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2월 2000-11-28   2062

[권은정의 파워인터뷰13] 우리마음에 풍차를 돌리는 사람 – 김희은 원장

이번에도 우리의 총수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인터뷰어인 이 분은 남편이 ……..이시고 …..’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언젠가 한번 이런 적이 있었을 때 조용히, 정말 조용히 ‘그러지 마’시라고 했거늘, 평소 친분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인상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의 총수께서는 장충동 여성사회교육원 오는 길에 택시비도 내주신 분이다. 고마운 분에게 화를 내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래서 앞에 계신 여성사회교육원 원장님께 나의 구겨진 마음을 상의 드렸다. 바로 답이 나온다.

일단 A4 용지 석 장을 준비하세요. 그리고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좋아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나를 속 상하게 만든 사람이나 평소 사무친 것에 대해 막 써대는 거예요.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는 거지요.(이때 ‘소새끼’, ‘말새끼’라는 말을 총수에게 해도 된다는 윤허가 있었다. 그렇지만 해도 될까? 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사회적 신분(만약 있다면 말이다) 때문에 할 말을 제때에 제대로 못하고 살잖아요, 미운 상대가 있으면 욕을 바가지로 쓰는 거예요. 그렇게 쏟아 붓다 보면 막 미워지던 사람이 용서가 되는 거지요. 내일 아침 당장 시작해 보세요. 그냥 처음부터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면서 넘어가면 가슴에 앙금이 앉거든요. 그것보다 일단 다 쏟아낸 다음 다시 걸러서 정리하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요.

옆에 있던 우리 총수의 표정이 순간 가시는 듯하다. 용지 석 장 분량의 욕을 얻어먹을 생각을 하면 누구라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신 새벽에 너의 이름을 쓰’게 되는 건가? 타는 목마름으로?

신학으로 무장한 차분한 인상의 중년 여성학자를 연상한 나로서는 정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인터뷰도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을 (총수께서) 겨우 성사시킨 거라 해서 꽤나 깐깐한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걸친 귀여운 여인이 아닌가. 나이보다 수 십 년은 젊어 뵈는 그는 동그란 어깨를 하고서는 ‘뭐든지 물어보세요’ 라는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얼마 전 참여사회 아카데미에서 그가 ‘활동하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의 힘 되살리기’강좌를 개설했었는데 성원이 되지 않아 폐강되었다. 주위의 여론을 종합해 보면 일단 그의 강의를 수강한 이들은 모두 그를 ‘더 베스트’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단다. 그런데 제대로 광고가 안된 건가?

의식교육이 절실한데 사람들은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살기가 어렵다고 기능교육을 받으러는 많이 가는데, 사실은 의식이 변화하는 게 더 중요한 거지요.

의식교육의 근간은 바로 창조력 개발 교육인데 이게 제일 중요하지요. 다른 것은 얹어서 그냥 가는 거예요. 21세기를 살아가려면 ‘창조적인 인간’이 되어야한다고 구호처럼 말하잖아요. 사람들은 자신이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요.

창조적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거나 예술가 같은 이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바로 내 삶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들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건 사람들이 상처받고 억압되어 있어서 그렇지요.

김희은 원장님은 창조적인 인간형을 만드는 작업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창조적인 인간유형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꾸준한 작업이 필요해요. 자신의 벽을 허무는 것도 그 작업에 들어가지요. 예를 들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자기 마음의 상처를 털어 내는 일이 중요해요. 이 상처를 치유해야지 바로 그게 개방적이고 열려 있는 마음으로 가는 길이 되거든요. 평생 걸리는 일이지요.

