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1월 2000-01-01   1169

신창원에게 보내는 편지

『참여사회』는 이번 호부터 ‘릴레이편지’를 시작한다. 이 릴레이편지는 대중성있는 명사를 비롯, 보통 시민들까지도 왕래할 수 있는 쌍방향 통신창구이다. 시작은 단편영화 감독, 청소년 대상 웹진 『네가넷』의 최연소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학생이자 『네 멋대로 하라』의 저자인 김현진 씨다. 『참여사회』는 이 릴레이편지를 통해 팍팍한 우리 사회의 단비가 될 생각이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답장을 써야 하고, 만일 답장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이 편지를 이어가게 된다.<편집자 주>

신창원 씨께

안녕하신지요?

지금이 벌써 12월도 중순이 넘어가는데, 이런 추위에 몸이나 성하신지 모르겠군요.

당신이 체포되어 방송에 나온지도 벌써 몇개월 지났던가요?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리게 되었군요. 한때는 신드롬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웠는데 말이에요. 역시 인간의 일이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마련인가봐요. 아마 당신도 당신의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전해지고 당신이 했던 불평등에 대한 투덜거림이 누군가의 머리속에 깊숙이 박혀들기를 원했겠지만, 세상이 원하는 영웅담은 그렇게 쉽게 사라져버린답니다. 언젠가 지강헌 씨도 그랬더랬죠. 그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꽤 영향력을 발휘하긴 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요. 어쩌면 인간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망각의 존재인가도 싶어요.

사실 저는 당신이 어떤 죄를 범하였는지, 얼마나 오랜 형을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답니다. 다만, 어디선가 탈옥하여 도망다니던 그 과정만을 상세히 읽었을 뿐이니까요. 당신의 인생은 그렇게 대중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단지 도망다니는 사람으로서의 이미지죠. 이런 이미지들은 물론 당신의 탈옥 때부터 당신을 쫓아다니던 대중매체의 힘이었지요. 끝없이 계속되던 뉴스와 신문 기사, 그 안에서 보여지는 기발한 도망자. 그에 대한 추종과 또한 그에 대한 반박. 당신의 이름은 그 때 이후로 더 이상 신창원, 당신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많은 꼬마들이 멋있어하던 당신은 한 인간으로서의 당신이 아닌 탈옥수로서의 도망자로서의 신창원이었고, 당신을 특별한 미움의 눈빛으로 쫓아다닌 까닭도 그 놈의 방송, 보도로 인해 부풀려진 도망자 신창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습게도 당신이 체포되는 모습 또한 모든 방송사와 신문사를 통해 전국에 전달되었지요. 그 모습이 TV를 통해 몇번이고 계속해서 보여지는 것을 보았어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참 서글펐습니다. 저 사람도 인간인데, 한 명의 인간을 -비록 탈옥한 죄수라 하더라도- 저렇게 무참히 짓밟는구나, 라는 생각이 앞섰죠. 그들, 바로 당신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비뚤어진 시각을 고정화했던 그들이 다시금 당신의 체포를 방송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마치 영웅인양 의기양양하게 카메라를 들이댔던 것입니다. 최소한의 인격권까지도 무시당하는구나.

어느 정도의 형벌을 짊어질 사람인지도 결정받지 못한 채, 방송과 보도에 의해 ‘죽일 놈’ 혹은 ‘영웅’으로 극단의 시선을 강요받은 신창원, 당신. 최소한의 법적인 보장인 무죄 추정의 법칙까지도 몰수당하였던 당신. 그리고 방송 앞에서의 초상권까지도,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권리까지도 박탈당하였던 당신. 아마도, 재판에까지 그 매스컴의 영향을 짊어져야 할 당신. 저는 또 TV를 켜고, 신문을 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당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외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만들어지는 것. 우리는 조작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문득, <미선이>의 <치질>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다시는 사지 않겠어, 보지 않겠어. 단돈 삼백원도 쓰지 않겠어.>라던 가사의 노래. 당신은 누구일까요.

1999년 12월 20일

김현진 드림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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