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845

내 노래가 작은 행복 된다면

가수 이상은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여름 강변가요제, 대학 1학년의 키다리 처녀가 탬버린 하나 들고 휘청거리는 춤을 추며 부른 ‘담다디’가 대상을 차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음반을 내고, 영화에도 출연하고, 라디오 진행도 맡고, 생방송 가요프로에서 소녀들의 괴성을 몰고 다니는 한 시대의 스타가 됐다. 그러다가 모든 걸 훌훌 털고 사라져 버렸던 그는 잠시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듯 했다. 그로부터 10년…, 마치 거짓말처럼 이상은도 서른 살이 되었다. 입에서 입으로 조용한 소문이 돌았다, 상처받은 이상은과, 방랑하는 이상은과, 길을 찾는 이상은에 관한. 그녀에게 열광하던 그 시절의 소녀들 역시 어느새 어른들이 되어버린 지금, 바람이 실어다준 또 다른 소문들은 그녀의 극복과 거듭남, 새 삶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참여사회』는 어느 교차로에서, 정착을 거부한 채 늘 새 삶을 향해 길 떠났던 한 유목민과 마주쳤다.

앞만 보고 달렸지/아무도 가로막지 않는/어디론가 이어진 길을 따라서/무얼 향해 뛰어 가는가/나에게 묻지 말아줘/길을 잃은지 오래인걸 (노래 ‘길’ 중에서)

칠흑 같이 어두웠던 20대의 터널을 통과해 나온 그녀의 노래에 요즘 붙어 다니는 별명은 ‘정신적 치유’다. 그녀의 최근 음반 중 하나는 아예 제목이 ‘Asian Prescription(아시아적 처방전)’이기까지 하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음악들인데 치유(healing)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어요. 일본에서는 아예 그런 장르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제가 무슨 대표주자도 아니고, 어떤 장르 안에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떻게 하면 가장 순수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생각했던 음악하는 사람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 아픔 느끼고, 고민 많았으니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거겠죠. 아마 그런 거 없었으면 같은 아픔 갖고 있는 분들께 다가서지 못할 거예요. 넘어져도 일어서서 또 가고, 힘들어 주저앉아 있다가도 다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끝없이 배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쓸데없는 것은 파괴해야 하고, 잡았다가도 놓치게 돼요. 의식하고 하면 안돼요. 단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나 삶의 얘기를 하다보면 거기서 나름의 응원이 나오는 거죠.”

담다디 스타와 삐에로

그녀가 10년 전에 겪었던 상처와 고통은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피에로가 된 느낌’이었다. 어느 날 문득 TV 속에 비춰진 자기 모습이 마치 포장된 상품처럼 느껴졌던 것. 숨가쁜 일정에 휘둘리는 생활에 지치기도 했던 열아홉 처녀는 매일 밤 토하고 울 수밖에 없었다. 이쯤에 얼마 전 MBC와 연예제작자협회 사이에 벌어졌던 소란 얘기를 꺼냈다.

“정확한 상황도 잘 모르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지만, 전 방송국의 관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편이에요. 물론 ‘노예’라는 표현을 방송에 내보낸 건 좀 심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음반판매량도 정확히 알 수 없거든요. 전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는 연예인을 사랑하는 제작자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게 치면 사실 방송국도 좋은 음악프로그램을 만들지는 못했죠. 방송국 역시 반성할 점이 있어요.”

자, 이제 그녀에게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자.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제 성격이 점점 순해지고 둥글둥글해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힘은 잃지 않고 싶어요. 제 노래가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게 의식적이면 안 돼요. 사실 ‘길’이란 노래도 정말 길이 하나도 안 보여서 ‘아이고, 나 힘들어!’ 하고 부른 노래였거든요. 그랬더니 들으시는 분들이 ‘나도 그래!’ 하시는 거죠.”

내려오지 마/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내려오지 마/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가야 한다면/어딘가 묻히고 싶다면/우리가 없는/평화로운 섬으로 가서/마음을 놓고/나무 아래서 쉬는 거야/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가서 (노래 ‘새’ 중에서)

그녀는 새에게 얘기한다. 여기 이 땅에 내려오지 말라고. 꼭 가야 한다면, 부디 우리가 없는 곳으로 가라고. 그녀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골목골목 간판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가 아름다움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체성도 없어지고, 색채감각도 잃고 나니 외국의 이미지를 뒤집어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가지고 계셨던 여성성이 많이 없어졌어요. 우리가 지나치게 미국의 남성적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럽 쪽 대안도 좀 보고, 우리들이 잃어버린 부분을 다시 잘 살렸으면 좋겠어요.”

이상은 씨는 외국에선 ‘리채(Lee-Tzsche)’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들이 이상은이라는 한국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점도 있지만,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에 동참하는 뜻에서 ‘리채상은’을 줄여 리채로 쓰고 있다.

“제가 시민운동을 한다면 여성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요.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남성 흉내내는 여성운동이 아니라 여성만이 가진 진정한 여성성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에 힘이 되고 싶죠.”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시민운동에 관한 비판을 부탁하자, 그녀는 일본이나 영국에서 체험한 시민단체와 시민운동 방식을 거론했다. 먼저 시민운동이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해서는 안되며, 거대한 정치적 담론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 좋으신 분들이 하는 시민운동에, 머리는 나쁘지만 저처럼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성과 미적 감각을 더한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죠. 보다 섬세하고 살뜰한 보살핌과 예절이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느껴요. 이미 영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시민운동이 시민에게 아주 친근하고 가깝거든요. 제 입장에서 얘기를 해보면, 일본에 가서 공연할 때, 공연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물수건과 물 한 잔을 준비해 주죠. 그때 작은 행복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의 공연장은 옷 갈아입을 곳도 없고 뭔가 천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돈은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가죠. 커다란 덩어리만 보지 말고 분산돼서 작은 일들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행복했다고 느끼는 일이 가장 중요한 거죠. 뭐가 행복일까요? 저는 일상의 구석구석 작은 곳에 행복이 있다고 믿어요.”

사진을 찍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는 가까이에 있던 석조 조형물에 몸을 기대고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망울이 투명하고 연약하다. 눈길을 옮길 때마다 표정들이 휙휙 바뀐다. 차분해 보이지만 어딘지 가슴을 아프게 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깍듯이 허리를 숙여 작별인사를 했다. 돌아서서 터덜터덜 걷는데 갑자기 멀리서 큰소리로 잘 가라는 인사가 들렸다. 돌아보니 키다리 소녀가 저만치서 휘청거리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조진호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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