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3월 2000-03-01   864

세금없는 삼성의 3세 승계 이대로는 안된다

상속세를 제대로 물리기만 하면 재벌세습은 어림없는 일이라고 많은 식자들이 주장해왔다. 상속세율이 최고 40%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듯한 얘기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상속재산의 40%를 떼어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재벌의 사망 시 부과되는 상속세의 액수는 별다른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 예컨대 SK 최종현 회장 일가에 대해서도 730억 원이 부과되었을 뿐이다. 상속세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상속재산이 형편없이 저평가 되기 때문인데 특히 부동산과 비상장 주식의 경우 정도가 심하다. 상속증여세를 바보세에서 정의세로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업재산 평가 및 회계 방식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제고시켜야 한다.

상속증여세는 ‘바보세’

아무튼 상속세 부과액을 역산해서 나오는 상속재산의 과세표준액으로는 상속재산의 실질 가치를 속단할 수 없다. 오히려 공시지가나 액면가격과 같은 여러 제도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재벌급 상속인은 상속재산 과표액보다 몇 배 많은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봐도 재벌 2세, 3세의 공식 상속재산은 너무 적다. 이것만으로는 오너 총수자리를 물려받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 경우 중요한 재산을 이미 사전증여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재벌의 증여세 납부실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지 16억 원만을 증여세로 납부하고 외아들 재용 씨로의 세습 준비를 완료한 삼성의 사례는 이상에서 다룬 모든 문제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삼성의 3세 세습작전은 1995년 12월에 이건희 회장이 재용 씨에게 명목상 60억 원을 증여하고 이중 16억 원을 증여세로 납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단 재용씨 명의로 현금 44억 원을 확보한 삼성그룹은 상장 예정 계열사 주식을 몇 차례 인수해서 상장 후 처분하는 손쉬운 방식으로 1년 만에 600억 원의 자금으로 키운다. 이제 이 돈을 사용하여 재용 씨 명의로 에버랜드, 삼성생명, 그리고 삼성전자 등 그룹내 지주회사의 지배지분을 만들어낼 차례다. 우선 선정된 대상은 에버랜드. 특수관계인 주주만으로 구성된 비상장법인인 데다 자본금이 98억 원에 지나지 않고 보유부동산과 계열사 주식이 많은데도 자산액이 낮게 잡혀 있는 등 여러 모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재용 씨는 에버랜드의 62.5% 지분을 단돈 92억 원에 매입하여 지배주주가 된다.

이제 삼성생명의 지분을 확보할 차례다. 원래는 삼성생명도 비상장법인인 점을 이용하여 에버랜드와 같이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소유지배권을 넘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전가의 보도처럼 애용되어온 전환사채 발행 방식을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소액주주 대표소송으로 문제삼자 이 방식은 폐기된다. 삼성측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삼성생명을 에버랜드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으로 재용 씨의 지배 아래 두기로 결심하고, 전현직 임직원 명의 삼성생명 주식 전부를 헐값으로 에버랜드에 모아준다. 이렇게 해서 재용 씨는 에버랜드에 이어 삼성생명의 지배권도 확보한다. 재용 씨는 아울러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이 보유한 주식을 통해 다른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권도 덤으로 갖게 된다. 요컨대 이재용 씨는 에버랜드를 인수함으로써 삼성생명에 이어 거의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는 위치에 오른다.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지만 이것도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이미 450억 원을 투자해서 삼성전자의 0.8% 지분을 확보한 상태니 최소한의 발판은 마련된 셈이다. 게다가 재용 씨 명의로 에스디에스의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200억 원어치 취득해 놓았으므로 상장 후 처분하면 수천억 원대의 추가 자금이 굴러 들어온다. 꼭 필요하면 이 돈으로 삼성전자의 주식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이로써 재용 씨로의 세습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 세습작전을 개시한 지 3년이 간신히 지난 99년 초의 일이다.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 일가가 국가에 낸 세금은 최초 60억 원의 증여에 대한 16억 원의 세금이 전부다. 보통 사람이라면 고작 50억 원대의 재산을 물려받는 데 필요한 16억 원의 세금으로 한국 최고 재벌의 오너 총수를 새로 만들어낸 셈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이 법과 정의에 부합한다고 삼성 관계자들은 강변한다. 국세청 당국도 ‘편법에 의한 실질적 증여이긴 한데 세법 규정을 요리조리 피해갔으니 조세법정주의의 원칙상 증여세를 물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법치주의의 나라에서 고작 16억 원의 세금을 내고 한국 최고 재벌의 오너 총수 자리가 사전상속된 것을 뒤집을 길이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증여세 16억 원으로 굴지 재벌 상속

