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2월 2000-02-01   1695

대감집 머슴이 대감보다 더 무섭다

A씨는 분당에 거주하며 서울에 소재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A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년 전에 장만한 것이다. 그러던 중, 지방에 있는 지사로 발령이 나서 부득이 하게 가족이 모두 이사를 가게 되었다. 부동산을 팔 경우 원칙적으로 양도소득세를 과세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1세대 1주택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과세하고 있지 않다.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되는 1세대 1주택이라 함은 1세대가 3년 이상 보유한 1주택을 팔 경우를 말한다. A씨는 1주택만을 소유하고 있지만 보유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으므로 원칙적으로 1세대 1주택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직장의 이동으로 세대 전원이 다른 시·도로 이사를 가는 경우에는 비록 보유기간이 3년이 안되더라도 1세대 1주택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는 특례조항이 있기 때문에 A씨는 이 조항에 의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파트를 팔았다. 그런데 얼마 후 세무서에서 A씨에게 수백만 원의 양도소득세를 내라는 고지서를 보냈다. 이에 A씨가 세무서에 가서 항의하자 담당공무원은 직장소재지와 같은 시·도에서 거주하다가 직장 이동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에는 1세대 1주택으로 보지만 직장소재지와 다른 시·도에서 거주하다가 직장 이동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에는 1세대 1주택으로 볼 수 없다는 예규(재산01254-727)에 의해 양도소득세를 과세한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A씨의 경우 직장소재지인 서울에 거주하였으면 1세대1주택에 해당되는데, 성남시에 거주하였으므로 1세대 1주택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법 해석에 있어서 국세청의 상급기관인 국세심판소에서는 비록 거주지가 직장소재지와 다른 시·도에 위치해 있더라도 통근가능한 거리라면 A씨와 같은 경우 1세대 1주택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렸다(국심95경1973외 다수).

조세전문가를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안 A씨가 국세심판소 판결문을 인용하며 재차 항의하자 담당공무원은 억울하면 불복절차를 밟으라는 말로 일축하였다. 사실, 일선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국세심판소의 심판관이나 대법원 판사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직속 상급기관의 유권해석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잘못된 예규나 기본통칙에 의한 부당한 과세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세무공무원 개개인의 실수로 인한 부당과세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서울에 직장을 두고 일산이나 분당 등 신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현재 수십만 명에 이른다. 위의 예규를 폐기하는 새로운 예규가 나오지 않는 한, 신도시 주민 수십만 명은 언제 위와 같은 부당한 과세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납세자 승소율 50% 육박

납세자가 억울한 세금을 당하였을 경우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가 법에 마련되어 있는데, 이를 불복절차라고 한다.

