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436

증오의 뿌리

증오의 뿌리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폭탄을 설치하다 붙잡힌 람지 유세프를 헬기로 압송하던 수사관은 그의 눈가리개를 풀어주고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무역센터 건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저 건물 보이나? 자네가 무너뜨리고자 했던 바로 그 건물이야. 꿈쩍도 않고 서 있지?” 유세프는 잠시 내려다보다가 원통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돈이 없었어. 내가 폭약을 충분히 살 수만 있었다면 저게 지금 남아 있겠나?” 그로부터 8년 후인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위풍당당하던 무역센터 건물 두 동은 잿더미가 되어 내려앉는다. 유세프의 체포에도 불구하고 제2, 제3의 유세프들이 되돌아온 것이다.

지금 미국은 테러분자들을 즉각 응징하고 보복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조야가 온통 들끓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이 나갈 때쯤 해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우선 크루즈 미사일부터 퍼붓고 있을지 모른다). 사건 직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4퍼센트가 ‘즉각 응징’을 지지했고, 상원은 98대 0으로, 하원은 420대 1로 대통령의 무력사용권을 승인하였는데 이런 결속력은 이번 사건이 미국에 안긴 충격과 외상(外傷)의 크기를 말해준다. 큰 상처의 경험은 개인만이 아니라 한 사회까지도 바꿔 놓을 수 있다. 아닌게아니라 입 빠른 분석자들은 9.11 이후의 한 주간이 미국과 미국인들을 크게 변모시켜 놓았고,차후의 미국은 결코 이전의 미국이 아닐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변모? 사건 주간의 토요일과 일요일, 미국인들은 주말 텔레비전에서 단 한 건의 스포츠 중계도 볼 수 없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미국 어디에서도 야구, 축구 등의 스포츠 경기가 단 한 건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생자를 애도하는 종교 집회가 미국 전역에서 열리고 촛불을 켠 시민들이 길바닥에 모여 앉아 국가를 부른다. 애도의 날, 버스를 잠시 길가에 세우고 승객들에게 기도를 올려줄 것을 당부한 버스 기사도 있다. 거리, 건물, 자동차마다 성조기의 물결로 넘치고 국기를 들거나 몸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도 다수 눈에 띈다. 월남전 때 반전파 젊은이들이 불태우던 그 성조기가 국민적 결속의 상징으로 부활한 것이다. 영화사와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앞으로 테러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이런 것이 아니다. 미국인들이 알게 된 것은 미국이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부터 미국인은 언제 어느 구석에서 자신의 삶에 거대한 구멍을 낼지 모를 내부 테러리즘의 유령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이것이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비상(非常)이 아니라 일상(日常)이다. 그런데 그 일상의 느닷없는 붕괴 가능성을 조석으로 인정하고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비상이다. 9.11 사태는 끝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에 ‘비상’(기묘하게도 911은 미국내 비상구급 전화번호이기도 하다)을 걸어놓은 것이다.

이 비상사태를 해제하는 길은, 미국을 향한 증오가 무엇에 연유하는가를 성찰하고 그 증오의 조건을 해소하는 것이다. 대미 테러리즘은 미국에 대한 깊은 증오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일만으로는 그 뿌리가 제거되지 않는다. 미국이 이 부분을 깊이 성찰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침몰하는 대국의 불행을 나눠 갖게 될지 모른다.

도정일 경희대 영문과 교수,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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