사람들은 매일 상처를 입으면서 살아가거든요. 가령 아까처럼 남편에 의지하여 자신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것도 상처가 될 수 있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경우를 당연시 여겨요. 남편이 사회적으로 높이 올라가면 부인은 기쁨을 느끼지요. 그 성공은 부부의 역할 분담에 의한 거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우리 여자들이 젊어서 결혼해서 밥하고 빨래하고 할 때는 남편인 저 인간이 그래도 언젠가는 뭔가 되겠지 하는 기대를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인간이 사십이 넘어서도 꽝이야, 그러면 열 받기 시작하는 거지. 돈도 못 벌어 와. 거의 백수 수준으로 말이죠.(우리는 둘다 총수를 쳐다보았다. 정말 자동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우리의 총수는 이렇게 방백을 하였다. “나를 완전히 죽이는 구나”)

감정노동이나 잘하나. 20년 동안 밥상 차린 게 꽝이면 열 받지. 그러면 남편이 고기 먹는 건 아깝지요. 애들이 고기 먹는 게 낫지. 저 인간 저거 고기 먹음 뭐하나 싶어서. (낄낄낄)

감정노동이 뭐지요?

국가적으로 ‘남편 기 살리기’ 하라고 하면 아내는 웃음이 안나와도 빵긋빵긋 웃어야 하잖아요. 그게 감정 노동이지요. 노동의 분배가 되는 거지요. 옛날엔 남편이 돈벌고 여성이 집안에서 살림을 하면 분업이 확실히 됐지요. 그런데 요즘은 여성이 직장을 가지면서 가사노동 분담을 주장해요. 내가 남자라면 좀 열 받겠다 싶어요. 하지만 여자들은 감정노동을 하니까요. 활기 넘치는 가정 만들기라는 건 본능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하는 거예요. 칭찬하는 것도 배워야 하거든요. 거저 되는 것은 없어요. 상대의 좋은 점을 관찰해야하는 거, 표현하는 것도 배워야 하는 거지요.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아니 남자들이 더 그래요. 남자들은 근육이 굳어져서 잘 웃지도 못해요. 여성들은 오히려 감정표현이 쉬워요, 조금만 물꼬를 터놓으면 자신의 감정을 술술 뱉아 놓을 줄 아는데 우리 나라 남자들은 정말 불쌍해요. 감정표현을 하도록 격려 받지 못해서 그런지 인상도 따라서 굳어지잖아요.

여성들 교육하다보면 자기남편들도 좀 교육하라고들 하는 데 사실, 전 지금 남자들의 삶의 질 향상까지는 할 형편이 못돼요. 여성들의 일만해도 산더미 같으니까. 간혹 남성분들 교육을 해보면 앉아 있는 자세에서도 매우 적대적이고 굳어 있지요.

가을은 교양 쌓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늦가을인 요즘 거리에는 교양강좌 플래카드가 자주 눈에 띈다. ‘여성들이여 인생을 바꾸라’ 하는 감동적인 잣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본다. 강사는 스스로 인생을 바꾼 여성인가? 혹은 바꿀 자신이 있는 사람일까?

주제가 지향하는 바가 있고 현재 나의 상태가 있는 거지요.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은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가자는 거지요. 방향성 제시의 문제이지요. 띄워주는 강의도 있지요.

아, 저렇게 살면 참 신나겠네 하는 느낌이 오도록 말이지요. 성인용 강사들 중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강사를 보면 그런 것을 잘 하는 거지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외치면 정말 멋지게 들리잖아요. 그런데 실상 그런가요?

언제부터 여성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되었나?

제가 73학번인데요. 그때 이화여대 다닐 때 여성학이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죠. 유엔 프로젝트로 지원을 받아서 강좌개설이 되었는데 제가 조교로 일했지요. 팀 토론이 아주 왕성했지요. 요즘도 대학에서 그런 투자를 하지 않아요. 전 어려서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안 가질 수 없었지요. 1남 3녀 였는데 왕자마마와 세 시녀, 뭐 그런 시스템이었어요.(그는 제1시녀 출신이다) 왕자마마를 잘 모시라는 엄명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평등구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의식하고 있었지요.

일체의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고 사신 어머니에게서 크는 딸들의 운명을 추측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긴 이제 이런 얘기가 낯설지도 않다. 누이나 여동생을 리모콘으로 이용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리모컨 딸린 테레비가 나오기 전에는 왕자가 원하는 대로 TV 앞에 바짝 쪼그리고 앉아서 턱턱 하면서 채널을 돌리는 것이다. 어떤 집은 볼륨을 조정하는 데 시녀를 부리기도 했다(내 얘길 하는 건 아니다).

