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2월 2000-12-01   444

사회안전망에 이상 있다

어느덧 새 천년의 첫 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새 천년을 앞두고 한껏 부풀었던 불과 1년 전의 번영과 발전에 대한 기대와 소망도 다시 한번 맞게 되는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앞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40년 간의 정경유착에 의한 압축 경제성장의 결과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재주는 누가 넘고 이익은 누가 챙겼다는 말인가? 이 땅의 인권과 평화와 안정을 도모했다는 대가로 대통령은 온 민족의 자랑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지만 구조조정에 의해 거리에 나서게 되는 실업자 김씨와 이씨와 박씨의 한숨과 눈물은 누가 닦아주어야 할 것인가?

150조 원이라는 엄청난 공적자금 투입도 모자라 20조 원을 또 필요로 한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토록 ‘복지병’이니 ‘노동의욕 상실’이니 들먹이면서 2조 원을 아끼느라 국민기초생활보장이라는 사회안전망 장치를 듬성듬성 형식만 갖추게 함으로써 사회안전망 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한 이 땅의 신자유주의 경제인과 관료, 전문가들의 배짱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아울러 복지병과는 전혀 무관하게 국민들로 하여금 한탕주의를 기반으로 한 ‘벤처라는 이름의 전차’에 합승케 함으로써 그토록 우려한 노동의욕의 상실을 가져다 준 왜곡된 시장원리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비판과 해명을 하지 않는 그들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정치와 기업과 언론의 합작품으로 개미군단들을 속이지 아니하고서야 대명천지에 어떻게 벤처라는 이름으로 한때 10배 아니 100배의 이익을 증시에서 남길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동안 복지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다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실시에는 의아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이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이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국가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과 비판을 퍼부었던 경제전문가들은 이제 공적자금이라는 화수분과 벤처시장이라는 신기루 현상에 대해 오히려 답해야 한다. 그토록 걱정했던 노동의욕의 상실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말미암은 것인지, 아니면 점점 더 굳어져 가고 있는 20 대 80 사회의 빈부격차에 의한 박탈감 때문인지 답해야 한다. 해외여행과 골프, 고급술집을 전전하는 유한계층의 삶에서 이미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사라진 지 오래다.

실업은 가정 해체를 부른다

우리는 이제 또다시 10만여 명의 실업자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기업부도의 여파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는 이가 이보다 더 많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2년 가까이 정치적 논리 때문에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못했으며, 집단소송제, 집중투표제, 단독주주권과 같은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제도를 전혀 만들지 못해 시장 기능을 제대로 회복시키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아직도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자율경영을 위한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부실을 일으킨 경영진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 오직 부실의 책임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중간간부와 노동자에게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전가의 결과가 실업으로 나타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분명 실업은 우리에게 가장 큰 사회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실업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실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보장제도의 허술함과 함께 대부분 한 가구의 수입원이 가장 한 사람에게만 집중돼 있기 때문에 가장의 실직이 가족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버려지는 아이들, 학교와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청소년 자녀들, 갑자기 허드레 일자리조차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주부 등등 가정이 해체된 경우들을 우리들은 이미 2년 전부터 목도하고 있다. 부랑인 2,000여 명은 별도로 치더라도 전국의 노숙자들이 5,000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가정 해체의 한 모습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실업의 근본 해결책은 고용창출이지만 해체될 가능성이 큰 가족의 여러 문제들을 고려할 때, 우선적으로 허술한 사회안전망 체제를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사실상 사회안전망은 그 프로그램이 전국민을 포괄하기보다 특정한 집단을 겨냥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경제구조 조정기에 한시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며, 예방적 프로그램이라기보다 궁핍화 이후에 이를 치료 혹은 완화하려는 대증적 사회 프로그램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기존의 제도화된 사회보장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금년 10월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러한 성격의 사회안전망을 장기적인 사회보장제도로 전환하는 하나의 기제로 창출되었지만 경제논리에 밀려, 종전의 생활보호제도보다 오히려 엄격하게 적용되는 조건들 때문에 알려진 내용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따스한 삶의 자원을 아낌없이 건네자

1980년대 중반 이후 경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여러 국가들에 대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사회안전망 지원사업을 볼 때, 사실상 효과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의 관건은, 경제위기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당하고 있는 취약계층을 어떻게 표적 집단화하여, 이들의 사회적 생존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취업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 주느냐 하는 여부에 달려 있다. 즉 가난한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조직화와 여론선도의 명수인 보수 이해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을 압도할 수 있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능력이 어느 변수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회안전망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눔의 장치 구축의 걸림돌인 자원 기득권 옹호자들의 집단적·제도적 방어벽을 허물어야 한다. 아울러 복지개혁을 구현하는 데 긴요한 정부 내의 미비한 행정시스템을 고침으로써 복지개혁을 추동할 만한 정부 부처 내의 튼튼한 추진세력과 복지개혁의 사령탑을 이끌어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복지개혁 운동세력의 연대 약화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겨울은 분명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삶의 자원들을 요구한다. 기본적인 의식주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데 더욱 필요한 따스하고 푸근한 마음을 요구한다. 사회안전망의 부실을 탓하여 고쳐 나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 겨울에 당장 급한 것은 이들에게 삶의 자원을 아낌없이 건네주는 일이다.

‘참여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 안의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를 활성화하도록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뿐만 아니라 어려운 자들에게 사회자원이 골고루 미치도록 배분과정에서의 참여를 활발히 해 나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외당하는 자를 버려두고서 ‘참여 사회’를 만들자고 외치는 것은 분명 위선이다. ‘참여 사회’는 바로 이런 소외당한 자들을 끌어안는 데서부터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20세기말 세월의 한 끝자락을 붙잡고 상고하면서, 이것의 실현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다짐이 되었으면 한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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