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978

한지붕 두 노종자의 너무다른 하루

한지붕 두 노동자의 너무 다른 하루

한 사무실에서 똑같은 일을 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는 천양지차. 본지는 한국통신 서울114에서 근무하는 두 노동자의 얘기를 극으로 구성했다. 한 사람은 정규직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비정규직이다. 그들의 ‘같은 삶, 다른 조건’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한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던 박수진 씨(가명)와 이은영 씨(가명). 그러다 이은영 씨가 먼저 다른 일자리를 찾아 직장을 떠났고, 박수진 씨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 후 박수진 씨는 속셈학원 강사로 지냈다. 그러나 원장이 월급을 주지 않은 지 몇 달째. 박씨는 노동부에 학원장을 고발했다. 밀린 월급은 받았지만, 다니던 속셈학원은 그만두어야 했다. 지역 학원가에는 박씨에 대한 악평이 떠돌았다. 박씨가 새 일자리를 구하러 면접시험을 볼 때마다, “아, 그 학원의 그 강사”라며 원장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들어갈 학원은 없었다. 99년 7월. 박씨와 이씨는 한 직장에서 다시 만났다. 이씨는 2년 6개월 전부터 이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씨가 이곳을 알게 된 건 이씨를 통해서이다. 만난 곳은 신설동 수도학원 맞은편 한국통신. 이들은 114 전화번호 안내원이다.

박씨는 회사에 입사해 14일 동안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친 박씨는 일자리에 배치됐다. 그리고 이씨가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했다. 벨이 울리면 “안녕하십니까?”라며 교육받은 대로 한결 같이 비슷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고객이 문의하면 “아, 네, ○○ 말씀이십니까?”라고 확인한다. 고객이 예스, 노를 말할 시간까지 컴퓨터 자판을 친다. 전화번호가 컴퓨터 화면에 뜨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라고 밝게 인사를 하고 울리는 다른 전화를 받는다.

박씨는 처음에 일을 빨리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씨가 기계처럼 자동적으로 일을 처리할 정도로 그 일을 손에 익히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조금씩 몸에 익혀졌다.

박씨와 이씨는 회사 내에서 마주쳤다. 점심시간이었다. 이씨가 먼저 “일이 어떠냐”고 말을 건넸고, 박씨는 “언니처럼 될 때까지 열심히 할 거다”고 말했다. 그때, 박씨는 이씨와 자신의 처지가 다르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 박씨는 31세, 젊은 나이다. 살면서 어려움은 있었지만, 개인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받는 사회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했다. “언니처럼…, 열심히…” 그러나 박씨는 알지 못했다. 개인이 인식하는 세상 위로 또 다른 세상의 틀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이 사회 구조이다. 그 사회 구조가 한 개인의 일상을 규정하고, 획일화된 모양으로 끊임없이 틀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박씨는 전혀 몰랐다.

동일 노동에 차별 대우

박씨보다 나이가 한 살 위인 이씨는 한국통신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99년 7월, 회사에서는 비정규직을 채용한다고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박씨에게 전화를 했다. “와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박씨가 자신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박씨가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때였다. 회사에서 정규직 채용이 없어진 지는 꽤 오래됐다. 이제는 114 안내원 800명 중 650명이 비정규직이다.

박씨가 이씨에게 “언니처럼…”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이 이씨의 마음에 많이 걸렸다. 사실 몇 년 사이에 사회는 비정규직의 삶과 정규직의 삶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냈다. 하는 일은 똑같지만 대우가 다르다는 것을 이씨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도움을 주고 싶긴 하지만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세상이다. “언니 나중에 봐.”

박씨가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나 허겁지겁 뛰어간다. 정규직은 점심시간이 1시간인데 비정규직은 30분이다. 우선 그것부터 차이가 있다. 붐비는 식당에서 비정규직들이 일제히 빠져나갔다. 박씨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 앞에 서자, 아침에 기분 나빴던 기억이 떠올랐다.