여성 스스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렇지만 그때는 모든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보려는 시각이 강했기 때문에 제도개선, 정책 이런데 신경을 썼지요. 그런데 90년대 들어서고 세월도 변하고 저도 좀 변하면서 요즘은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의 주도적인 힘, 내가 당당해야 요구하는 일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강하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여성들 중에는 ‘죄송해요 제가 이런 말해서’라고 시작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 교육할 때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 상대방이 아, 저 사람 참 겸손하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바빠 죽겠는데 죄송할 거면 말을 하지 말지 왜 하나 이런단 말이에요. 누구든 말을 할 때 진리선포를 하는 게 아니에요. 그때 내 입장 내 느낌을 말하는 거지요.

누구든 그런 권리가 있는 거지요. 저도 원래 내성적이고 수줍어하고 해서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내 말을 믿어주진 않겠지만, 호호호……. 싸움이 나면 무조건 내 탓이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의 남편은 김경남 목사. 70년대 기독교운동을 하다가 제일교회를 다니면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지금 남편과 아이, 시어머니는 모두 전라도 무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다.

주말에는 그도 내려가 함께 농사일을 한다. 21세기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농사짓는 일이라 싶어 시작했는데 정말 힘이 든단다. 김 경남 목사는 그곳에서 대안학교 학교장 일도 맡고 있다.

첫눈에 반하셨어요?’

예.

너무도 천연스레 대답한다. 첫눈에 반하지 않고 결혼하는 다른 방법이 존재 할 수 있느냐는 듯이 대답이 나온다. 물은 내가 머쓱해지는 순간.

첫눈에 반했어요?

김희은 원장은 질문을 되받는다. 내가 뭐라 했을 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김원장의 코멘트가 이어진다.

저는 결혼을 일찍 했는데 왕조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또 다른 왕가로 간 거죠. 뭐.

그리고 칠년 정도 지나서 나이 서른에 혼자 독일로 유학을 갔다. 난 이런 대목이 늘 언제나 감동적이다. 가정의 테두리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공부하러 갈 수 있는 여성은 내게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다. 당시 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돌아와서 낳은 아들이 지금 초등학생이다. 독일에서 5년간 공부하면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뭘 모르고 씩씩했던 거 같애요. 발전적 해체 뭐 이러면서.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에요. 교회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제3세계 문제를 독일교회를 다니면서 얘기를 하는 거였지요. 한국에서는 언제나 가난했었어요. 결혼했을 때 한 십 만원 정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어요, 그래봤자 사고싶은 게 빗자루 뭐 이런 거였지요. 하여튼 대책 없이 결혼을 했었으니까요. 그래도 전 살면서 돈 문제로 안달복달하진 않아요.

하여튼 독일에서는 경제적으로 아주 좋았던 거지요. 그리고 독일에 있는 동안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많이 넓어진 거죠. 내가 그 동안 운동권에서 활동하면서 얼마나 시건방지고 나만 혼자 바르게 사는 것처럼 살아왔나 반성을 하게된 거죠. 어떤 분은 내 안의 파시스트라고 했는데 정말 내가 파시스트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더러 일어나라 깨어나라 그랬잖아요. 그죠? 본인은 깨어 있지도 않으면서 말이에요. 부분적으로 잘못하는 것을 보고 전체를 규명했다는 생각도 들고, 사람공부를 많이 했지요

귀동냥으로 들어도 그가 전공한 분야는 신학공부 중에서도 어려운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은?

있지요. 그런데 교수가 되는 길을 대학 때부터 밟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인간 관계가 중요한데 전 비판적이었고 도전적이어서 학생 때 찍혔거든요.

대학 다니면서 선생님들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으니 미운 학생이었지요. 강의를 다녀 보니까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지요. 운동권 애들이 미움받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강의실에 들어가 보면 태도가 도전적이죠. 그래, 너 한번 가르쳐 봐라하고 얼굴에 쓰여져 있어요.

