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2월 2000-12-01   732

사과 나무 아래에서 맛본 공존의 기쁨

장애인 농활

‘장애인농활’. 다소 의아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편견을 깨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농활을 통해 ‘노동의 기쁨은 인류보편적 진리이자 지켜져야 할 인간의 기초적 권리’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한 농활대원의 얘기를 들어보자.

장애인·비장애인·농민이 함께 노동하면서 일하는 보람과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장애인 농활이 어느덧 횟수로 4회째를 맞고 있다. 처음 준비할 때는 주위의 염려와 격려가 함께 있었다. 그러나 98년부터 매년 여름에 5박6일간 장애인농활을 실시하면서 농활대원에게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지역농민에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에 큰 기여를 했다. 이번 가을 장애인농활은 장애인 30명을 포함해 70여 명이 참가한 여름 장애인농활이 성황리에 끝나게 되어 다시 계획되었다. 이번에는 경기, 대구경북지역의 정신지체장애인과 지체 장애인 14명, 학생·주부 자원활동가 32명 등 총 46명이 참가했다.

11월 4일부터 5일까지 1박2일의 가을 장애인농활이 펼쳐진 곳은 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였다. 이 마을은 사과와 고추, 마늘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곳이다. 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나는 것이니만큼 옥산면에서 나는 사과 맛은 과히 일품이었다.

농활대원들이 머문 곳은 전흥리 마을회관. 평소에는 마을의 노인들이나 주민들이 담소도 나누고, 마을 회의 및 행사시마다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부엌에는 큰 냉장고와 싱크대, 웬만한 식기도구가 다 있었고, 무엇보다 늦가을이라 밤에는 매우 추워질 것을 염려했는데, 가을밤을 후끈후끈하게 데워줄 보일러 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장애인농활

짐 정리와 발대식, 점심식사까지 마친 농활대원들은 곧바로 오후 작업에 들어갔다. 농활대원들이 할 작업은 사과 따기, 딴 사과를 한 곳에 모아 꼭지 따기, 크기와 상태에 따라 선별하기, 햇볕을 골고루 잘 받으라고 사과나무 사이사이에 깔아놓은 비닐 은박지 걷어내기 등이었다.

사과는 보통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수확한다. 그래서인지 농활대원들이 도착했을 때는 사과를 따느라 마을전체가 바빠 보였다. 한창 사과를 수확할 시기인데다 1박2일의 짧은 농활이었기 때문에 이번 농활의 일정은 조금 빡빡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작업은 6∼7명이 한 조를 이루어 나갔는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짝을 지어 사과를 따고, 딴 사과를 담아놓은 바구니들을 리어카에 담아서, 꼭지를 따고 있는 곳까지 운반하고, 나무사이에 깔아놓은 은박지를 제거하고, 사과꼭지를 따서 선별하는 일을 했다. 대부분 정신지체 장애인들이어서 사과를 운반하거나 이동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사과를 딸 때 사과꼭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것은 사과의 상품가치와 직결되는 것인데, 사과 꼭지를 떨어뜨리지 않고 사과를 따는 것이 손에 익지 않은 농활대원들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꼭지가 떨어지지 않게 사과를 따다 보면 사과에 지문이나 흠집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렇게 사과를 따거나 운반하는 과정에서 흠집이 생기면 그 사과는 제대로 된 값을 받기가 힘들다고 한다.

“사과의 아래 윗면을 손가락의 엄지와 중지로 잡고 살짝만 비틀면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사과가 따진다”는 과수원 주인 아저씨의 설명을 들은 후였지만, 여전히 사과 따는 것에 서투른 대원들은 꼭지가 없는 사과를 따기 일쑤였다. 결국 일의 분업이 이루어졌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사과 따기 작업’은 대개 비장애인들이, 사과를 운반하고 꼭지를 따는 등의 작업은 장애인들이 맡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손에 익게 되어, 사과를 따는 손이나 나르거나 꼭지를 따는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늦가을의 짧은 해로 오후 작업은 어느덧 끝이 나고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한 쪽에서는 저녁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고, 마루와 방안 곳곳에서는 각 조별 모임이 한창이었다. 조 이름과 조 구호를 정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한 쪽에서는 ‘와하하’ 웃음이 터지는가 하면, 한 쪽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는 장애인, 비장애인, 너, 나라는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 조’ 라는 이름만으로 모두들 하나가 되어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끼리끼리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와중에 바깥 수돗가에서는 설거지가 한창이었다. 40개가 넘는 식판과 국그릇, 수저들이 쌓여 만만치 않은 양이었다. 한 정신지체 장애인은 바깥 날씨가 추워 손이 시린데도 맨손으로 수세미를 들고 열심히 그릇을 닦고 있었다. 연신 도와주려고 곁에 앉는 사람들을 “저리 가”라며 단호한 손짓으로 내쫓으면서….

저녁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마을의 농민들과 함께 낮에 했던 작업에 대한 간단한 평가의 시간을 가진 후, 모 방송에서 지난 여름 농활을 방영한 비디오를 보면서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TV화면에 나오는 장면을 보며 방 안은 어느 새 지난 농활의 추억으로 가득 채워졌고, 그 때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0박스의 사과를 챙겨준 따뜻한 농민의 마음

다음 날, 간단한 체조와 아침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별로 각각 사과를 따기 시작했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기에 떠나는 시간을 몇 시간 앞둔 대원들의 마음은 바빴다. 바쁜 마음만큼이나 행동들도 빨라졌다.

전날 밤 재활원의 보육사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울음을 그치지 않아 같은 방에서 잠자던 여자 대원들의 단잠을 설치게 했던 한 정신지체장애인은, 다음 날 작업 내내 반쯤 감긴 눈으로 ‘잠 온다’를 연발하면서도 “쉬었다 하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작업하던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사과밭 주인아주머니는 장애인들이 사과를 운반하면서 혹여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작업 내내 걱정이었다. 그러면서 사과를 깎아서 직접 손에다 쥐어주기도 하고 바쁘게 오가며 사과를 나르고 있는 장애인들을 보며 대견해했다.

오후 3시, 작업이 끝난 대원들은 하나둘 숙소로 돌아와 대구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차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서로가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이 느려지고, 인사를 하고 또 했다. 마을 주민들은 20박스 가까운 사과를 챙겨서 실어주고서도 아쉬움이 남는지 “숱한 농활대가 오지만 장애인농활대가 왔을 때만큼 동네가 들썩이지는 않는다”는 의성군 농민회 회장의 말을 되새긴다.

‘땀흘려 일하는 노동 속에서 장애와 편견을 버리자’라는 구호 아래 시작된 1박2일의 가을 장애인농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부대끼며 일하는 가운데 농활대의 구호처럼 장애인들은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들은 편견을 벗어버릴 수 있었으며, 나아가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의 ‘공존’을 생각하는 조그마한 기틀이 되어준 이틀이었다.

정혜경 우리복지시민연합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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