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2월 2000-02-01   533

기부문화를 바꾼다, 시민운동을 가꾼다

94년 이기남 할아버지는 참여연대 공익소송센터를 통해 뜻밖의 소송을 법원에 냈다. 당시 사회보장 혜택을 전혀 받지 않았던 생활보호대상 노인분들이 조금이나마 혜택을 받을 수 있게끔 하자는 소송이었다. 결국은 98년 승소해 최소 13만 명 이상의 생활이 어려운 노인분들이 이 수당을 탈 수 있게 되었다. 한 할아버지의 용기있는 행동이 결국은 법원까지 고개를 끄덕이는, 모두가 승리하는 소송을 일구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 만들기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것처럼 기분좋은 일이 없다. 위에서 아래까지 조그마한 이해를 취하는 다툼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아름다운 이야기, 모두를 흐뭇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절실하다. 더욱이 위 경우와 같이 공익을 위한 개인들의 헌신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일은 더욱 시급할 것이다.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까지는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재단이라는 말과 합해질 때 갖게 되는 느낌은 어쩔 수 없이 생소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별로 가까이 하지 않는 낱말 중 하나로, 아니 그리 탐탁지 않은 용어로 재단(財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현재 수백여 개에 달하는 기업재단들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되레 ‘재단’하면 기업의 부당증여수단, 탈세수단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을 과감히 뛰어넘어 재벌들만 공익재단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힘을 모아 공익재단을 만들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현재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고 있는 창립준비위원회 팀(발기인 대표 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이다. 5월 창립을 목표로 모두의 공익재단을 만들려는 이들이 주목하는 현재 시민운동의 상황은 어떤 것일까?

성숙한 문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

이들이 첫 번째로 드는 변화는 ‘이제 시민단체도 과학적 마케팅 기법을 도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재정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자발적 참여보다는 획일적 동원 분위기에서 일반 시민의 후원을 통해 재정을 마련한다는 것은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거의 불가능했으며, 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지사(志士)적 자세만 강조되었을 뿐 재정확보는 운동의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전국 시민단체 수만도 2만여 개를 헤아리며 가입된 회원, 후원자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시민단체들의 의식 또한 기부에 대한 근본적 인식에 접근할 정도로 발전했다. 특히 사회여론 대변기능(Advocacy Part)에서 출발한 시민참여의 유형들은 공공 복지 서비스(Public Welfare Service)분야와 풀뿌리 지역조직(Community Based Organization)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출발단계일 뿐 종교단체와 사회복지전문단체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재정마련의 방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아직까지 단체재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정부 프로젝트의 경우 발전하는 시민단체들에게 ‘한 바가지의 물’은 될 망정 ‘대지를 적시는 단비’는 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이 자기희생적이며 소규모적인 운동을 벗어나 광범위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대중적인 운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재정확보의 문제가 가장 절실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후원금을 낼 경우 과거와는 달리 소득공제 등의 세제혜택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의 박준서 후원개발본부장은 “연말 소득공제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져 아예 전체 후원자에게 영수증을 일괄적으로 발송하고 있다”고 밝힌다.

특히 (자선영역을 제외한) 일반 시민단체의 경우 감정적, 온정적 기부보다는 자신의 개인적 신념에 기초해 기부하는 서구적 개념으로 기부자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시민단체에도 서비스할 것을 요구한다. 즉 적극적 서비스의 하나로 소득공제 등의 혜택은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은 어떤 적극적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은 모두를 위한 공익재단 설립이 돌파구라고 힘주어 말한다. 재단의 원래 의미가 ‘공익을 법적으로 보장받으며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각 기업들에 악용되고 있지만 이 본래 의미를 복원한 공익재단이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다면 우리 시민운동은 한 발짝 전진을 이룰 수 있다.

출연자, 수혜자를 존중하는, 모두의 재단

아름다운 재단은 미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Community Foundation 모델을 지향한다. Community Foundation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처음 도입되었으며 지역의 각 공동체들이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여러 목적형 기금을 모아 지역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이색적 재단형태를 띠고 있다. 지역별로 존재하는데 성공적인 경우는 4백 개 이상의 각종 목적형 기금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아름다운 재단이 강조하는 지점은 바로 이 목적형 기금이라는 새로운 기금모금형태이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사업국장은 “기부자들은 자신이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하며, 더 나아가서는 쓸 곳에 대해서도 자신이 직접 구체적으로 정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재단은 자신의 임무를 섣불리 한정짓지 않고, 자신의 돈을 써야 할 곳을 묻는 기부자들과 그들이 써야 할 곳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담당한다. 즉 기부자 입장에서는 기부할 곳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수혜자 입장에서는 기부자를 소개받고 또 법인이 아닌 이상 그 단체가 해주기 어려운 세금혜택을 기부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진정한 공익재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미국의 경우는 세제혜택조차 일반재단보다 월등하게 해주며 Community Foundation을 장려하고 있다).

