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7월 2001-07-01   377

환경식품도 가격 경쟁력 갖춰야

일본 생협연합회 ‘생활클럽’ 마루야마 시게키 위원

이번 호엔 일본 생활연합회 생활클럽 촉탁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루야마 시게키 씨를 만나 일본생협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는 정년퇴임 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지난 99년 초에 한국에 왔다가 올해 6월 8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국 체류기간 중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객원연구원과 성공회대학 강사(일본 협동조합론)로 활동하며 전국 생협 현장을 직접 방문해본 그가 던지는 한국 생협 발전방은 무엇이지 들어보자. 통역은 홍일표 참여연대간사가 맡아주었다. 편집자 주

일본 생활클럽 아시아생협협력위원회에서 10여년동안 활동하면서 대략적인 한국 생협의 현황은 알고 있었겠지만, 오랜 기간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구체적으로 현장을 둘러본 후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한국과 일본의 생협은 그 역사가 매우 달라서 단순 비교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만, 곳곳을 다니면서 견학과 강연을 하면서 보니 한국 생협들이 막 태어난 단계지만 매우 생명력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본다면 사회적 영향력은 아직 작은 상태더군요. 하지만 미래에는 성장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장래 한국적 생협의 기본 성격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생협은 전체 조합원이 2000여만 명에 이르는 등 사실 한국의 생협과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인데요. 그러한 발전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 생협은 1910년대부터 시작했으니 일단 80여 년의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물론 1930년대에는 군국주의로 변질·해체됐다가 2차 대전 후 재건됐고, 1970년대 경제성장에 힘입어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죠. 주된 성장 배경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심각해진 사회모순에 생협이 적절히 대응했기 때문입니다. 식품의 안전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유해 첨가물이 없는 식품을 제공했고, 많은 사람이 힘을 합하면 가격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주부들이 직접 경험하도록 한 것이죠. 예를 들어 TV 1만 대를 한꺼번에 사게 되면 70% 정도로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자금을 모아 가게를 내서 직접 운영도 했죠. 이렇게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개선하고 변화 시키는 데 생협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성들이 자각함으로써 생협이 발전하게 된 것이죠.”

한국 생협들은 주로 환경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운동을 하고 있으나, 고비용의 생산구조 때문에 비싼 값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어서 생협계 종사자들도 민중성, 대중성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는데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서기2000년의 협동조합」이라는 보고서에서도 각국의 협동조합이 식료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천명했듯이 21세기 생협활동의 기본 과제 중 하나는 바로 환경농산물의 생산·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생협은 지금 매우 중요한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다만 가격 부분은 저도 우려스럽게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생협 발전의 요인은 많은 사람이 협동해서 물품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과 민주적인 운영과 관리를 통해서 더 좋은 품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생협 관계자들은 좋은 품질과 농촌 농업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달리 가격에 대한 고민은 그에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포장, 유통과 가공에까지 이르는 전반적인 과정보다는 유기농법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생협의 대중화를 추구하려면 이 두 가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과 경제, 두 측면에서 모두 이익이 되어야지요.”

바로 그런 문제가 쌀개방 등을 앞두고 더욱 직접적인 과제로 다가오고 있는데요.

“시장개방 문제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저임을 무기로 한 중국과 대단위 농지를 발판으로 삼은 미국의 농산물은 한국산 농산물과 가격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한국 농업을 살리려면 일단 국민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생협이 중심이 된 지역자치의 한 완성형태는 바로 정치참여를 통해 가능할텐데요. 생활클럽은 정치관련 활동을 어떻게 진행해 오셨습니까.

“1970년대에 생활클럽에서 수질 등의 환경문제를 제기하며 합성세제 사용을 줄이는 시책 등을 자치단체에 요구했을 때 담당 공무원들은 제안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실하고 첨가물이 많은 재료로 제공되는 학교급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전국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게 됐죠. 생활클럽의 경우 조합원들이 조직한 ‘생활자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방선거에 입후보해서 당선된 지방의원이 이미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그 결과 쓰레기 양을 줄이기 위한 분리수거 문제나 다이옥신, 예산감시 등의 활동도 직접 정치에 참여해서 안정적으로 제도화하게 됐죠. 이렇게 자주적으로 참여하여 모순을 해결해 나간다는 것은 생활클럽의 핵심 슬로건입니다.”

세계적으로 거세게 일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여파 등으로 최근 각국 생협들이 답보 혹은 퇴보 상태에 놓여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만 일본은 어떻습니까.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생협도 커다란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조합원 수나 3조 엔에 달하는 공급과 수치만 보면 세계 최대 규모 수준이지만 소매업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기껏해야 2.7%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거기다 일본 내 2위 규모의 ‘삿포로생협’도 최근 경영위기를 맞았고, 매년 2만 명 이상씩 새 조합원이 들어왔던 ‘생활클럽’도 최근에는 거의 같은 수의 조합원이 해산·탈퇴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그간 협동조합 정신에 위배되는 비민주적인 사업태도를 보인 몇몇 조합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일본의 생협은 또 한 차례의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생협들도 도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나름대로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데, 차라리 유통근대화가 늦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생협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생협 관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시죠.

“지난 5월에 원주에서 열린 생협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한국 농민운동의 전형이랄까, 한국 생협의 근본 동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주에서 처음으로 생협이 생겨났다고 들었습니다만, 거기에는 가톨릭과 같은 종교계의 영향과 도시지식인들의 지원, 농민·노동자의 협력이 적절히 어우러져서 지역을 근간으로 한 생협이 발전하게 됐더군요. 바로 그것이 한국의 전형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모델을 어떻게 하나의 전형으로 순조롭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한국민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재활용으로 환경과 건강 지킨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일본인들의 ‘똑똑한 투자’ 생활클럽

현재 일본에는 약 600여 개의 생협이 있고 전체 생협 조합원은 이미 2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 가운데 ‘생활클럽’ 생협은 조합원이 약 25만 명으로 일본에서는 비교적 작은 조합이다. 그러나 1995년 9월 UN 50주년을 맞아 모범적인 시민운동을 벌인 공로가 인정돼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 분야에서 ‘We the peoples 50 Commynity Awards’라는 국제상을 받기도 했다. ‘생활클럽’이 벌인 환경운동은 매우 다양하다.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지 않고 계란을 공급, 연간 약 1300만 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였다. 또 병도 철저한 회수와 재활용을 위해 잼, 마요네즈, 식초, 주스, 간장 등의 병 규격을 통일했고, 우유도 병으로 공급한다. 그 외에도 100%재생지로 만든 화장지, 유기비료를 사용한 대다수의 농산물,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은 가공식품 등 환경과 건강에 좋은 물품을 계속 개발, 보급해왔다.

‘생활클럽’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합원이 모두 함께 출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조합원이 매월 1만 원씩 출자금을 적립해간다. 조합원 1인당 60만 원 이상을 출자해 총 1500억 원을 넘어섰는데, 이는 일본 생협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건전 경영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한혜영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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