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1024

죄많은 나라의 죄인이 되어

후 2시경. 같은 단체에서 일하는 한 간사가 나에게 다가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판결이 났다고 전해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종일 우울하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열심히 사람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지만 나는 슬펐다. 명색이 변호사라는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고 이제 길거리를 떳떳하게 걸어다닐 수가 있겠는가.

분노가 치밀었다. 시민단체와 정당이 미는 후보 사이에 차별성이 없다니, 나에게 표를 달라는 후보와 그 후보를 감시하자는 유권자 사이에 차이가 없다니, 법은 상식일진대 세상에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인가. 부패 무능한 정치인들을 찍지 말라고 국민에게 호소한 죄밖에 없는데, 욕설 한마디 한 적이 없고 돌멩이 하나 던진 적이 없는데, 무엇이 죄란 말인가. 국회의원 낙선운동을 했다고 벌 주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이제 우리는 소리 높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도 없게 되었는가.

부끄러웠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부끄러웠고 서울지방법

원 판사가 부끄러웠다. 이 나라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

다도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분투했던가.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세상 볼 면목을 잃었다. 나는 과연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에 나는 분노했고 부끄러웠고 슬펐다.

역사의 물결 속에서

처음 누군가의 입에서 ‘낙선운동’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걸스카우트 회관에서 몇몇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낙선운동을 결의할 때도 그렇게까지 진전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미 당긴 시위에서 화살은 떠나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역사의 물줄기는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2000년 벽두에 시민단체들은 정치권을 향해 포문을 연 것이다.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모여들었다.

총선연대는 순식간에 몇 백개 단체로 늘어났다. 언론을 타면

서 여론도 폭발적이었다. 8∼90%의 지지율이었다.

낙선운동은 갑자기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늘 앞자리를 기피하던 나에게도 어김없이 카메라가 다가왔다. 뒷자리에 서고 가장자리에 앉아도 카메라는 나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미 역사의 물줄기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누군가가 총선연대의 대변인을 맡아주었다. 언론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할 수 있어 나는 행복했다.

소심한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완벽히 장악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워낙 큰 일이기도 하였고 수많은 단체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사업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활동가들과 얼굴을 맞대고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거대한 정치세력, 노회한 부패정치인들과의 한판 싸움이었다. 어찌 두렵고 힘들지 않겠는가. 그때 나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느낌”이라고 기자들에게 실토하였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온갖 허무맹랑한 음해와 왜곡 속에서도 국민은 우리를 믿어 주었다. 정치권에 대한 절망이 그만큼 깊었다.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정치권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21세기 새아침을 맞으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온 국민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총선연대는 단지 그 마음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운동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과 격려는 미처 다 기록하고 기억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전국의 활동가들은 일치단결하여 운동을 이끌어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시대 시민운동가들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전국에서 벌어진 일상적인 활동이 보고되는 집행위원회에서 지역활동가들의 능력과 열정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 낙선후보 선정을 위한 전국 시민단체 대표자회의를 하면서 그렇게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도 반듯하게 마무리 짓는 모습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선거는 끝났다. 낙선운동 대상 후보가 전국적으로는 68%, 수도권에서는 90%가 떨어졌다. 승리한 것은 총선연대뿐이라고들 했다. 도저히 떨어질 것 같지 않은 후보들이 곳곳에서 고배를 마셨다. ‘바꿔 바꿔’의 열풍은 서울과 경기도를 넘어 충청도와 강원도에까지 불었다. 서울에서는 단 한 사람을 빼고 다 떨어졌다. 당선된 후보는 그 지역구에서 선정된 두 명의 낙선후보 중 한 사람이었으니 사실상 100%였다. 심지어 호남권에서도 몇 사람의 낙선후보는 무소속에게 무릎을 꿇었다.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적이었다. 우리가 이긴 것이다.

그 초조한 100일 간의 싸움이 끝나면서 나는 가슴 속으로 국민의 용서를 간절히 구하였다.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낙선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국민이 우리를 믿어준 것이었다. 그렇게 믿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죄송한 일인가. 나는 투표결과가 나온 뒤 기자들에게 아껴두었던 한마디, 바로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낙선운동의 전 과정을 통하여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다. 낙천·낙선후보 발표 때마다 당사자들의 반발과 정당들의 엄청난 공세에 시달렸다. 역시 정치9단들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부패한 세력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정치생명을 이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명예로운 은퇴를 요청받은 김종필 씨는 도리어 그것을 음모론과 홍위병론으로 돌파하면서 자신을 탄압받는 희생양으로 꾸미려고 했다. 기가 막힌 전술이었다. 그런 필사의 ‘음모’와 책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당은 자기 고향에서도 배척받아 소수의 정치세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필귀정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야 어찌 그런 결말을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선거가 끝난 뒤에도 또 다른 홍역을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것이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알아보았다. 전철을 타기가 쑥스러웠다. 길을 걸으면서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아래로 눈을 깔고 걷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택시 타기도 고역이었다. 얼굴 한번 힐끗 보고도, 목소리를 한번 듣고도 알아보는 택시 운전사들이었다. 때로는 택시비를 안 받겠다고 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지방법원 법정에서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법정. 변호사 시절 내 집처럼 드나들던 그 곳에 피고인으로 선다는 것은 특별한 느낌일 수밖에 없다. 피고인의 무죄를 변론하고 선처를 부탁하는 변호인이 이제 죄를 지어 다른 변호사에게 변론을 받는 입장이 된 것이다.

