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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0년 12월
  • 2000.12.01
  • 868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을 벌이는 이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은 베트남전은 게릴라전으로 당시 속칭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는 특수상황이었고, 어차피 전쟁에서 어느 정도의 민간인학살은 불가피하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민간인인지 여부가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동인은 민간인으로 간주된다. 민간인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 개인들이 민간 주민 내에 존재하는 경우라도 그것은 주민의 민간적 성격을 박탈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전쟁에 있어서의 민간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보호를 천명하고 있는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를 떠나서라도 최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2000년 6월 1일 30년 만에 비밀해제한 보고서에 의하면 참전 군인들의 이러한 상황논리는 객관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임이 드러났다.

동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참전군인에 의한 베트남민간인학살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미군이 자체 조사에 나섰고 어떤 경우에는 미국, 남베트남, 한국 3국의 공동조사도 이뤄졌고, 이러한 공동조사에서도 한국참전군인에 의한 민간인학살은 사실로 확인됐다고 한다.

1969년 5월 10일 3국의 합동조사반은 남베트남 제1군단 사령관에게 보낸 극비문서를 통해 “지뢰와 수류탄 폭발로 인해 지뢰제거팀에 희생자가 발생했고 저격으로 인한 고통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나, 한국군이 광분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 “한국군이 푹미촌의 민간인들에게 발생한 사망·부상·상해·재산피해에 대한 보상금을 시일 안에 지급할 것. 책임자들에게 적절한 징계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부인할 수 없는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위 미군보고서에 나타나는 사건들은 모두 3건이며 베트남 중부지역인 쿠앙남성에서 1년 정도 사이에 일어난 것들이다. 이러한 사건들과 관련해 1970년 1월 10일자 『뉴욕타임스』에는 “한국군이 수백 명의 베트남 민간인들을 살해했고 주월미군사령부의 고위장성이 한국군에 대한 조사를 중단시켰다”는 재월 인문과학연구소 전 소장 테리 람보의 글이 실리게 되었는데 미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는 즉각 주한 대사관에 전문을 보내 “한국군 관련사건에 관한 보고서가 절대로 언론에 알려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한편 주한미대사 포터는 당시 한국 내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박 대통령,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 최규하 외무장관 등이 모여 긴급히 우리와 토의했다. 청와대는 한국 언론매체들이 이 이야기를 보도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포터 대사는 1970년 1월 23일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또 다른 전문에서 “1월 22일 두 명의 한국군 장교가 한국해병의 베트남 민간인학살 의혹 보도를 조사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출발했다”면서 두 명의 한국군 장교에 대한 구체적인 실명까지 언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민간인학살 의혹’과 관련문서의 존재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지만, 위와 같은 보고서의 내용에 의할 때 이제 더 이상 부인으로 일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또한 위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국내 정보기관에서 베트남민간인학살에 대해 정보를 수집했다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공개, 입수된 보고서는 3건의 학살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에서 제기되고 있는 학살사건들이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추가자료가 공개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위 보고서가 우군인 미군 측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사건의 규모나 전모가 축소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이뤄질 관련자의 증언과 추가자료의 공개로 베트남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은 이제 누구도 막지 못할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 될 것이며,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감춰두었던 진실을 백일하에 공개하여 정확한 진상규명과 사후처리를 해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는 건 ‘진실’ 때문이다

얼마 전 일본에 70만여 년 전 전기구석기문화가 존재했음을 나타내는 유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미야기(宮城)현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의 석기발굴이 날조됐던 것임이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추적 결과 밝혀져 알려진 적이 있다. 70만년 이전의 구석기 유물이 일본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은 사건으로서 역사학계에서 일본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니치신문』의 날조사실 폭로가 기존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다시 쓰게 하고 일본 역사학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상당한 상처를 안길 수 있음에도 많은 고민 끝에 진실을 향한 확신과 일념으로 자신들의 치부를 폭로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우리는 일본사회의 건강한 힘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반면 종군위안부문제나 강제징용문제에 있어서 일본정부가 보여주는 태도는 지극히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발굴날조와 위안부, 징용문제는 모두 일본에게 있어서는 감추고 싶은 치부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사례에서는 과감히 이를 밝히고 다른 하나의 사례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 중 우리는 어디서 일본의 힘과 희망을 더 느낄 수 있을까?

국내 한 언론이 처음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을 때 베트남 현지에 있는 교민들은 “베트남 교민들과 무슨 원수라도 졌나. 3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을 새삼스럽게 들추는 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라고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보도를 접한 베트남 사람들의 반응은 한국교민들의 우려와는 정반대였다.

베트남의 유력 신문인 『일요 투오이제』의 투이응아 기자는 “이번 보도가 한국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의식의 근저를 흔들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표현하지 않지만 마음 밑바닥에 한국인들에 대해 미움의 감정이 웅크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역사 뿐 아니라 최근 한국기업 관리자들에 의한 노동자구타사건까지 얽혀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가운데 몇 년 전부터 베트남에 수입된 ‘한국드라마’들이 그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는 역할을 해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드라마가 한국에 대한 인상을 극히 일부 ‘개선’하는데 그쳤다면, 한국군 양민학살보도와 성금운동은 한국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을 ‘전복’시키고 있다”고 말하면서 역사적 과오를 스스로 고백하고 사죄하는 모습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저력’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이는 30년이나 지난 지금에 있어 왜 새삼스럽게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베트남민간인학살문제를 거론하느냐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피해자들과 참전군인들이 아직 생존해 있는 지금이야말로 정확한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이며 눈앞에 드러나는 치부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연 무엇이 우리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냉정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진실은 진실 자체로 역사 앞에 자리매김돼야 하는 운명인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차규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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