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1366

청와대에 웬 검사 파견?

현행 검찰청법 무시한 법무부,검찰,청와대

김기춘·정구영 전 검찰총장, 박철언·이건개 전 의원, 최경원 현 법무부장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등 검찰 요직에 오르거나 정치인으로서 출세 길을 달렸던 이들은 모두 현직검사 시절 청와대에 근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최연희 의원, 강재섭 의원, 박주선 의원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청와대 파견검사는 검찰 내에서 출세코스로 통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검사의 출세가 곧바로 집권 최고위층과의 친분이나 정치적 유착으로 판가름난다는 등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려면 검사의 청와대 파견이란 석연치 않은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최고 권부의 의중을 파악하는 통로로 사용됨으로써 이 제도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해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현직검사 사직, 청와대 근무 뒤 승진 복직

이 같은 이유로 현직검사의 대통령 비서실 파견금지 조항이 1996년 검찰청법에 신설되어 1997년 1월 13일부터 시행되어 왔다. ‘검찰총장 퇴직 후 공직 취임제한’과 함께 마련된 이 제도는 검사가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본연의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이 조항은 김대중 대통령이 문민정부 시절인 1997년 “청와대에 검사가 근무하는 것 자체가 검찰의 중립성을 해치는 요인”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신설됐다.

하지만 검사의 청와대 파견은 편법을 통해 여전히 이뤄지고 있으며 오히려 과거에 비해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지난 7월 법무부를 상대로 검사파견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바 있다. 특히 검사파견금지 조항이 적용된 97년 이후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되었다 검찰에 복귀한 검사들의 명단과 파견근무 내용, 파견 기간, 현재 직위 등을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1997년 3월부터 2001년 7월 26일까지 모두 18명의 검사가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했거나 근무중이며(현재 근무중 6명) 이 중 박주선 전 법무비서관을 제외하고 모두 검찰에 복귀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7년 김영삼정부 때 청와대에 근무했던 최재경,남기춘 검사는 현재 서울지검 부부장과 부산지검 마약수사부장으로 있다. 이범관 현 인천지검장은 김대중정부 초기인 1998년부터 1년여 동안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다 현직에 복귀했다. 그 외 유재만 법무부 검찰국 검사, 홍만표 서울지검 부부장, 박준효 정읍지청장 등도 같은 경우이다. 법무부 산하기관인 법무연수원을 통한 파견 사례도 있다. 현재 청와대에 근무중인 안태근이영만봉욱 씨는 검찰에 재직하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신분으로 청와대에 파견되어 있다.

예전에는 검사를 법무부 산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위촉한 뒤 청와대에 파견하는 방식을 이용했으나 ‘편법’이란 시비가 일자 지금은 아예 검사직을 사직시킨 뒤 청와대 소속으로 근무시키는 방식이 이용된다. 그러나 이 역시 편법인 것은 분명하다. 이들이 청와대 근무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검찰에 재임명 혹은 재임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검사 신분만 아니면 법규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파견 직전 형식적으로 검사직을 사직시켰다가 청와대 근무가 끝난 직후 검찰에 복귀시키는 것이다. 겉으로는 검사를 파견한 것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직검사를 파견한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다. 법규정과 국민의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편법을 법무부와 검찰, 청와대가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파견은 인사상 특혜

현재 대통령 비서실에는 신광옥 민정수석비서관 등 민정·사정·법률 비서관실에 각각 2명씩 모두 6명의 전직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이는 평균 2∼3명이던 과거에 비해 두 배의 규모이다. 더욱이 검사출신 청와대 비서관들은 경우에 따라 인사상 특혜를 받고 검찰로 돌아간다. 검찰 복귀 이후 이들이 거의 승진하는 것을 보면, ‘청와대가 승진코스’라는 세간의 평가가 틀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청와대 파견검사의 경력과 출신지역이다. 이들은 주로 법무부 검찰3과, 대검 공안 1과, 대검 중수부 등 공안업무 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출신지역 역시 정권의 주요 정치기반인 지역과 일치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 정권 들어 전·현직 파견자 15명 중 호남지역 인사가 8명으로 절반이 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청와대 파견근무의 성격과 내용을 짐작케 한다. 파견검사들이 근무하는 부서는 사정, 민정, 법률 비서관실이다. 이들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알 수는 없다. 수사, 법률자문 등이 주 업무이겠지만 이들의 역할이 여기에 그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사의 청와대 편법 파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및 독립성과 관련한 시빗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편법운용은 법 제정의 취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입법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명시적 금지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법 적용을 한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법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예상하고 법 개정 당시 시민단체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사 퇴직 후 1∼2년 안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하거나 청와대 근무 후 일정기간 안에는 현직복귀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검찰 스스로의 의지이다. 검찰을 향한 비난의 99%는 정치적 중립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검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있는 법마저도 무시하는 태도로는 결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이재명 사법감시센터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