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2월 2000-12-01   1315

한번 맺은 인연으로 20년간 한반도 평화지기로 살다

미국친우봉사회 아시아 담당 존 페퍼와 카린 페퍼

어찌어찌하다 보니 벌써 1년이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중간에 두 번 빼먹었으니 1년 어쩌구 할 처지가 못 되긴 하지만 아무튼 인터뷰 기사를 쓸 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면피’는 됐으면 한다.

여기까지만 읽으셨어도 독자들은 ‘이 친구 이번엔 분위기가 좀 이상하네’ 하고 눈치채셨을 게다. 그렇다. 중간에 두 번을 빼먹었든 어쨌든 1년이란 시간을 채우면서 나는 이 코너를 떠나기로 했다. 뭐 다른 이유는 없다. 벌여 놓은 일이 많다 보니 요즘 같아서는 도무지 몸이 두세 개라도 못 해먹을 일이라서 최선을 다하지 못할 바에야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 인터뷰를 하필이면 코 큰 친구들과 하라고 하는 걸 보니 내가 그렇게도 미웠던가. 참여연대 사무실 밑 느티나무 카페에 죽치고 앉아 두 시간여 동안 영어, 무지하게 괴롭혔다.

존 페퍼와 카린 페퍼, 이 두 사람은 부부다. ‘미국친우 봉사회’라는 사회운동단체의 아시아 지부 책임자들로 일본 동경에 거주하면서 주로 남북문제와 관련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에 성균관대에서 열린 ‘21세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교육을 위한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왔단다. 굳이 물어보진 않았지만 둘이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결혼까지 한 모양이다. 나도 처음 알았지만 이 단체는 퀘이커 교도들의 단체로 역사가 꽤 깊다.

우선 ‘미국친우봉사회’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리죠.

“우리는 퀘이커 단체로 1차 대전 당시에 결성됐습니다. 원래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지요. 첫째는, 전쟁에 반대해서 군 입대를 거부하고 평화사랑을 전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로는, 전쟁중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는데 러시아나 독일 등의 민간인 피해자를 위한 구호활동 등을 펼쳤습니다. 이후에는 난민 구호는 물론이고 제3세계에서의 분쟁조정 활동, 그리고 시민운동을 지원하고 있지요.”

그러면 구성원들은 전부 퀘이커 교도들입니까?

“물론 퀘이커에 의해 설립된 국제단체이긴 하지만 집행 위원회만 퀘이커일 뿐이지, 스탭들까지 전부 퀘이커는 아니에요. 스탭들 가운데 퀘이커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두 사람은?

“우린 퀘이커가 아닙니다. 스탭들은 다양한 커뮤니티를 대표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퀘이커일 수가 없지요. 또 여러 가지 이슈들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출신이 다양할 수밖에 없어요. 흑인 등 소수민족 출신들도 많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내 문제 뿐 아니라 국제관계라든가 미국과 다른 나라 간의 이슈를 다룰 때는 해당 지역 출신의 스탭들이 일하기에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미국 출신이면서 왜 한국문제에 뛰어들고 있지요? 한국 출신의 스탭이면 더 유리할 텐데요?

“남북한의 경우는 좀 특수합니다. 한국만이라면 괜찮겠지만 북한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 들어가서 일할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비록 미국 국적을 갖고 있더라도 코메리칸은 그 정체성이 어디까지나 코리안으로 인식이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북쪽의 파트너는 코메리칸을 미국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는 거지요. 물론 상황은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북한이 어느 정도 빗장을 풀고 있으니까 저는 제 후임자는 한국 출신이나 중국 출신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미국의 시민단체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의 경우에도 지나치게 미국인들로만 구성돼 있어요. 이를테면 이것도 일종의 제국주의, 그러니까 낮은 강도의 제국주의(soft imperialism)라고 할 수 있지요 (웃음). 우리는 가능하면 인적 구성도 국제적으로 했으면 합니다.”

듣고 나니까 이 단체가 하는 일이 대충 들어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북한과도 상당 수준의 교류가 있어왔다는 얘긴가?

“북한과는 교류가 시작된 지 이십 년쯤 됐습니다. 민간차원에서의 협력이나, 특히 경제위기 이후로는 구호 사업 등을 해왔지요.”

그러면 북한 내의 파트너는 누구지요?

“자세히 밝히긴 어렵습니다. 다만 그 동안 파트너가 계속 바뀌었고, 이름은 ‘세계단결을 위한 조선위원회’라는 정도로만 하지요. 북한과의 일은 매우 예민한 부분이 많아서 더 이상은 말하기 곤란합니다. 미안합니다.”