삼성의 3세 승계과정에서 등장한 모든 거래가 모두 엄청난 특혜성 불공정거래이지만 그 하이라이트는 단연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이다. 만약 여기에 법적 문제가 없다면 이재용 씨는 다른 문제가 불거져도 얼마든지 총수자리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불법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첫째, 에버랜드의 62.5% 지분을 92억 원에 넘기기로 한 에버랜드 이사회의 결정은 사법상 무효이고 형법상 배임죄를 구성한다. 둘째, 에버랜드 이사회의 결정을 다투지 않고 묵인한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들, 곧 『중앙일보』 등 계열사의 경영진들 역시 형법상 배임죄를 구성한다. 물론 가장 큰 형사책임은 이 모든 과정을 배후에서 조종한 이건희 회장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62.5% 지분값을 92억 원으로 책정한 에버랜드 경영진의 결정은 에버랜드의 순자산가치가 150억 원 정도라야 적정한 것이다. 따라서 에버랜드의 순자산가치가 적어도 200억 원을 넘는 순간부터 에버랜드 경영진은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저버린 셈이 다. 이 경우 에버랜드 경영진은 형법상 배임죄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어떻게 변명해도 에버랜드의 62.5% 지분가치는 92억 원일 수 없다. 정상적인 거래라면 우선 경영권 프레미엄만 해도 최소한 수백억 원에 달할 것이다. 에버랜드의 순자산가치도 보유 부동산과 주식을 제대로 평가할 경우 최소한 수천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에버랜드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 경영진도 배임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재용 씨가 62.5% 대주주로 등장하는 바람에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모두 종전의 375/100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반면 에버랜드의 순자산은 무시해도 좋을만큼, 곧 92억 원이 늘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기존 주주들의 보유주식 가치는 종전의 1/3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보통 주주라면 당연히 재용 씨에 대한 전환사채 발행을 반대했을 것이다. 총수 일가의 일이라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다면 바로 형법상 배임죄를 구성한다.

이렇게 볼 때 법치주의를 농락한 재벌을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묵인해온 정부의 태도는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만약 정부가 재벌의 불법세습 관행을 뿌리뽑을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고 치자. 이 경우 검찰은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재용 씨에게 부당하게 재산을 몰아준 에버랜드 경영진과 주주 계열사 경영진들과 이건희 회장을 상법상 특별배임죄 혐의로 수사, 기소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재용 씨와 계열사 간의 주식 및 전환사채 거래를 부당내부거래로 규정하여 원상회복명령을 내리거나 막대한 규모의 과징금을 물릴 것이다. 국세청도 이재용 씨의 전재산이 실질적으로 증여된 것으로 보아 합당한 증여세를 부과할 것이다. 삼성은 물론 온갖 소송을 제기하며 다투겠지만 이 과정에서 법제와 관행의 문제가 드러나고 다양한 법해석 논쟁이 전개될 것이다. 이에 터잡아 사법부는 공정한 법의 심판을 내릴 것이며 입법부는 관련법제를 크게 정비할 것이다. 이와 함께 세금 없이 대기업을 대물림하는 후진적 관행은 사라질 터이다.

자, 이제 무엇을 망설이는가? 삼성의 3세 승계과정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형식적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재벌의 편법과 변칙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대신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이러한 현상에 법과 정의의 빛을 비춰야 할 때다. 이것이 시대와 역사의 요청이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심과 대응을 기대한다.

곽노현 하상 바오로, 방송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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