불복절차의 단계 이의신청 심사청구 심판청구 행정소송
심사기관 세무서장 국세청장 국세심판소 법원
납세자의 승소율 40% 20% 30% 35%

위의 표는 불복절차 각 단계의 심사기관과 납세자의 승소율을 나타내고 있다. 각 단계의 승소율을 집계한다면, 불복절차를 밟은 납세자의 50% 이상이 승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선진국과 비교하여 볼 때, 매우 높은 수치이다. 특히 과세 당사자인 세무서장과 국세청장이 심사를 하는 이의신청과 심사청구에서 각각 40%와 20%의 높은 승소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불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두 가지 정반대의 해석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우선 좋은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과세관청이 불복사건에서 납세자의 입장을 많이 들어주는 경향이 강해진 결과로 볼 수가 있다. 이는 과세관청이 주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한편 반대로 해석한다면, 일선 현장에서 부당한 과세의 사례가 전보다 많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애당초 과세할 때 제대로 했으면 불복절차를 밟을 일도 없거니와 밟더라도 납세자가 승소하는 경우는 줄어들었을 것 아니냐는 주장인데, 주로 납세자들의 입장이다. 이 두 가지 해석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겠지만, 조세행정의 발전을 위해 후자의 입장에서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선 잘못된 예규와 기본통칙이 부당한 과세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규와 기본통칙은 일종의 과세관청 내부의 업무처리 지침으로서, 예규는 납세자 또는 일선공무원의 질의에 대한 회신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기본통칙은 특정 법령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인 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예규와 기본통칙은 법령이 아니므로 국민에 대한 구속력이 없다. 즉, 국민은 예규와 기본통칙에 뭐라고 되어 있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예규와 기본통칙은 국민과 직접 대면하는 일선 세무공무원의 판단기준이 됨으로써 사실상 국민의 재산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예규와 기본통칙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국민의 재산권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기본통칙이 잘못된 경우도 있다. 부가가치세법 기본통칙 5-1-2-13에 의하면, 연체이자에 대하여도 부가가치세를 과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기본통칙으로 인해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정해진 날짜에 중도금 등을 납부하지 못해 연체이자를 추가로 내는 경우 연체이자에 대하여도 부가가치세를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오래 전부터 연체이자는 공급 대가가 아니라 위약벌이므로 이에 대하여 부가가치세를 과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97누15722 외 다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본통칙이 지난 수년간 유지되어 오다가 98년 12월에 연체이자에 대하여는 부가가치세를 과세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시행령이 신설됨으로써 문제가 비로소 해결되었다. 그동안 부당하게 부가가치세를 부담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늦게 해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러나 이 경우는 개선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행정편의 위주의 조세관청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기본통칙이 오히려 시행령을 개악한 경우도 있다. 소득세법 기본통칙 98-7에 의하면, 민법에 의한 점유취득의 경우 부동산의 점유 개시일을 취득시기로 본다고 되어 있다. 이로 인해 취득시효에 의해 부동산을 취득한 사람이 당해 부동산을 양도할 경우 취득시기가 수십년 전으로 소급되기 때문에 양도소득세가 많이 부과 된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점유취득의 경우 취득시효의 완성시를 취득시기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96누525). 이 대법원 판례에 의해 위의 기본통칙이 문제시되자 소득세법 시행령 제162조 제1항 제6호에 점유취득의 경우, 점유 개시일을 취득시기로 본다는 내용을 98년 12월 31일자로 신설하였다. 결국 기본통칙을 시행령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대법원의 판결을 깔아뭉갠 것이다. 이는 조세법률주의를 정면으로 뒤집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국세심판소나 대법원에서 예규나 기본통칙이 법리상 또는 납세자의 재산권보호의 측면에 문제가 있다는 판결을 내리더라도 예규나 기본통칙의 내용을 시행령에 집어넣어 유효하게 한다면, 이는 법에 의거한 과세가 아니라 사실상 행정기관의 재량에 의한 과세가 되기 때문이다.

옛말에 ‘대감댁 머슴이 대감보다 더 무섭다’라는 말이 있다. 벼슬자리에 올라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은 대감이지만, 그 권한을 백성들에게 직접 행사하는 사람은 머슴이기 때문에 백성들 입장에서는 새까맣게 높으신 대감보다 직접 대면하는 머슴이 더 무섭다는 뜻이다. 가장 상위의 법인 헌법에서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조세법률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세무행정 일선에서는 헌법은 멀고 예규나 기본통칙은 가깝다. 대감이 아무리 인품이 좋더라도 머슴이 고약하면 그 대감은 인심을 잃게 된다. 마찬가지로 헌법과 세법이 아무리 잘 되어 있더라도 예규나 기본통칙이 행정편의주의로 구성되어 있다면, 국민의 눈에는 조세제도와 조세행정 모든 것이 엉망으로 보일 것이다.

‘머슴’에게 당하는 억울한 납세자를 더 이상 만들지 않으려면, 민간인 전문가와 학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예규 및 기본통칙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여 잘못된 예규와 기본통칙을 신속히 정리하여야 한다. 그리고 새로 발생된 예규를 그때그때 공개하여 많은 전문가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즉각적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종훈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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