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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0년 12월
  • 2000.12.01
  • 885
이 기획은 지난 호에서 신사회운동과 한국 시민운동을 검토한 바 있다. 이제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시민운동과 정당정치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 사회가 국가(정치사회), 시장(경제사회), 시민사회로 구성되어 있다면,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정당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들을 결집, 이를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이후의 서구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정당은 시민사회의 의사를 대변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권력획득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시민사회로부터의 요구를 오히려 탈정치화시키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버마스가 강조한 ‘공공영역의 재봉건화’는 바로 이러한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후 서구사회에서 이러한 정당정치의 빈곤은 ‘의사당 밖에서의’ 신사회운동이 ‘의사당 안으로의’ 정치사회에 진입하려는 관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켜 왔으며, 녹색당의 등장은 그 구체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서유럽 녹색당의 경험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녹색당은 1972년 스위스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영국,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속속 창당되어, 현재 서유럽은 물론 전 유럽과 북미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러한 서구 녹색당 가운데 특히 독일 녹색당은 그 대표 주자로 손꼽혀 왔다. 1980년에 창당, 1983년 총선에서 5.6%의 득표를 차지함으로써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한 독일 녹색당은 이후 부침을 거듭해 왔지만, 1998년 사민당과의 이른바 적녹연합을 통해 내각에 참여함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1985년 헤센 주에서 적녹연합을 주도했던 요시카 피셔가 1998년 연방정부 외무장관으로 나타났을 때 신사회운동에 관심을 두어 왔던 많은 사람들의 감회가 작지 않았는데, 68운동에서 신사회운동으로, 신사회운동에서 녹색당으로, 그리고 녹색당에서 제도정치로의 끊임없는 변화는 바로 20세기 후반 신사회운동의 역사를 그대로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당의 등장은 서구 신사회운동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기왕의 정당정치에 커다란 불만을 갖고 있던 신사회운동으로선 정치사회에 압박을 가하는 영향의 정치는 그것이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한계는 제도화된 정치사회 안에 놓여 있으되 비제도적 정치를 추구하는 녹색당의 결성으로 귀결되었다. 녹색당의 이러한 ‘반정당적 정당’으로서의 성격은 ‘에콜로지, 사회적 책임성,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이라는 정강 정책의 네 가지 기본 원칙에서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다름 아닌 반권위주의, 반위계주의, 남녀평등주의, 참여민주주의가 녹색당의 궁극 목표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조기결성이냐 시기상조냐

우리사회에서도 지난 몇 년 간 녹색당에 관한 토론이 간간이 진행돼 왔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세 가지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그 첫 번째는 조기결성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사회에서 시민사회를 대변해 주는 대안 정당의 결성은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주요 전제조건이며, 그것은 녹색당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각은 녹색당 결성을 위한 성숙한 시민사회가 아직 형성되지 못했지만, 녹색당이 이러한 시민사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어 두 번째 시각은 녹색당의 창당이 시기상조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현재 우리 정치사회 및 시민사회의 특징, 즉 기존 정당의 기득권 유지구조, 폐쇄적 정치충원구조, 주체 세력의 미비, 미약한 사회적 지지기반, 선거법 및 정당법 등 제도적 한계를 고려해 볼 때 녹색당의 즉각적인 창당은 유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은 상황하에서 녹색당의 결성은 오히려 시민운동의 역량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 시각은 녹색당을 포함하여 시민운동이 정치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는 권력이 정치권력, 사회권력, 문화권력 등으로 다원화돼 가기 때문에 사회운동은 사회권력, 즉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고 이를 통해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다원화야말로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것이 이 견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의 과제

이러한 여러 논의를 검토해 볼 때, 그렇다면 과연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볼 것이며, 또 그 한국적 조건은 어떠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선 후자부터 보면 우리사회의 현재적 조건은 그리 밝다고 보기 어렵다. 시민단체의 능력, 정치적 기회구조, 시민사회적 기반이 정치세력화의 주요 조건들이라면, 이 세 가지 조건 모두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특히 마지막 조건인 시민사회적 기반은 우리 현실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많은 국민들이 기존의 정당정치를 불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곧바로 대안적인 정치세력화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시민사회의 이러한 조건은 일제 식민지에서 분단체제를 거쳐 권위주의 정권에 이르는 현대사의 우울한 경험이 시민사회와 시민문화에 각인된 결과이며,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구조화된 만큼 쉽게 해빙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대안적인 정치세력화의 문제는 시민운동 내부의 문제라기보다 노동운동을 포함한 여타 사회운동과의 연대의 틀 속에서 검토돼야 할 이슈이기도 하다.

한편 전자의 문제를 보면, 정치세력화를 정치사회에 진입해 정당을 결성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시민운동은 비록 ‘비제도적 정치공간’으로서의 시민사회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도적 정치공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하나의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시민단체의 행동이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시민단체에게 비정치적이기를 원하는 시민의식의 ‘역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역설적 시민의식은 현실 정치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혐오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시민단체의 활동에 작지 않은 부담을 안겨주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역설적 시민의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시민운동의 정치사회로의 진입은 그 전망이 불투명하다. 이러한 한국적 조건들을 고려해 볼 때 시민운동은 중단기적으로는 ‘영향의 정치’에 주력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괄적인 정치세력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우리의 시민운동은 척박한 황무지에서 민주주의라는 씨앗을 뿌려 왔다. 그리고 이 씨앗은 한편에서 국가와 시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환경, 성평등, 평화, 인권 등의 ‘삶의 정치’를 확장하는 것으로 그 싹을 키워 왔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 싹들이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울창한 산림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민운동은 이제까지 힘들게 왔던 것보다 더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신사회운동가들이 즐겨부르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의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적어 본다.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고 하시겠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참여연대 협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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