거기서도 이른바 분쟁조정 활동 같은 걸 합니까?

“아니오. 북한에는 우리가 끼어들 만한 분쟁 이슈가 없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식량지원이나 의료지원 같은 것을 해왔습니다.”

몇 번이나 다녀왔고 그 동안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게 느껴졌는지요?

“98년과 금년 두 차례입니다. 우선 외국인들이 많이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대개가 NGO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차량도 좀 늘었고, 특히 오토바이가 많이 늘었더군요.”

몇 가지 북한과의 교류문제를 더 물었으나 자세한 대답을 피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아무튼 북한과의 교류에 비하면 한국과의 교류는 꽤 늦은 편이다.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게 98년의 일이고, 99년에야 시민운동 지원을 위한 첫 워크숍을 가졌단다. 그런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세계에서 우리만큼 운동 잘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97년의 민주노총 총파업은, 그 파업 잘하는 프랑스의 노동자들도 감격해 마지않았다고 하던데, 우리 시민사회나 노동계의 운동역량은 오히려 수출을 할 정도가 아니냔 말이다.

“한국의 운동가들은 우리가 제시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운동기반은 튼튼합니다. 아마도 세계 제일의 운동가들이 아닌가 싶어요. 솔직히 말해 한국의 운동가들은 미국의 운동가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첫 워크숍을 해보고 나서 우리가 여기서 무슨 교육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거 우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만큼 우리는 사회가 불안정해서 운동할 일도 많고 그러다 보니 이른바 운동의 대가가 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프로그램은 어쩌면 지극히 미국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적 상황에 맞는 한국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한국의 운동가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제시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급진적인 시위행동은 권위주의 시대에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시대는 변하고 있고, 아직까지 권위주의 잔재는 남아 있지만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신장된 시점에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요. 그렇다고 물론 시위를 멈추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좀 추상적인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서 얘기해 보지요.

“이른바 제3자 중재 방법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건 옛날부터 있어 왔는데….

“아닙니다. 한국의 분쟁에서 중재자는 실제적으로는 한쪽 편을 들어왔다고 봐요. 예를 들어서 의약분쟁에서도 참여연대나 경실련이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의사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중재자는 기본적으로 누구 편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아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요. 그런 면에서 한국은 진정한 의미의 중재자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미국도 초기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어요. 저희는 이런 중재자를 찾고 만들어내는 일을 지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기도 하다. 나 또한 방송사 파업을 여덟 번을 거치면서 그 때마다 많은 중재자들을 보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완전 중립의 중재자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노동부나 시민단체들은 각각 중재자의 입장에 섰지만, 대부분 전자는 사용자 편, 후자는 노조 편이었으니까….

아무튼 한국에서 ‘미국친우봉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많이 있겠군요?

“아닙니다. 기업 내의 분쟁 등에 대해선 아까 말한 것 이상의 역할은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통일 이후의 상황에서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독일의 예에서도 보아왔지만, 통일이 되면 많은 분야에서 여러 가지 갈등, 분쟁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작은 커뮤니티에서부터 정부 차원까지 다양하지요. 구직문제, 차별 문제 등등… 너무나 많습니다. 통일된 상태가 진전될수록 분쟁은 불가피합니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준비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저희가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남북문제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미국이 남북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뭐라고 봅니까? 사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남북 분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미국 정부는 어찌 됐든 남북 통일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물론 미국은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사적 표현이 아닌 실제적인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도 그 실체를 인정하고 빠른 시간 내에 관계개선을 해야 합니다. 단, 여기서 짚어야 할 점은 북한의 경우 너무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경제위기를 넘기기 위해 돈을 원하지만 미국은 북한에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지리적으로 너무 멀고, 임금도 중국에 비해 높습니다. 다시 말해 경제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중요하지요. 북미관계의 해결은 우선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군철수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글쎄요. 주한미군은 남북통일이 된 뒤에도 계속 주둔하는 걸로 얘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른바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 김정일 위원장도 내심 바라고 있다고 한국의 대통령도 얘기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미국은 한국 방위에 지상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지상군이 없어도 미사일이나 함대 파견 등으로 방위가 가능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철수할 겁니다. 미국인들도 기본적으로 미군이 해외분쟁에서 죽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실제로 펜타곤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고 공화당 후보인 부시 진영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신문에 다 나온 얘깁니다. 필요하다면 복사해서 보내드리지요. 저는 이것이 한국에겐 긍정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매향리 분쟁이 길게 보면 미군 철수 논의의 첫 단계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예를 들어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도 남북문제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란 가설도 성립이 되겠군요.