출근 시간은 9시. 박씨는 서둘러 출근시간보다 이른 8시 20분까지 온다. 8시 40분, 직원 조회를 마치고 커피를 뽑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정규직 114 안내요원들은 그를 가리키며 “젊은것들이 걸어서 갈 것이지”라고 혀를 찼다. 최근 114 안내요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아 나이 많은 안내요원들은 대부분 정규직이다. 박씨는 이 말을 듣자, 자동판매기 커피 한잔 마시고 상쾌하게 시작하려던 하루를 망친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이 꽉 찼다. 모두가 다 비정규직이었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외모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차별된다. 회사 안에서는 모두 유니폼을 입도록 되어 있다. 정규직은 신발부터 유니폼까지 색깔을 다 맞춰 입는 반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쓰던 물건이나 다 고른 다음 나머지 물건들을 배당 받는다. 색깔을 제대로 골라서 맞춰 입은 사람은 정규직. 아니면 비정규직이다. 딩동! 색깔 맞춰 입은 유니폼이 내렸다. 어림짐작으로 정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림없었다. 한층은 정규직 전용 사무실이다. 그는 정규직 전용 층에서 내렸다. 예전엔 3층에 비정규직이 3분의 1, 정규직이 3분의 2 가량 같이 생활한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한 층에 정규직만 분리해 사용하고 있다.

저녁 6시 25분. 박씨는 일을 마쳤다. 정규직은 6시까지 근무를 한다. 같은 층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이런 차별에 대해 조금씩의 불만을 얘기한다. 물론 회사 밖에서. 그러나 박씨는 열심히 해서, 등급이 올라갈 생각만 했다. 지금은 D등급이다. D등급이면 수당 없이 61만2,750원을 받는다. 특별한 감점 없이 3개월이 지나면 C등급이 된다. 그때는 12만 원이 월급에서 추가된다. B등급은 C등급보다 12만 원, A등급은 B등급보다 12만 원이 더 추가된다. 누구든지 지각이나 조퇴, 결근은 생각하지 못한다. 지각 한번에 마이너스 2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등급이 올라가는데 치명적인 영향을 받고, 1분의 지각이 12만 원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1/3 수준의 급여에 만족해야 한다. 동료들에 의하면 담당과장은 ‘얄짜 없는 사람’이라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과장과 친한 사이면,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다.

이것이 노동유연화인가?

시간이 흘렀다. 박씨는 자신의 처지를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다. 박씨가 입사한 지 1년 5개월이 되었다. 2000년 11월. 2000년이 예사롭게 넘어가지 않았다. 비정규직 138명이 주간에서 야간으로 부당전직 됐다. 이 처사에 138명은 항의했다. 그리고 한달 지나 138명은 과장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과장은 해고통보를 날리고, 한 달 휴가를 냈다. 그래서 연락이 안됐다. 해고당한 사람은 모두 1년 이상의 비정규직들이었다. 사람들은 ‘계약직이라고 하더라도 2년 이상 되면 정규직과 비슷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비정규직을 2년 이상 고용하지 않는다’고 수군거렸다. 이런 일은 97년에도 있었다고들 했다. 그리고 회사는 대규모로 다시 비정규직을 채용했다. 아마 2년 뒤, 연차가 높은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새로운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반복될 것이다.

신설동 한국통신 건물을 나서는 이씨. 퇴근 후 이씨는 동료들과 수영장에 몰려간다. 하루종일 앉아 있기만 해서 직업병이 생겼다. 허리와 손목이 아파 고생한 지 한참 됐다. 몇달 전 담당의사가 수영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회사에서는 얼마전 비정규직 해고 문제로 긴장감이 돈다. 동료들과 비정규직 얘기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알고 지내던 박씨와도 연락을 끊었다. 그러나 박씨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다. 한국통신 본사 건물 앞에서 60여 일이 넘는 기간동안 거리 농성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씨는 몇 시간 전에 한 기자와 통화했던 내용이 생각났다. 기자에게 “비정규직 문제로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했던 것이다. 박씨와 관련된 일로, 정확히 말해 비정규직 문제로 인터뷰하고 싶지 않았다. 수영장으로 향하던 이씨는 불현듯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나마 있던 정규직도 언제 구조조정 당할 지 모른다’는 생각.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판단도 들지만, 현재 사무실 분위기는 살벌하다. 정규직도 언제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위해 뭔가 할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않았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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