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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02월
  • 2000.02.01
  • 199
참여와 공생의 시대로
1. 20세기를 돌아보며

문명의 시대이자 야만의 시대였던 20세기

20세기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남긴 세기였다. 한편으로는 문명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야만의 시대이자 파괴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부정적 측면에서는 생태계의 파괴와 전지구적인 환경위기, 국제적 양극화, 기아, 빈곤, 전쟁, 인종적·민족적 적대와 증오, 그로 인한 집단학살 등의 얼룩진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는 경제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에 힘입어 대중의 힘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민주주의적 참여제도가 크게 확대된 대중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사회복지·의무교육 제도 등이 확산됐고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가 보급됐으며 보통선거권과 여성참정권이 보편화됐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시민참여의 제도적·기술적 가능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쌍방향성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적 문화와 관계의 형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런 변화와 함께 20세기는 민주주의와 인권,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양성평등,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증진됨으로써 20세기의 실패를 성찰하고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가기 위한 주체적 기반도 확대된 시기였다.

20세기 전반의 한국 근대사가 주체적 근대화의 실패,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저항의 역사였다면, 20세기 후반의 한국 현대사는 개발과 성장만을 목표로 달려왔던 ‘압축적 근대화와 냉전’의 역사였다. 그러나 압축적 근대화는 20세기 인류사가 그랬던 것처럼 비록 성장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였지만 우리 사회에 물질만능주의와 부패정치, 이데올로기적 증오와 적대,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화, 지역적·사회적 불균형, 환경파괴와 생태계 위기, 성차별, 권위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사회문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병든 자본주의와 불완전한 민주주의, 그리고 왜곡된 사회시스템으로 요약될 수 있는 20세기 한국의 냉전적 개발독재시스템은 후반에 와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며 한국사회에 총체적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2. 세기말의 새로운 도전

21세기 인간다운 사회를 향한 우리의 행진을 위협하고 있는 현 단계조건 중 핵심적인 것은 바로 ‘규제되지 않은 세계화’와 ‘정체된 민주개혁’이다.

개인의 삶이 초국가적 차원에 의해 더욱 많은 영향을 받는 세계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정보기술 혁명과 자본운동의 범세계화에 의해 촉진되는 세계화는 무한경쟁과 효율, 시장만능주의, 민영화, 작은 정부, 긴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진행됨으로써 국제적·국내적 수준에서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중들의 삶의 질 악화, ‘20:80 사회’로 상징되는 양극화, 초국적 자본들의 지배확대 등을 가져오고 이는 지구촌 민중의 삶에 새로운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규제되지 않은 세계화의 이념적 기조가 신자유주의라고 한다면, 기술적 기초는 정보화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를 역류하여 국내적·국제적인 양극화와 비인간화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조건에 처해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역류 속에서,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통해 탄생한 ‘국민의 정부’는 정작 압축형 근대화 과정 속에서 고착화된 비인간적인 개발독재체제를 혁신해야 하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금 시기 개혁은 단순히 위기수습 과정이 아니라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재벌체제의 문제 등 구조적 문제들을 척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개혁과정은 구 국가질서 및 시장질서의 과감한 민주적 개혁에 접근하지 못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개혁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러한 민주개혁의 정체에는 기본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동시에 강력한 개혁주체 세력을 형성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또한 정권내 개혁담당 주체들이 개혁의 대의보다는 기존 관료적 구조에 안주하는 ‘개혁의 관료화’ 현상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기서 규제되지 않은 세계화와 정체되고 있는 민주개혁이라고 하는 이중의 도전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이를 헤쳐나가는 새로운 비판의식과 새로운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를 새 천년 시민·사회 운동의 신비판주의(New Criticism)와 신행동주의(New Activism)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3. 새 천년 신비판주의와 신행동주의를 향한 시민·사회운동의 비전과 결의

새 천년 신비판주의와 신행동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위협을 뚫고 과감한 민주적 개혁을 통해 21세기를 참여와 공생의 시대로, 또한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참여와 공생의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한 인식이자 실천이 될 것이다. 신비판주의와 신행동주의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참여와 공생의 한국사회를 개념화하여 본다면 공생적 복지사회, 환경친화적 생태사회, 참여형 민주인권사회, 성평등사회, 분권적 자치사회가 되어야 한다.