그래서 그 학생을 몰라도 쟨 학생회 활동하는 애구나 알 수 있는 거지요. 선생의 존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요. 앞에서 가르쳐 보니 선생하고 학생은 반반 먹는 거더라구요. 학생들이 자기를 받아주면 신나서 더 잘 가르치게 되는 거고 학생들이 적대적이면 할말도 안 나오는 거지요.

그러면 너 혼자서 잘 커라 하는 마음이 드는 거지요. 몇 군데 대학에 지원도 해보았는데 안 뽑아주더라구요. 사회가 잘못되었다 그런 생각은 안 해요. 그래도 속은 상하지요. 그리고 제가 워낙 재밌게 사는 건 잘하니까요. 친구가 저더러 박사하고 교수도 못되었으면서 너같이 헤헤닥 거리는 애는 첨 봤다 할 정도지요. 저는 가만두는 것보다 뭔가 내게 일을 하도록 하는 이 사회가 좋아요. 전 편안하게 있으면 동기부여가 잘 안 되는 편이에요.

그는 매주 월요일마다 전주대에 겸임교수로 나간다.

성인교육이 훨씬 재미있어요. 성인들은 삶과 연결된 어떤 지점에서 이걸 해봐야겠다 싶어서 공부하는 것이거든요. 돈을 쪼금이라도 내고 온다는 게 또 중요한 요인이기도 한 것 같아요. 학생들은 부모 돈도 남의 돈인지 휴강한다면 좋아하지요. 학생들한테 너희가 지금 한시간에 얼마 짜리 강의를 듣는 건데 강의를 소홀히 하느냐 그래요. 요즘은 학생들이 많이 달라지긴 해도 강의 쉰다면 좋아들 하는 것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어요.

여성이 주를 이루는 단체가 아닌 남녀혼성의 시민단체일 경우 대부분 간부직에서 여성의 숫자가 극히 미미하다. 이유는 (뭘까)?

간부급들은 남성들이 많고 실무자는 여성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지요. 시민사회단체가 갖고 있는 열악한 환경 탓일 거예요. 일이 많잖아요. 정말 인간의 체력으로는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일의 양이 많은 거지요. 여성단체들도 보면 기혼여성들이 일하기 어렵지요. 3년이 고비인 것 같아요, 정말 병들어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기혼여성일 경우 위로 올라가는 게 힘든 것은 여성은 라이프 사이클이 있잖아요.

남자는 기혼이건 미혼이건 삶의 변화가 그리 많지 않아 전력투구가 가능한데, 물론 남자 분들도 가정생활이 쉽다는 것은 아니지요. 여자는 출산이나 육아시기가 활동가로서 중견시기와 맞물리는 시기죠. 시민단체의 특성이 잘하면 모두가 잘하는 것이고 못하면 내가 못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지도부로 올라갈수록 못하게 되면 혼자 뒤집어 써야하는데, 참여연대는 안 그래요? 지도부로 갈수록 할 일은 많고 그렇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시간은 더욱 없어지고. 30대 여성활동가들이 중견 간부이상으로 올라가는 게 본인도 힘들고 두려운 거지요. 전 이런걸 보면서 우리 나라가 전체적으로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모든 것을 다 바쳐 망가질 정도로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어요.

노르웨이나 덴마크 등 여성장관이 많이 들어섰을 때 ‘가족 친화적인 시간관리’를 중점적으로 내세운 게 기억에 남거든요. 예를 들어 오후 4시 이후에는 회의일정을 잡지 않는 것이지요. 아침 조금 일찍 나와서 회의하고, 저녁에는 집에 가는 거지요. 우리는 늦게 시작하고 늦게 마치는 경우가 많지요, 전체가 그렇게 돌아가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기혼여성들이 중견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굉장히 힘들어요. 애들 놀이방에서 데리고 와야하고 밥 챙겨야 하잖아요. 그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힘든 거지요. 그러니 시간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고 노동시간 유연화 시켜 줘야해요. 이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고 기, 미혼 활동가들의 문제예요.

