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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02월
  • 2000.02.01
  • 404
종로경찰서 기자실은 ‘NGO 기자실’로도 통한다. 경실련∙녹색연합∙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한국시민단체협의회 등 굵직굵직한 단체들이 종로 관내에 집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곳 기자들의 주요 출입처는 역시 시민단체. 기자들은 매일 70~80%의 시간을 할애해 시민단체들을 대상으로 정보사냥에 나선다. 언론인의 눈에 비친 시민운동 속으로 들어간다.

“아 참, 너 밥 먹었냐? 어쩔 수 없다. 일복 터졌다.”

1월 17일 오후 1시 40분. 종로경찰서 출입기자 중 최고참인 연합뉴스 고형규 기자(31세)는 연신 휴대폰으로 취재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야, 이건 큰 사건이란 말야. 대통령이 선거법 재협상 지시를 내렸다고.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떠밀린 것으로 볼 수 있는거야…. 당장 여야 협상 전망을 취재하고, 의원 수 축소 문제 등 여야가 합의한 사안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대안이 뭔지 알아봐.”

언론은 왜 시민운동을 주목하는가

종로경찰서 별관 2층의 10평 남짓한 기자실은 그야말로 시장판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10여 개의 칸막이 책상 앞에 앉은 기자들이 노트북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다른 한쪽에선 휴대폰으로 고성을 질러가며 취재하는 모습. 끼니때가 지났건만 탁자 위에 놓인 10여 개의 도시락을 거들떠 볼 틈도 없다. 시민단체들의 낙천운동이 이번 총선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이다.

종로서 출입기자는 총 20여 명. 이 중 모든 일간지와 방송사 기자들이 이곳에서 하루 일을 시작한다. 이들의 주 취재원은 시민단체 인사들. 어떤 때는 시민단체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기사를 송고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각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NGO 지면을 신설한 지 1년째 접어드는 종로기자실의 새로운 풍속도다. 시민단체들이 밀집한 이곳 종로경찰서의 출입기자실은 당연히 언론사 NGO난의 사령탑인 셈이다.

언론은 왜 시민운동에 주목하는 것일까. 종로서에서만 1년 7개월 짬밥을 먹은 연합뉴스 고형규 기자(출입기자실 간사)는 “DJ정부 들어서 소위 형식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되는 단계에 왔기 때문에 자연히 언론도 일반시민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 아니냐”며 “시민의 대표성이 인정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반영돼야 할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부에서 4년여 동안 몸담고 있다가 지난 98년부터 종로서에 출입했다.

동부경찰서를 출입하는 문화방송 강명일 기자(29세)는 좀 다른 해석을 했다. “처음부터 시민운동을 키워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고발 리포트를 할 때 기자의 입으로 얘기하기보다는 시민단체의 입으로 말하는 게 좀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을 자주 찾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를 가지면서 시민운동도 일정 부분 커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그전에는 언론이 시민운동을 이끄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적 이슈를 스스로 만드는 단계에 와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낙선운동이 가장 최근의 예 아닙니까.”

정부의 ‘청탁설’도 제기된다. 일간지의 한 관계자는 “신문사 윗선으로 모종의 언질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며 정권과의 교감설을 내비치기도 했다. 현 정부가 제2건국위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려 했던 시기와 비슷한 시점에서 시민단체에 대한 신문사들의 경쟁적 보도가 이뤄졌다는 말이다. 그 시작이야 어떻든지 간에 시민운동은 현재 언론의 주요 관심항목에 각인돼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기자들의 눈에 비친 시민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CBS 안성용 기자(31세)는 종로서 출입경력만 따지면 9개월이 넘은 중고참. “일부 단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타 출입처에서 느꼈던 것과는 달리 계산된 발언을 하지 않는 순수함이 돋보입니다. 이게 바로 시민운동의 힘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는 “때론 상근자들이 일에 매몰되다 보니 큰 틀에서 자기가 가야 할 지향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며 타성에 젖지 말고 부단한 자기혁신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안 기자의 충고는 그래도 점잖은 편. 문화방송 강 기자는 “시민단체 상근자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게 아니냐”며 “아무리 사명감으로 뭉쳐있다지만 상황이 이 정도인데도 아무 말 없이 근무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적인 문화”라고 지적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 “프로의식 떨어져”

사실 매일매일 튀어나오는 새로운 사회적 이슈에 대처해야 하는 상근자들이 많은 업무량을 제대로 소화할지는 의문이다. 한겨레신문에 입사한 지난 93년부터 줄곧 ‘운동권 전문’으로 통하는 이제훈 기자(35세). 그는 “특정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직접 만든 담당자도 사실관계와 근거를 잘 답변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며 “노동강도가 높은 것도 이해는 하지만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 대한 프로의식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고 따끔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그는 또 서비스 정신의 부족도 지적했다. 상근자들 대부분이 일에 치이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시민들이 찾아와 아무리 엉뚱한 사건을 들이밀어도 짜증을 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정성진 기자(30세)는 입사 6년차. 종로서 출입은 지난해 8월부터다.

“다른 출입처와 특별히 다른 점은 없어요. 고급정보는 윗사람, 따뜻한 정보는 아랫사람, 두루두루 알아야 좋은 기사가 나온다는 대원칙은 그대로 적용되니까요.”

하지만 그는 “재정 문제는 무지무지하게 깨끗하지 않으면 시민단체로 살아남기 힘들다”며 “예산을 줄여서라도 성장위주의 운영은 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또 “상근자들의 연령대가 20∼30대가 대부분”이라며 “한 교수는 한국 NGO의 위기는 간사의 재생산 구조에서부터 올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이처럼 시민운동에 마냥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들은 때론 “정보공개법이 제정된 뒤에도 법이 제대로 시행되는지를 스크린하는 것을 보고 아하 이게 바로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힘이구나”라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 “낙선운동 등 기자들이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것을 들고 나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치유하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 집단”으로 느끼기도 한다.

언론과 시민운동은 ‘생산적 긴장관계’

시민운동과 언론의 가장 큰 공통점은 소위 권력 감시에 있다. 지난해 말 언개연 주최로 열린 ‘NGO와 언론의 발전적 관계 모색’이라는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은 “언론과 시민단체는 정부와 시장 영역이 아니면서 각자 권력 감시라는 공공선을 위해 일하는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면서도 “양자의 관계는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서로 협조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감시해야 할 ‘생산적 긴장관계’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KBS 시청자 칼럼 ‘우리 사는 세상’을 진행하면서 시민운동 특집을 다뤘던 박혜령 PD도 “시민운동은 이제 유일한 나의 희망”이라며 애정을 표시하면서도 “언론은 시민단체의 시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며 서로 따끔한 충고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동반자적 관계가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근들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시민권력’. 입법∙행정∙사법부에 이어 제 4권부로 통용되는 언론이 제 5권부로 시민단체를 주목하고 있다. 시민운동과 권력기관이 동격으로 취급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과거 권위주의의 때를 벗기려면 양자가 ‘생산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한다.











언론인들이 시민운동가에게 보내는 5가지 문제의식

1.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2. 회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3. 다른 단체와의 연대에 소극적이지는 않은가.

4. 공부합시다.

5. 재정은 투명한가.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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