이런 재단 설립방식은 이미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추진되고 있다. 아름다운 재단은 이런 재단취지에 맞춰 여러 공동체들이 만약을 위해 갖고 있던 여러 적립금들을 목적형으로 출연받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한 예로 집단소송 등을 해 승소했을 경우 받는 보상금(이 금액은 보통 서로 나누기에는 너무 작고 한 사람이 갖기에는 너무 크다)을 공익소송을 위한 기금 등의 형태로 출연받는다는 구상이다.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 공익성 향상에 상당한 재정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은 지금 청년의 시기이다. 그 힘은 비록 커졌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성을 사회에서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사실 시민운동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무모하고 과감한 행동만을 능사로 아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또한 대의를 부정하진 않지만 신뢰감을 갖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지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공익운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소득혜택을 요구하며 한편으로는 그들의 지원과 격려를 지속적으로 이끌고 공식적인 틀로 보장할 재단이 필요하다.

자, 여기 당신이 알지 못한 사이에도 묵묵히 당신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을수록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의 공익활동은 아무런 법적배려를 받지 못한다.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많은 시민의 힘들이 필요하다. 그 힘들은 당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신이 공익사업을 위한 지원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가 그 시작일 것이다.

인터뷰 ㅣ 박준서 월드비전 후원개발본부장

한국 최초의 비영리 편드레이저

월드비전을 국내 최고의 사회복지 모금기관으로 만든 분 중 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사항을 먼저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엘림복지타운이라는 비행 청소년 상담실장으로 일했습니다. 딱한 경우도 많이 보았지만 특히 재정이 부족해 더 많은 청소년들을 돕지 못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대학에서 소비자심리학과 산업심리학을 배워두었던 게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그래서 특히 펀드레이징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금모금 프로그램 중 성공적인 사례 몇 가지를 꼽는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사랑의 빵 프로그램이었습니다. 1천만 개 이상의 사랑의 빵 저금통이 만들어졌으니까요. 모금액도 1백 50억원 이상이었습니다. 그 컨셉트에서 제일 강조되었던 점은 기부에 교육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부라는 사랑을 나누는 연습을 시키자고 한 것이었지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유사품도 많이 나오고 말이죠.(웃음) 어쨌든 우리가 개발한 교육적 가치를 기부에 부여하는 작업은 그 이후에도 자매결연 프로그램이라든지 기아체험 24시간이라든지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활용되었습니다.”

기아체험 24시간의 경우는 어떠셨습니까?

“기아체험 24시간은 International Partnership으로 세계 25개국에서 동시에 추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방송사 쪽에서도 환영받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적 효과까지 주었으니까요. 작년에 1만 3천 명이 참가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24시간인데 월드비전 호주의 경우에는 기아체험 40시간을 하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면 우리 특성상 어렵게 갈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죠. 기부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거기에 프로그램을 맞추는 게 저의 임무 중 하나입니다.”

우리 기부성향에 대한 생각을 간단히 말씀하신다면.

“지식층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기부성향이 높습니다. 월드비전의 절반 이상의 기부자가 중산층 이하 계층입니다. 배운 것도 평균을 넘지 않아요. 일반 시민단체들은 그렇지 않을걸요. 지식인들이 아마 제일 많이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점점 바뀐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특히 기부성향은 옛날의 감정적 기부성향에서 이성적으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득공제할 수 있는 영수증도 예전에는 원하는 사람에게만 보냈는데 이제는 일괄 발송합니다.

참여연대와 같은 Advocacy NGO들은 어떤 기부전략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무래도 이성적인 기부자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그만큼의 서비스를 원합니다. 사회복지단체와는 달리 단순 동정심에서 기부하진 않기 때문에 목적사업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을 얼마나 갖는가 하는 것이겠죠. 투명성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그런 것이니까요.”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 폐지추진위원장도 맡고 계시는데…

“지금도 그것 때문에 통화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기부금을 모집하는 데 쓰는 비용은 미국이 20%인 데 반하여 우리는 2%입니다. 모집하지 않는데 모금이 됩니까? 투명성을 보장한다면 기부금품 모집도 보장해야죠. 그 절차도 간소화해야 하구요. 다행이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참여연대에서는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 계획입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글쎄요. 우리 기부자층과 겹치면 어떡하나? (웃음) 기부자층을 탄탄하게 하는 것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모금기법과 기부의식 분석을 잘 하신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죠. 당부하고 싶은 말은 투명하라는 것입니다. 투명성이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가장 큰 역할을 할 겁니다.”

명광복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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