“그 부분은 이렇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화당 정권 때 해외 분쟁이 해결됐습니다. 닉슨이 중공과 관계개선을 했고, 부시가 소련과 관계개선을 했잖습니까? 하지만 카터 때 이란-이라크 사태가 악화됐고, 클린턴도 94년에 북한 폭격 일보직전까지 갔습니다. 역사적으로 민주당 정권이 해외분쟁에 더 많이 개입해 왔어요. 지금 고어 후보도 마찬가집니다. 오히려 부시가 내놓고 있는 정책들이 개입을 줄이는 쪽입니다.”

얘기가 의외로 술술 풀려간다. 사전에 질문을 준비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말꼬리를 이어가는 재미가 더한 것 같아서 사전질문지는 덮어놓기로 했다.

주한 미군 얘기가 나왔으니 이제 다음 질문은?

SOFA 개정에 대해 한국민들이 갖는 관심이 큽니다. 한미간에 구조적 불평등의 원인이 돼왔는데 두 사람이 속해 있는 단체가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SOFA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 시민들에 대한 교육부터 시켜야 합니다. 미국의회나 정부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한 다음 정책입안자들을 압박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들도 앞으로 이 문제로 그들을 만날 계획을 갖고 있어요. 또한 미국 내의 시민운동 조직을 통해서도 이 문제를 공유해 나갈 계획입니다.”

말대로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내가 미국에서 한 이태 살아본 경험으로는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아주 무식하다는 것이다. 어느 친구는 내게 어디 출신이냐고 묻길래 농담으로 노스 코리아(North Korea)라고 했더니, 그럼 사회주의자냐, 자본주의자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남북문제에 대해 아주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가령 남북 정상회담을 한 것이나 시드니 올림픽에 남북이 동시입장하는 걸 보고 많은 미국인들이 흥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미국이 남북통일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또 남북통일이 좋다거니 나쁘다거니 말하지도 않습니다. 관심이 있다면 통일의 형식 정도지요. 연방제나 연합제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서독의 자본주의가 동독을 흡수한 것처럼 남한도 그렇게 북한을 흡수하게 되는 걸 보고 싶어합니다. 오히려 미국사람들은 중국에 더 관심이 있어요. 특히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선 크게 평가하지 않고 중국이 향후 미국 안보상의 큰 관심사가 될 걸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SOFA든 남북통일 문제든 이런 일반적인 미국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겁니다.”

들을수록 재미는 있는데 이걸 들으면서 바로 우리말로 받아 적으려니 정말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주문한 유자차를 다 마시고 찌꺼기에 다시 물을 부어 삼탕, 사탕까지 해먹으니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다. 마무리해야겠다.

한국의 운동가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어떤 건가요? 뭐가 제일 어려워 보였지요?

“기본적으로 모든 운동은 문제가 있는 법이지요. 제가 보기엔 일단 자금과 힘이 없는 게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운동에 대한 시민의 지원이 모자라요. 기부금만 놓고 볼 때도 상당히 부족합니다. 미국의 시민운동은 대부분 기부금과 자원봉사로 꾸려 나갑니다. 한국에서도 기부금을 내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운동 내에서 여성들이 일정부분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여성운동에서는 여성이 주체가 되지만, 같이 하는 경우에는 아직도 여성들의 힘이 없어 보입니다. 가령 거의 모든 모임에 남성들이 연설자로 나서는 것도 단편적인 예이지요.”

글쎄… 내가 보기엔 꼭 그렇지만도 않던데… 약간의 논쟁이 필요해 보였으나 그만두기로 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첫 부분에 던졌어야 할 질문을 깜빡하고 있었다. 이걸로 정말 마무리하자.

왜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20년 전에 미국에서 당시 교환학생으로 왔던 한국학생을 만났습니다. 유정애란 학생이었지요. 그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지역이 한반도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한국은 미군주둔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고, 특히 역사적으로 보면, 분단 이후 정치적인 분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이런 해방공간에서의 이데올로기 투쟁과정에는 미국도 개입돼 있었습니다. 그 학생과 이런 문제들을 많이 토론했습니다. 그 만남이 결정적인 것이었지요.”

그렇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기도 하고 또한 결정적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우연’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지 못할 뿐…. 인터뷰가 끝난 후 이들은 남대문 시장인가 동대문 시장인가를 간다면서 사람들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고, 나는 참여연대 건물 옆에 세워둔 내 차에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있지나 않나 전전긍긍하면서 잰 발걸음을 돌렸다.

『참여사회』를 위한 내 마지막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독자 여러분 내내 건강하시길….

손석희 MBC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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