유쾌한 일일 수 없었다. 자랑스러운 일일 수는 더욱 없었다. 창피하고 참담한 일이었다. 눈앞의 판사들 보기 민망하고 뒤통수에 꽂히는 방청객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렇구나, 나에게 아직도 변호사 의식이 남아 있었구나.

재판장이 내 또래다. 아마 나도 현직에 남아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을 법정에 세워놓고 저 법대 위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차라리 그것보다는 이게 낫겠다. 남을 심판하느니, 남에게 심판받는 게 낫겠다. 더구나 판사 노릇을 저렇게 하려면.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몇 번 안 하고 곧 결심이었다. 따지고 자시고 할 게 뭐 있겠는가. 우리가 한 일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검사는 계속 딴죽을 걸었다. 밥값을 하려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래서 더 법정다운 분위기가 살아났다. 검사가 검사다워야지, 검사가 피고인 편을 들면 그게 무슨 재판이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판결의 날이 왔다. 벌금 500만 원, 역시 유죄선고였다. 전임 판사가 위헌판결 초안을 썼다는 이야기도 들렸지만 그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이미 대법원에서도 지역총선연대 활동가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마당이니 당연히 예상한 결과였다. 그래도 화가 났다. 시민단체도 후보를 내고, 앞으로 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후보자들에 대한 금지조항을 시민단체에 대해 풀어주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미국 최대의 시민운동단체인 퍼블릭시티즌은 그 설립자 랄프 네이더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기 때문에 이제 유권자운동을 못한다는 것인가. 기가 막혔지만 어쩔 것인가. 저울과 칼은 저쪽이 가지고 있는데.

악법도 법이라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죄인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죄인이다. 선거법을 위반한 죄인이다. 어떤 시민단체의 간부는 시민운동을 비판하여 주목을 받았다. 현재의 시민운동이 초법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낙선운동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보수언론들이 ‘용기있는 자아비판’이라고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그렇다. 우리는 사법부뿐 아니라 우리 내부로부터도 초법분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걸핏하면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는 무법자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나는 시민운동은 세상보다 몇 걸음은 앞서가야 한다고 믿어 왔다. 현재의 시민들이 믿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을 똑같이 주장하려면, 또는 보통시민들의 요구만을 그대로 따르려면 무엇하러 시민운동을 하는가. 나는 묻고 싶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그의 아이가 백인 식당에서 쫓겨나고 버스를 타지 못할 때, 그런데도 미국의 대법원이 “평등하지만 다르다”(equal but different)고 판결할 때 그대로 그 법을 지키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던 당시의 미국과 영국에서 여성들은 그 선거법을 그냥 따르고 있어야 옳았던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은 결연히 일어나 저항하였다. 영국과 미국의 여성운동가들은 일제히 일어나 싸웠다. 때로는 감옥에 가고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옳았으므로 이겼다. 지금 어느 누구도 그들을 초법분자나 과격분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흑백분리가 옳았고 보통투표권이 틀리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대한 인권운동가로, 꿈을 실현한 아름다운 인간으로 기억한다. 바로 한 세기 안에 있었던 일이다.

어디 그렇게 멀리 갈 것이 있는가. 유신치하 ‘헌법개정’이란 말 한마디만 나와도 감옥으로 보낼 때, 제5공화국 헌법개정 서명운동을 벌인다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아넣겠다던 서슬 퍼런 시대에 우리의 선배운동가들은 당시의 법이 그랬으므로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극소수 과격분자라는 공격을 받고 온갖 고초를 당하며 그 압제와 싸웠고, 그리고 이겼다.

법은 법이기 때문에 존엄하고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법은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정의로울 때 그것은 존엄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법이 정의롭지 못할 때 우리는 일어나 싸워야 한다. 그 법이 정의로워지도록 따지고 항의하고 고쳐야 한다. 때로는 몸을 던져 그 악법을 드러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가르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를 왜곡하는 그 독재의 망령이 아직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시민운동은 꿈을 꾸는 것이다. 자유와 정의, 그리고 소수자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현실에서 억압받고 가로막히고 제지당하는 일을 해방하고 구제하고 돌파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지금은 안 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일을 시작하고 계속하고 마침내 이루는 일이다. 힘들고 지치고 소외받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한 사회의 다수를 생각하고 기득권자와 함께 노는 시민운동은 그 자체가 종말이다. 시민운동은 기존질서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질서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가시밭길이며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길이다.