사실 여성활동가들은 점점 피폐하게 살고 있어요. 활동하면 할수록 덕스러워지고 풍부해지고 가정사도 잘 풀리고 그래야 하는데, 이건 사십만 넘으면 기진맥진해지고 몸은 아프고, 집안은 집안대로 개판이고,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받혀주지도 않고 그러잖아요. 마흔 넘으면 어디 가서 식사하고 자기가 돈 내야 되잖아요, 그지요? 그런데 이게 안되잖아요. 되세요? 선배랍시고 고기 먹자 하고서는 ‘더치 페이’ 하자는 건 민망한 일이지요. 여성들도 선뜻 우리가 지도부로 가겠다 못하고 30대 중반에서 많이 중도하차 하는 거 같아요.

시민단체 조차도 남녀의 벽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은 없을까요?

남자 활동가들조차 여성의 문제들이 잘 잡히지 않는 거지요. 수련회 같은 거 할 때 애들 데리고 가서 베이비 시터를 두 명 정도 구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애들 데리고 가자는 생각은 못하는 거죠. 조직의 배려가 있어야 해요. 여성활동가와 함께 가려는 배려가 절실한 거죠. 시민단체는 밖에서는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데 안에서는 그다지 같이 하려는 의지가 높지 않은 것 같아요.

참여연대에 대한 인상은 어떠셨나요?

–점잖은 편이지요. 온순하고. 대표가 점잖으신 분이라 그런가? 참 대표가 중요해요. 대표의 유형에 따라 사람이 모이잖아요. 대표의 일거수 일투족은 조직의 흐름과 색깔을 규정하지요. 그런데 사회단체 대표들이 교육을 덜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실무자들이 주로 받는데, 기업에 나가 교육을 해보면 대표들이 교육을 받아요. 사회단체들 대표는 자주성가 스타일이라서 쎄지요. 도전력도 강하고 일구어내는 힘이 강해요. 그래서 대표들 교육시키는 게 힘들어요. 그리고 전문가들 교육도 힘들고. 누가 날 교육시켜?하는 거지요. 남자들보다 여성활동가들이 많이 지쳐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여성사회교육원이 지향하는 바를 설명하신다면?

–여성학은 인간관계죠. 남자건 여자건 간에 서로 도와가며 사는 법을 말해 주려고 해요. 자기성찰훈련을 하면 자기 자신감도 생기고 다른 사람에게 쓸데없이 공격적이 되지 않지요. 타인에게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즉 본인 스스로에게 비인격적이기 때문에 그런 거지요. 자기도 많이 꼬여 있어서 그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성교육이 많이 필요하다 싶어요. 나를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 일상적으로 바꿔나가야 하는지 그 도구를 익히게 하는 거지요.

앞으로 인터뷰하자고 하면 거절하지 마세요. 좋은 얘기는 여러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해야지요.

–교육가에는 여러 타입이 있어요. 알려져서 좋은 교육가가 있지만, 제가 하는 참여학습 교육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야 하거든요. 제가 피교육자에게 친화력이 있는데 그 이유는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거예요. 가까이 하기에 힘든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서는 안되지요. 스타급 강사가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제 방침이 소집단 교육을 선호하기 때문에 8주에서 12주간씩 계속하는 수업에서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만들면 어렵지요. 그리고 저는 성격유형이 인간 중심적이라서 눈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힘들어하는 사람이지요. 한번은 라디오 방송에 나간 적이 있는데 진행자가 절 한번도 안 쳐다 보더라구요. 그래서 말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었어요.

그는 말끝에 ‘그쵸?’라는 의문형을 자주 달았다. 그 예쁜 말투와 그의 따스한 눈빛은 사람들 마음속에 웅크린 채 들어앉아 있는 것들을 숨쉬게 만들어 줄 것 같다. 세상은 넓고 정말 많은 수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여성은 물론 세상의 모든 남성들 역시 기필코 그를 만나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의 풍차를 돌리기 위해서.

글쓴이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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