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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0년 12월
  • 2000.12.01
  • 1084
통독 10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한반도에서 통일의 전망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것이 ‘독일 통일’의 전례이다. 요컨대 관심사는 ‘독일 모델’의 적용가능성이다. 한반도에서 통일과정은 ‘독일통일’의 역사적 과정을 따를 것인가.

만일 ‘독일통일’에서 정답을 찾으려 들지 않고 뭔가 교훈을 얻으려 한다면, 양독 40년과 통독 10년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너무도 많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한신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혜영 교수의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독일 통합 10년의 정치경제학』(푸른숲 펴냄, 2000년)은 그와 관계된 책이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 주류 통일 담론의 기준이 되어온 독일 모델 자체가 ‘가서는 안 될 길’이자, 동시에 반면교사의 부정적 교훈이라는 것이 이 책의 기본 관점이다.” 그에게 지난 10년간 독일에서 벌어진 일은 ‘통합된 국가, 분열된 사회’로 집약된다. 요컨대 독일은 통합된 것이지 통일된 게 아니다.

이쯤 되면 그에게 통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부터 따져보는 게 순서일 듯하다. 우선 ‘미수복 지역’ ‘실지회복’ 운운하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식 국토통일은 아니다. 냉전적 사고의 전형이기도 하지만, 통일을 영토문제로만 생각하는 편협함이 문제다.

통일은 남·북한 사회모순을 개혁하는 과정

그럼 ‘민족통일’은? 이 또한 아니란다. 민족은 ‘정의상’ ‘분단’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미국 동포와 본국인이 ‘분단’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남북간에) 자유왕래가 불가능한 상태가 해소되면 민족통일론이 말하는 바 통일은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다. 혈통주의적 민족개념에 대해서, 그는 “한반도 지역에는 26개나 되는 혈통이 존재한다”는 말로 단박에 비판한다.

그렇다면, ‘국가통일’은? “하나의 국가권력을 세우는 것은 통일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특히 “그 국가권력의 계급·계층적 성격이 문제화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그에게 통일이란 ‘사회의 통일’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남한 자본주의를 혁신하고, 북한 사회주의를 개혁하는 기회이자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회통일이 “하나의 이념형이자 사상적 실험”이라고 인정한다. 다만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든 ‘적대구조’의 해체가 그 전제 중의 전제라는 것인데, 이 점에서 그는 ‘합의주의적’이며 ‘과정론적’ 통일개념을 지지한다고 명백히 밝힌다.

그가 독일에서 지난 10년간 벌어진 일을 독일통일이 아니라 ‘독일통합’의 역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독일 통합’ 10년에 대한 그의 평가를 들어보자. “독일통합은 국가 주도의 체계통합이 본질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옛동독 민중의, 아래에서 출발한 대중운동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1989년 혁명’은 기본적으로 반당관료주의, 반권위주의적인 ‘정치혁명’이다. 처음부터 직접 사회주의 체제를 교체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동독을 자본주의화하는 정치적 전제를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왜? 그가 보기에 동독 민중은 애초 ‘우리가 인민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당 정치혁명을 시작했지만, 서독 정부(당시는 헬무트 콜 수상이 서독 정부를 이끌고 있었다)의 적극적 개입이 이뤄진 이래 ‘우리는 하나의 인민이다’라는 구호로 바뀐다. 요컨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통일투쟁’으로 전화한 것이다. 동독 민중은 봉기했지만, 초기에 이들과 함께 했던 동독의 민주인사들은 전과정을 조정 관리할 역량이 없었다. 그렇다고 서독의 사민당 등 좌파가 이를 조절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었냐 하면 역사가 웅변하듯이 그렇지 못했다. 더군다나 중유럽 국제질서의 최대 주주 가운데 하나인 소련은 제 코가 석자였다. 1990년 콜과 고르바초프의 전격 회담 뒤 소련은 ‘독일인 자신이 독일 민족의 통일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그 속에는 속도, 기한, 조건 및 규정이 포함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말 자체는 좋은데, 그 정치적 함의는 명백히 ‘백지위임’이었다. 그 대가로 2억2천만 서독 마르크 어치의 생필품 원조가 콜의 손에서 고르바초프에게로 건네졌다.

