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2월 2000-02-01   388

새천년 시민사회 선언에 나타난 문제의식

지난 1월 5일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참여연대 등 1백3개 전국 시민단체가 ‘새 천년 시민사회선언’을 발표했다. 국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패권에 맞서고, 국내적으로는 개혁의 완성을 위해 힘을 모으자는 취지다. 시민단체들이 우리 사회의 성격을 이념적으로 규정하고 운동의 방향을 집중시켜 한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전국적인 상시적 연대체를 제안한 것도 심상찮은 일이다. 그만큼 정치개혁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위기위식의 발로다. 본지는 이 선언에서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의 해설과 선언문을 요약 게재다. (편집자 주)

새 천년이니 뉴 밀레니엄이니 21세기니, 하는 시간의 마디들은 사실 인간들의 ‘관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단지 흐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시간을 마디지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를 회고하고 새로운 다짐을 한다. 20여일 전에 흘러가버린 새 천년 맞이 축제 때 인류, 좁게는 우리 국민들이 그러하였다. 그러한 다짐을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회고와 다짐이 낙관일색으로 이루어지고 전혀 성찰의 기미를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시민사회선언’의 기본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새 천년을 축포(祝砲)로 맞이하기보다는 성찰적으로 맞이하여야 하며, 각종 밀레니엄 논의들이 자아내는 보랏빛 환상에 경도되지 말고, 새 천년을 인간다운 사회를 향한 새로운 고투(苦鬪)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를 위한 시민·사회 운동의 비전과 결의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표까지의 과정을 잠깐 소개해보자. 시민사회선언을 하자는 논의는 양길승 선생, 최열 총장 등 6월 항쟁 기념사업회에 관여하시는 분들 중심으로 99년 7, 8월 경 1차 모임이 있었다. 그러나 모임은 지속되지 않았고 유야무야되었다. 그후 참여연대 ‘2000년 위원회’를 중심으로 새 천년에 대응하는 성찰과 전망을 찾아보는 노력이 몇 차례 진행되던 중 시민사회선언을 하자는 발의가 다시 제기되었고, 여기서 99년 11월 16일 뉴서울호텔에서 환경연합·참여연대·여성연합·학단협 임원들이 모이게 되었다. 여기서 필자가 작성한 초고를 중심으로 새 천년 선언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가에 대한 집담회가 있었고, 이 자리에서 박호성·지은희·강명구씨와 필자가 이 기초 소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그후 한편에서는 기초 소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수정·보완작업이 진행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3개 단체의 상근간부들을 중심으로 꼼꼼한 검토작업이 병행되었다. 그런 속에서 당초 12월 15일 발표하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하여 1월 5일로 옮기게 되었고, 대폭적인 수정이 이루어졌다.

과정에서 정작 쟁점이 되었던 것은 비전의 내용 보다는 말미에 실려있는 ‘전국적 개혁 네트워크’를 얼마나 부각시킬 것이냐 하는 구체적 결의 부분이었다. 김중배 선생님 등 여러분의 강조로 새로운 연대조직의 당위성이 초안보다 강조되었다. 이미 총선시민연대로 가시화되고 있는 새로운 연대의 맹아들이 어떤 형태로 결실을 맺을지는 지켜 볼 일이다. 그리고 이 선언이 총론적이고 일반론적 수준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한국 국가개혁 50대 과제’ 같은 식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였다. 준비모임에서는 개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그러한 중단기적인 구체적 실천과제를 제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준비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전국의 여러 개혁적 단체들에 선언의 취지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참여가 충분히 권유되지 않음으로써 서명단체가 1백3개 단체에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바라기는 이 선언이 새 천년 시민·사회 운동의 이념과 비전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고 보다 포괄적인 시민·사회 운동의 ‘강령’이 만들어지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희연 성공회대NGO학과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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