참여와 공생에 기초한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감에 있어 우리 시민·사회 운동은 대안적 가치와 대안적 행동의 진원지가 될 것을 자임한다. 21세기 시민·사회 운동은 생태학적 생명주의, 환경친화성, 노동친화성, 공공성, 양성평등, 비폭력평화주의, 자율과 분권화, 주민자치, 공동체적 연대성이 지배하는 대안적 질서의 지적 진원지가 되어야 하며, 대안적 가치를 실천하는 행동의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

21세기 시민·사회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촉발하는 시장만능주의적 흐름에 맞서서 시장의 비인간성과 가혹성을 인간적·사회적·생태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새 천년 신비판주의와 신행동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의해 만개하고 있는 신시장주의에 맞서서 시장을 인간적·사회적·생태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비판과 행동을 지향한다.

한반도는 탈냉전의 세계사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냉전의 고도(孤島)’로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운동은 한반도를 여전히 냉전구조로 지속시키고 남북화해를 저해하는 우리 내부의 다양한 극우반공주의적 도그마와 반통일적 제도·의식·세력, 정치군사적 질서를 척결하고 극복해가는 운동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운동은 통일운동이나 평화군축운동의 과제를 넘어 시민사회운동의 공통과제로 자리잡아야 한다.

21세기 시민·사회 운동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영역과 수준에서, 또한 체계와 생활세계의 전영역과 수준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다짐한다.

21세기 시민·사회 운동은 생활세계에서의 민주적 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우리의 가정과 학교와 단체, 일상생활 현장 속에도 존재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철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서는 참여·분권화·자치·자율이 대안적인 사회운영원리로 정착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주민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주민자치형 지역운동의 활성화는 참여와 분권화, 자율, 자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원동력임을 새삼 확인한다. 21세기 민주주의에서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은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 21세기 한국사회는 국민들이 행정명령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견이 일상적으로 권력행사의 전과정에 투입되고 반영되는 쌍방향적인 참여민주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난 20세기가 남성 중심의 역사로 발전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는 불완전한 반쪽사회로 고착되어 왔다. 차별적인 성별분리를 넘어 여남평등이 폭넓게 실현되어야 한다. 나아가 21세기 시민사회운동은 폐쇄적 가족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적 가족모델을 탐색하여야 하며, 성평등에 기초한 열린 가족의 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와 시장 중심의 사회에서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건전한 비판과 견제가 존재하는 상태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활성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활성화된 시민사회는 국가와 시장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촉진자가 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시장의 인간화를 위한 견제자이자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80년대 이후 민주화 속에서 국가의 권력논리에 시민사회가 종속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추동하는 거센 시장주의의 힘이 강화되어 시민사회를 위협하고 있으며, 새롭게 시민사회 내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와 그에 기초한 저항이 공공성 실현을 제약하고 있다.

97년 말 외환위기와 IMF 금융지원체제로의 전환은 한국사회를 운영하던 구 패러다임의 붕괴를 의미한다. 구 패러다임의 붕괴는 구 패러다임의 유지와 운영에 책임이 있는 세력들의 사회적 리더십이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IMF 이후 우리 사회에 새로운 사회적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민·사회 운동은 건설적인 비판자와 감시자임을 뛰어넘어, 21세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대안 건설자이자, 새로운 사회 리더십의 중추가 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운동의 전진을 위하여는 시민·사회 운동간 바람직한 분업과 협업의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이런 점에서 사안별 일회적 연대를 넘어 시민·사회 운동의 지속적인 개혁 네트워크와 연대틀이 구성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개혁 네트워크는 기존 서울 중심의 연대를 넘어 전국에 산재하는 개혁적인 시민·사회 운동단체들이 함께 연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개혁 네트워크는 노동운동, 민중운동과 시민운동간의 새로운 연대성을 정립하여야 하며, 다양한 부문 운동간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 새 천년을 맞아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전국적 개혁 네트워크의 구성을 노력할 것이다. 새 시대는 새로운 연대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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