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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0년 12월
  • 2000.12.01
  • 1070
민족은 다르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버마 좀 도와주세요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대한불교 조계종 석왕사가 바라다보이는 주택가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동남아 외국인노동자들이 삼삼오오 줄을 이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도보로 5분, 녹슨 쪽문을 여니 작은 부엌과 온돌방 두 개가 나온다. 방 벽에는 붉은 바탕에 노란 공작새 한 마리가 하얀 별을 좇는 커다란 깃발이 붙어 있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LA :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Liberated Area) 당기. 그 깃발 아래 버마 청년 예닐곱이 모였다. 그들은 현재 한국정부에 난민지위를 신청했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한국지부를 설치하고 활동중이다.

아웅밋쉐(Aung Myint Swe·40세) 회장을 필두로 얀나이툰(홍보부장·30세), 내툰나잉(총무·31세), 저샤린(대외협력국장·29세), 쩌쩌루인(회계·29세), 킨마웅예인(서기·35세), 르윈(36세) 등 이들은 모두 버마 독재군부로부터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현재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형벌을 받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 한국 NGO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피부색과 민족은 다르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버마가 처한 인권상황의 개선을 위해 버마 군부에 압력을 가해 달라는 것.

버마의 성인 문맹률 60∼70%

1988년 8월, 버마에선 5·18 광주민중항쟁과 같은 민간인 대량학살사건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네윈정권의 일당독재에 반대하고 다당제 총선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를 전국적으로 벌였다. 전체국민 중 85% 이상이 불교신자인 버마에서 승려들마저 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때 최소 2,000명∼1만 명에 이르는 민중이 군부에 의해 학살됐다는 보고가 있다.

이런 대량학살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지자 압박감을 느낀 버마 군부는 여론환기용으로 ‘버마’에서 ‘미얀마’로 국가명을 바꾼다. 이에 대해 버마 민중들은 면죄부격인 ‘미얀마’라는 국가명을 거부, 자신들을 ‘버마인’이라고 칭하고 있다.

버마민족민주동맹은 88년 8월 민중항쟁 직후 반정부통일전선을 결성해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발족된 정당이다. 아웅산 수지가 이끌고 있는 버마민족민주동맹은 90년 5월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80.8%를 차지해 군부에 정권이양을 요청했으나 오히려 강력한 탄압을 하는 것은 물론 당선된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거나 구금해 가두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 워싱턴에 버마연방국민연합정부(NCGUB-The National Coalition Government of the Union of Burma)를 설립해 전세계 20개 국가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이런 버마민족민주동맹의 기본강령은 인권보호, 각계각층이 참여한 평화적 방법을 통한 민주정부 수립, 자치권의 확대를 통한 소수종족 문제의 해결 등이다.

2000년 현재, 버마는 어떤 모습인가? 최근 관광비자로 버마를 다녀온 시민단체 ‘나와 우리’의 김종현 씨에 따르면 ‘버마의 민주화는 아직까지 요원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한다.

“버마의 교육현실은 정말 암울하더군요. 88년 민중항쟁 이후 96년까지 버마에 있는 대학은 총 30개월만 문을 열었어요. 대부분의 대학이 완전 폐쇄됐고, 2000년 7월 24일 이후에는 양곤대를 비롯 외곽의 몇몇 대학만 문을 연 상태지요. 그 학교들도 1년에 3개월만 수업하는 정도예요. 제가 갔을 때도 대학 내에 외국인 출입이 금지돼 있어서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버마민주화운동 웹사이트 ‘FREE BURMA’에 따르면 14세 미만의 버마 어린이들 940만 명이 현재 등교조차 못하고 있다 하고, 아시아 개발은행은 70%의 버마 어린이가 교육을 받고 있지 못다고 추정하고 있다. 성인의 문맹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는 약 60∼70%의 성인이 글을 모르는 현실에 처해 있다. 이뿐 아니라 국가예산의 40%가 국방비 예산으로 쓰이는 반면, 교육 분야에는 단 7%만 예산이 소요되고 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버마의 학생들은 IT산업을 배울 여건이 충분치 않을 뿐더러 컴퓨터와 TV에 대해 기부금을 내야 하는 실정이다. 버마의 학교에서 컴퓨터를 다루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이것은 학생이든 교사든 마찬가지인 현실이다.

최근 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회원들은 이처럼 ‘전국민 우민화 정책’을 꾀하고 있는 독재군부의 야만성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서명운동을 비롯해 대학 내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조직하고 있다. “학교를 열자! 미래를 열자!” 캠페인이 바로 그것. 캠페인에 동참을 호소하는 얀나이툰 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이 클로즈(Close)됐다는 건 우리에게 너무나 심각한 문제예요. 학생들이 지금 공부도 못하고 있어요. 영 제너레이션(Young Generation:신세대) 어떻게 해요? 우리 정말 큰일 났어요. 군부 때문에 국민들이 공부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많이많이 신경 쓰이고 걱정돼요.”

군부와 손잡고 경제교류 꾀하는 DJ 이해 안돼

10년이나 한국에 있었다는 그는 식성이나 생활력 모두 한국사람 다 되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고 말 조국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한국이 좀 도와줬으면 한다고 호소한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버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최근 노벨평화상도 받았으니 이제는 버마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뭔가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넌즈시 묻는다. 그러나 저샤린 대외협력국장은 김 대통령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김 대통령도 이제 아웅산 수지 여사와 동급이 된 거예요. 하지만 10월 13일 노벨상 수상 결정이 된 이후로 버마에 대해 한마디도 안 했어요. 또 김 대통령은 9월 5일∼6일 열린 UN회의에서 버마문제 돕겠다고 말했는데, 노벨상을 받고 나서는 해주는 게 없어요. 오히려 상 받고 나서 10월 30일 버마 우피손 통상부장관을 초청해서 한국이 계속 버마에 투자하겠다고 말했어요. 유럽의 나라들은 버마에 투자하지 않아요. 버마가 민주화되면 그때 투자하겠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은 독재정권에게 압력을 가하지도 않고 오히려 군부랑 경제적인 도움만 주고받고 있어요.”

잠깐의 침묵이 오갔다. 대부분 엘리트 출신으로 양곤대학을 다니다 독재군부를 피해 외국에 망명한 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 그들은 어찌 보면 7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가들의 모습 그대로다. 그런 그들을 백안시한다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인 동병상련을 외면하는 것은 아닐지….

지난 5월 17일 NLD 회원 20명은 한국정부에 난민지위를 요청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심사중’이라고만 말할 뿐 이렇다할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모두들 이주노동자로 인권탄압을 받으며, 동시에 조국 민주화운동을 펼치는 그들은 한국에서도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얀나이툰 씨의 생각이다.

“한국정부는 우리가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서, 또 일해서 돈 벌려고 난민지위를 요청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는 버마에서 민주화운동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 와 있는 거예요. 버마 민주화되면 바로 갈 거예요.”

난민지위를 부여받으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정치학과 법학 공부란다. 언젠가는 돌아갈 조국 버마를 위해 활용할 내용을 배우고 싶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최근 그들은 버마 인권문제를 이슈로 동아대에서 포럼을 개최했고, 영화 <데모크라시 예더봉>도 제작했다. 11월 말에는 그들의 투쟁을 엮은 책을 출간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끝없는 투쟁, 언젠가는 돌아갈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오늘도 “FREE BURMA”를 외치고 있는 그들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낸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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