일 선거 일정이 발표된 이후 540건의 사고가 발생해 127명이 사망했으며, 7729명이 부상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사상자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AL과 BNP의 끊임없는 정쟁

모든 시민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자에게 자유롭게 표를 던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를 감싸고 있던 폭력적이고 공포스런 분위기에서는 시민의 기본권 행사도 불가능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출된 정부라면 어느 누구라도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모든 시민이 선거일에 평화롭고 안전하게 투표할 기회를 갖기 위해 국내외 선거참관인들이 조직되었다. 이미 방글라데시의 29개 인권단체들은 전지역에서 선거감시실무단을 공동으로 꾸려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태국 방콕에 위치한 아시아선거전문감시단체 ANFREL(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도 방글라데시 인권단체 ODHIKAR와 협력해 네팔, 스리랑카, 인도, 일본, 호주, 캄보디아, 필리핀 등 17개국 27명의 국제선거참관인들을 모아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유엔의 선거지원사무국(UNEAS)도 국제선거참관인들을 보냈다.

방글라데시는 1991년 내각책임제로 개헌해 대통령이 있긴 하나 실권은 수상에게 있다. 대통령의 임명을 통해 다수당의 당수가 수상이 된다. 330명의 의원 중 300명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고 나머지 30명은 여성 할당 몫으로 의원들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방글라데시의 선거제도가 독특한 것은 선거기간 중에는 의회를 해산하고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는 ‘과도내각(caretaker government)’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이 내각은 선거를 관할하는 ‘선거위원회’에 필요한 모든 협력과 지원을 제공한다. 선거 후 새로운 의회가 구성되고, 수상이 임명돼 직무를 시작하면 과도내각은 바로 해산한다.

이러한 독특한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 AL과 BNP 두 당 사이의 정쟁은 끊이지 않았다. 75년 들어선 군사정권이 90년 막을 내리고, 91년 BNP의 칼레다 지아 정권이 들어섰으나, 2년 만에 AL과의 협력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싸움의 원인은 주로 선거의 공정성 문제였다. 몇몇 보궐선거에서 두 정당은 충돌하였으며, 94년 3월 마침내 AL은 BNP의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L은 정부의 퇴진을 촉구하고 중립적인 내각 하에서 새로운 총선을 하자고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BNP는 반대했다. 이때부터 몇 년간 AL은 의회 출석을 거부하며 장외투쟁을 거듭하였고, 결국 94년 12월 의원직을 총사퇴하였다.

불법무기 횡행 그리고 파기된 정교분리주의

군사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다양한 정치투쟁을 벌였던 방글라데시의 사회단체들도 거리에서 투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사회단체들은 두 정당의 막다른 대결을 보면서 그들에게 대화를 통해 조정하라고 촉구했다. 95년 12월 칼레다는 의회를 해산한 뒤 여러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BNP 하에서 새로 의원선거를 실시하자고 선포한 뒤 96년 2월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선거결과를 조작하려던 시도는 거꾸로 BNP의 발목을 잡아 BNP 치하에서는 공정한 선거가 실시된다고 믿을 수 없다는 AL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사회단체들과 심지어 관료들조차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내각 하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다른 방안이 없었던 BNP는 96년 2월 헌법을 개정, 그 해 6월 과도 임시내각하에서 총선을 실시했다. 결과는 AL측이 146석, BNP가 116석을 얻어 AL의 승리였다. 이렇게 뽑힌 의원들은 방글라데시 의회 역사상 최초로 5년의 임기를 채웠다. 그러나 두 정당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치를 이끌어가는 데 실패함으로써 방글라데시는 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방글라데시 선거감시실무단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AL과 BNP 두 정당은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서로를 비방하며 대립했으며, 파업, 약탈, 유괴 등 폭력적인 행태가 지난 96년 선거 때보다 더 심해졌다. 특히, 선거기간에 불법무기 사용이 횡행하였으며, 정치 문제에 종교를 이용하는 경향이 새롭게 생겨났다. 방글라데시 인구의 87%가 이슬람이긴 하지만 헌법에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명시되어 있다. 두 정당은 겉으로는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종교적 노래로 유권자들을 선동하고 종교서적으로 후보자 지지를 강요했다. 또 후보자 지명에 경제력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난 54년에는 선출의원의 4%만이 사업가였는데 점차 그 수가 늘어 91년엔 53%, 96년엔 70%에 이르렀다.

여성유권자의 높은 투표참여율

ANFREL 국제선거참관인들은 선거날인 10월 1일에 이틀 앞서 방글라데시에 도착해 각 정당과 선거구 책임자들, 군대, 경찰, 기자 그리고 일반시민들을 만나면서 상황을 점검했다. 선거 당일에는 28개 선거구 250개의 투표소를 돌며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비밀투표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참관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선거 전에 일어난 수많은 폭력사건에 비해 선거 자체는 매우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몇몇 지역에서 부정투표가 발생하고, 일부 과격한 사람들이 투표소를 공격하거나, 유권자들을 매수하거나 위협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투표와 집계가 전반적으로 공정하고 자유롭게 진행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여성들의 높은 투표 참여율도 놀라왔다. 대부분의 지역이 투표 시작 시간인 오전 8시가 되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남녀로 구분된 투표소 앞에서 여성들의 줄은 남성들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으며, 웃고 떠드는 유권자들로 선거는 축제처럼 들뜬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이 없어서 누구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사람의 이름과 번호를 대고 투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빈민들은 유권자 등록을 했지만 명부에 올라 있지 않아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번 선거는 BNP의 승리로 끝났다. 선거 결과에 따라 유혈사태가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선거가 끝났으니 엄청난 인명피해는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교차했다. 이와 같은 지난한 과정을 통해 방글라데시가 민주주의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기를 바란다. 진지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방글라데시의 NGO활동가들에게서 그 희망을 찾고 싶다.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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