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3월 2000-03-01   1213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 말라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고, 그렇다는 이유로 ‘후배’로 통칭되는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쉽게 충고라는 걸 해왔다. 때로 그 충고는 정도를 넘어서 강요가 되기도 했다. 그들이 털어놓는 고민의 요체는 대부분 직장을 둘러싼 진로문제, 결혼을 둘러싼 사생활 문제이기가 쉬운데, 그때 선배랍시고 늘어놓는 충고란 대개, 사표 쓰지 말고 조금만 참아봐라, 그 사람하고는 사귈지언정 절대로 결혼하지 마라 등등. 충고를 넘어 강권이 되고 만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끼는 여자후배를 붙들고, 밤이 새도록 사귀는 상대방과 결혼하면 안 되는 이유를 놓고 침을 한 대야나 튀겼고, 결국 말을 듣지 않는 후배에게 마음이 앵돌아져 한동안 입 내밀고 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러는 나는 잘 살았나? 하는 치명적 의문과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답은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내 뜻대로 살았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성년 훨씬 이전부터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선배 동료들로부터 나름대로 무수한 충고를 들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애초 먹었던 내 마음대로 결단하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선택에 더욱 큰 책임을 져야했고, 그 중의 많은 잘못된 선택에 대해 지금까지도 비싼 할부금을 물고 있지만, 어른이 된다는 게 바로 그런 것 아니던가. 만약 내가 옳은 충고만 따라서 오류없는 삶을 일사천리 살아왔다 한들, 그게 어찌 바람직한 삶이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아무리 나보다 어리다해도, 나이가 차서 사회로 진출한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나와 동격의 어른이다. 다만 삶의 출발점에서 시차를 두고 살아가고 있을 뿐. 실수조차도 그들에게는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인 것이고, 그런 크고 작은 실수들을 통해 오히려 더 강하고 독립적인 어른으로 체질을 다질 수 있는 것일 거다. ‘너를 위해서’라는 ‘선의’로 기름칠한 무기를 앞세워 그들이 실수할 기회의 싹을 모조리 잘라버린다면, 결국 그건 그들로부터 솔직한 감정과 직관을 빼앗아, 입력된 정보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드는 결과가 아니고 무얼까. 난무하는 처세술 책을 곱지 않은 눈으로 봐왔건만, 결국 ‘경험칙’이라는 명분 아래 나 또한 ‘처세술’을 늘어지게 전도해온 꼴이었던 거다.

그러고 보면 이 사회에는 ‘너를 위해서’라는 전제 아래, 수많은 폭력적 훈수가 가해지고 있다. 청소년들을 모든 악의 균으로부터 격리해내고야 말겠다는 실현불가능한 목표로 똘똘 무장한 ‘청소년보호법’이 그렇고, ‘효’라는 명분으로 부모가 자식을 삶을 좌지우지할 것을 허용하는 봉건인습이 그렇고, 대중들의 문화소비행태에 살인적 소독을 감행하는 온갖 검열장치들이 그렇다. 청소년들은 24시간 계속되는 시스템의 잔소리에 유전자를 피폭 당해 급기야는 잔소리 없이는 어느 일 하나 제 손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식민적 정신으로 전락해가고 있고, 효도하는 한국 남성들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 부모의 자문 없이는 스스로 판단할 수 없게 된 지 오래이며, 대중들은 ‘성’과 ‘폭력’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일차원적 훈수에 길들여져 그렇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귀를 닫아버리게 되고야 말지 않았나.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은, 오로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내심 후배들을 어른 취급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원치 않는 훈수를 베풀려드는 나 자신이다. 나와 똑같은 어른인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이유에 귀 기울이고, 힘들 때 곁에 있어주면 그만이련만, 언제까지나 그들을 나 밑에 두려는 이 사회의 권위주의 문화에 단단히 한몫 보태고 있었음을 못나게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이 사회의 어른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최보은 『케이블TV가이드』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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