애초 동독 민중이 원했던 것은, 좀 거칠게 말하면 ‘서독 수준의 생활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동독민중에겐 “‘불확실한’ 동독의 (민주)사회주의 미래보다 ‘확실한’ 서독의 자본주의 미래가 더 구체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뒤 벌어진 일에 대해서 지은이는 “그 자신이 역사가였던 당시 콜 수상은 전격전을 전개했고, 곧 이어 동독에 대한 ‘적대적 M & A’를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전격전의 무기는 ‘통화통합’과 ‘신탁청’이었다.

독일의 1대1 경제통합, 동독에겐 재앙

오스카 라퐁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통독 당시 이뤄진 1대 1 통화통합은 동독 경제엔 재앙이었다. 하루아침에 물건값이 5배 가까이 뛴다면(1991년 연방은행은 1대 4.6 정도가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도대체 지구 위의 어떤 공장이 살아 버틸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동독의 산업시설은 급속하게 무기력해졌다. 그걸 신탁청이 헐값에 매수한다. 신탁청 총재 로베더는 ‘최상의 (동독 경제)재건은 사유화’라고 했는데, 이 말은 충분히 살벌하고 이데올로기적이다. “독일의 초국적 자본은 신탁청이 사실상 ‘무상몰수’한 옛 동독의 ‘전인민 소유’가운데 85%를 ‘선물’받았고, 옛 동독의 공공소유물이었던 ‘전인민 소유’의 나머지 9%는 외국 자본가에게, 그리고 단지 6%만이 옛 동독 주민에게 매각되었다.” 이걸 두고 동방정책의 최초 설계자인 에곤 바아는 “나는 이제껏 지구상에서 이렇게 재산이 몰수된 국민을 본 적이 없다”고 논평했다.

어쨌거나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지금 상황은? 독일 전체 인구의 18.7%에 해당하는 신연방주(옛 동독 지역) 주민이 독일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4%에 불과하고, 수출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경제활동인구는 89년 650만 명에서 98년 370만 명으로 줄었다. 또 “1998년을 기준으로 볼 때, 동독지역의 국내총생산은 89년의 94%에 불과”하다. “98년 불완전 고용률은 옛 서독 19.2%인 반면, 옛 동독지역은 41.8%”에 달한다. 독일 전체 핵심 엘리트 집단 가운데 옛 동독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군부와 경제계 0%, 행정·사법부 3%, 과학분야 7%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옛 동독주민들에게 ‘우리에게 통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당연하게 필요하다. 베를린의 ‘사회과학연구센터’가 해마다 펴내는 「사회조사보고서」의 99년판에 따르면, “옛 동독 주민들은 옛 서독과 그 정치체제에 대해서 불신과 부정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생활조건 개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예컨대 생활 만족도는 90년의 33%에서 99년엔 59%까지 높아졌다. 동과 서로 갈라진 사회적 차별, ‘역겨운 서독놈들’(바시스)과 ‘게으른 동독놈들’(오시스)로 상징되는 사회·문화·심리적 분단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와 냉장고로 상징되는 소비수준의 신장을 높이 치는 동독주민들의 판단은 엄연한 현실이다.

‘조국통일’을 자신의 존립근거로 생각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말이 잘 되지 않는 ‘2민족론’을 만들어내고, ‘반파쇼장벽’(베를린 장벽을 동독정부는 이렇게 불렀다)까지 세워 서독 초국적 자본의 ‘침탈’을 막아내려 했던 독일민주주의공화국(동독)은 같은 점도 있지만 많이 다르다.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현실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아가며 진정한 민주와 평화를 살찌우는 통일의 여정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할 발걸음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하루 하루다.
이제훈 『한겨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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