죄 많은 나라의 죄인이 되어

그렇다. 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오래 전부터 말 잘하는 사람 잡아가고 똑똑한 사람 감옥 보내는 것이 우리의 법이었다. 이민족이 지배하던 시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억누르던 시대, 군사독재 아래 온 민족이 신음하던 시대, 그 시대에 법은 억압과 착취와 불의의 상징이었다. 국가권력은 폭력이었고 저항은 정당방위였다. 많은 사람들의 피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금은 좋아졌다. 엄청 나아졌다. 그러나 여전하다. 시민운동 하는 사람은 안다. 우리의 문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줄을 섰는가. 대한민국은 억울한 사람들의 천국이다. 바로 그 좋은 법의 희생자들이다. 이 불의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법은 생겨날 때부터 불구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 이 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된 법을 만들 능력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진지하게 법을 만든 적이 있었던가. 온갖 이해관계자들의 로비와 압력으로 법은 얼마나 뒤틀려졌던가. 당장 선거법 87조 개정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매달리고 호소하고 따졌던가. 그런데도 그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무조건 그 법을 지키라고?

그래, 나는 차라리 범법자가 되고 말겠다. 죄 많은 나라에서 죄 많은 국민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나는 그 길을 가겠다. 범법자가 되어 그 법을 함께 껴안고 깨지고 말겠다. 그렇게 기꺼이 낙인찍히고 저주당하고 비판당하겠다. 뭐 선거법 하나 위반한다고해서 거창하게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겠다. 법을 어김으로써 그 법을 무력화시키겠다고 기꺼이 감옥행을 택했던 사람들의 살벌한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호시절인가.

나는 언젠가부터 감옥을 꿈꾸어 왔다. 밑 빠진 독에서 물처럼 새나가는 세금을 내지 말자는 저항운동을 벌이다가, 또는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악법의 폐지를 주장하다가, 아니면 이번처럼 부패 무능 정치인들의 퇴출을 시도하다가 감옥을 가는 그런 꿈 말이다. 결코 용감한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원래 앞장을 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끄러워 남 앞에 서지 못하는 위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다.

그렇다. 지금 억울한 것은 감옥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벌금형을 선고받은 일이다. 독재치하에서의 운동이란 목숨을 내걸었지만 그만큼 찬란히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용감하게 깨지되 섬광이 있는 운동이었다. 긴장이 개인과 온 사회에 팽팽하게 서려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벌금쯤 받는 일에는 그런 빛도, 그런 긴장도 있을 수 없다. 이왕 죄인이 된다면, 그리고 벌을 받는다면 벌금보다는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이 훨씬 영예로운 일이다. 누가 말했던가.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고. 그래, 우리에게 이왕 벌을 주려면 감옥에 보내달라.

지옥개혁시민연대를 꿈꾸며

분노는 가라앉았다.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낙선운동을 했다고 나에게 사람들이 칭찬이나 하고 훈장을 주려 든다면 그것이 가당한 일일까. 그런 일은 또 얼마나 고역일 것인가. 그렇다. 그런 좋은 세상이 온다면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을 일이 무엇인가. 지금은 부패하고 황당하고 거꾸로 된 세상이니 그것과 싸우고 부닥치고 싸우는 재미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우리를 칭찬하고 상을 주는 세상이라면 우리도 모두 잘 먹고 잘 살러 갈 일이다.

사회를 바꾸자고 운동하는 사람에게 그 사회가 바로잡혀 있어서 더 이상 바꿀 게 없는 것만큼 서글픈 일은 없다. 오늘 이 악법으로 우리를 재단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은 이 세상에서 나는 더 행복하다. 분명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 한 몸 불사를 곳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소리를 한다. 저 높이 계신 하느님이 들으라고 일부러 공개적으로 한다. 나는 죽으면 지옥에 가리라고, 세상에 천국은 얼마나 재미없는 곳일까라고, 죄짓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점잖고 깨끗한 사람들만 있는 속에서 무얼 하며 지낼까라고. 그러나 생각해보라, 지옥에는 얼마나 신나는 일이 많을 것인가. 그곳에서 변호사를 한다면 고객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또 ‘지옥개혁시민연대’를 만들어 활동한다면 얼마나 할 일이 많을 것인가.

그래, 나는 지옥에 가야지. 그곳에서도 시민운동을 해야지. 나는 그런 생각만으로 즐겁고 유쾌하다. 그렇게 유쾌하게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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