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2월 2000-02-01   661

밀려드는 하소연, 하소연… 법은 어디에?

시민단체 민원실 풍경 – 참여연대 · YMCA시민중계실 · 한국성폭력상담소

하루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자니 나이가 지긋한 두 분이 보자마자 ‘참여연대’가 어디냐고 한다.

“무슨 일이냐”고 여쭙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끝이 없다.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에서 상담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안내를 했다. 머리를 식힐 겸 창문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무렵, 두 노인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상담은 받으셨어요?”

이 말을 한 것이 시작이 되어 그분들의 답답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 법원·검찰을 끼고 사기를 치는 핑퐁단이라는 사기단에 70여 평의 부동산을 빼앗기고만 것이 87년의 일이다. 사기단이 허위로 계약서를 쓰고, 등기를 몰래 자신들의 이름으로 올려놓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93년에는 사기를 친 사람 중 한 명이 사기를 자백하는 확인서까지 써주었다. 그러나 계속 소송에서 기각당하는 낭패를 겪어 알아보니 판사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을 변론해주는 변호사까지도 사기단과 뇌물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기당했다는 증거가 명백하게 있는데도, 검찰 수사 결과 허위등기임이 밝혀졌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사기단의 죄가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사기를 친 사람 중 한 명은 두 노인이 빼앗긴 그 땅 위에 집을 짓고 배짱좋게 살고 있다고 한다.

“몸은 어떠세요?”

그들의 건강은 눈으로 보기에도 병색이 역력했다.

“이 양반은 미군부대에서 20년간 통역관 생활을 했어요. 성실하게만 살았지 세상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라. 최근에 두 번이나 뇌출혈로 넘어지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되었지. 난 화병 때문에 바세도르시병과 백내장이 겹쳤어요.”

그분들을 보내고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안진걸 씨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버린 상태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죠. 위로하는 일밖에는.”

잠시 전 다녀간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니까 계속 항소했고, 그러다가 대법원에서도 판결이 나버린 것이다. 안진걸씨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는 법의 문턱이 높기 때문에 알기 쉽게 잘 안내하는 것도 억울한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하루에도 이렇게 민원창구로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10명에서 20명 가량이나 된다. 전화통화 상담은 하루 50통. 최근 참여연대가 언론에 알려지면서부터는 상담건수가 훨씬 많아졌다.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의 주요 상담내용은 법률상담, 법제도·권력기구에 의한 피해, 즉 권력형 피해이다. 역시 언론에 비친 참여연대의 활동을 보고,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 곳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번씩 웃지 못할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전 불안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항상 저를 따라다녀요. 지금도 전화가 도청될지도 몰라요. 아, 그리고 UFO가 날아와 외계인이 쳐들어올 거예요. 어떻하죠?”

긴박한 목소리다. 이쯤되면 상담원도 분위기를 알아차린다.

“선생님, 그러면 말입니다. 선생님께서 독수리 오형제를 꾸리고 우리가 지구를 지킵시다.”

“그렇군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딸가닥. 끊고 나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어쨌든 과거 독재권력의 횡포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이 외에 소비자 권리의식이 향상되면서 YMCA시민중계실에도 별별 상담전화가 많이 온다. 때로는 기업의 횡포를 응징할 피해사례도 있지만 어떨 땐 소비자들의 이기심을 확인하고는 힘이 빠질 때도 있다고 한다. 시민중계실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홍욱현씨에 의하면 고가의 가구를 주문하고는 “상표가 눈에 보이게 크게 붙어있지 않다. 상표는 외제인데 가구의 다리가 한국산인 것 같다”며 시민중계실이 나서서 환불해주기를 요구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이동통신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3학년인 학생이 가족의 신분증을 훔쳐 휴대폰을 구입, 1백만 원 이상의 통화료가 나왔다. 물론 이동통신 회사측의 무분별한 통화개설도 문제지만 알 만한 나이에 그런 행동에 대해 책임을 못지는 학생의 탓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부모는 학생에 대한 책임은 전혀 고려치 않고, 이동통신 회사에만 책임을 전가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양쪽의 상호적인 책임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상담을 받는 사람조차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 곳에 걸려오는 상담사례 중에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습적인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날마다 들린다.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으로부터 피해자 스스로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엔 듣는 사람에게도 고통이 전해진다. 또한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성윤리 때문에 피해자 스스로가 떳떳하게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한 사례도 많다. 때문에 피해자를 사회의 밝은 부분으로 유도해 자기의 권리를 지키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저희들은 피해자라고 부르지 않고 생존자라는 단어를 씁니다.”

피해자가 상처에 대해 스스로 치유하고,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한 인간으로서 자기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는 취지로 개념상 지위를 부여해 ‘생존자’라는 단어를 쓴다. 법률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외에 이곳에서는 훨씬 세심한 피해자 위주의 상담이 필요하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상근하는 활동가 및 자원활동가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상담자의 요건이 어느 곳보다도 까다롭다.

모르고 살다가도 찾아보면 세상에 억울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억울한 사람은 많고, 구제할 기구나 방법이 없을 때 가장 힘들다”고 상담원들은 말한다.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미성숙하다 보니 크고 작은 억울함이 호소된다. 법적인 절차를 밟더라도 어떨 땐 오히려 재판 과정에서 한번 더 실족하게 된다. 법의 문턱은 높고, 겨우 넘더라도 법제도 속에는 더욱 더 굵직한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영란(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대가없이 도움줄 때 얻는 기쁨으로

상담 자원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97년부터다. 96년부터 사무보조적인 자원활동을 했지만 생존자(피해자)들과 직접적으로 교감하고 만났으면 하는 생각에서 교육받은 후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원 교육은 여성학 ∙ 상담학 ∙ 심리학 ∙ 법학 등의 교육을 64시간 이상 받아야만 상담 자원활동이 가능하다.”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근본적으로는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있어왔다. 그리고 외국에 잠시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낯모르는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돌아와서 한국에는 자원활동 시스템이 미비함을 느끼고 나부터 실천하기 위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 중에 힘든점은?

“그럴 단계는 지난 것 같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충격도 받고, 감정에 휩쓸릴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자원활동으로 특수하고 전문적인 상담분야를 한다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자원활동이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자신을 계발하는 일도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는 남을 배려하고 받는 즐거움에 대해서 너무 인색하다.”

상담을 받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점은 많이 훈련되었다. 간혹 장난전화가 걸려온다. 특히 중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인데 들어보면 장난인 줄 안다. 그땐 적절히 재치있게 넘기는 것이 필요하다.”

자원활동을 하면서 보람이라면?

“돈을 받지 않는데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기능력을 향상시켜야 하는 전문적인 분야에 있다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쁨을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하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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