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4월 2000-04-01   6021

하버마스 ㅣ 생활세계의 식민화에 저항하는 신사회운동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설득력있는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사상가는 그리 많지 않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이런 전환기의 사상적 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다. 신사회운동 담론들을 검토하는 이 기획에서 하버마스를 첫번째 이론가로 다루는 이유는 그의 이론이 당대 사회이론과 사회운동에 미친 커다란 영향력에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하버마스 사회이론은 환경·평화·여성운동을 포괄하는 서유럽 신사회운동에서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을 가져온 1989년 동유럽 시민사회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의 구조변화

하버마스 정치이론의 출발점은 1960년대 초반 출간된 그의 교수자격논문인 「공공영역의 구조변동」이다. 이 저작에서 그는 공공영역의 개념을 적극 도입하여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론화를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사회는 크게 국가로 이루어진 ‘공적 권위영역’과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으로 이루어진 ‘사적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시민사회가 상품교환과 노동의 영역인 부르주아 소가족 공간을 뜻한다면, 공공영역은 초개인적으로 구조화된 사회적 개인들간의 행위와 의사소통의 영역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한 이 근대 공공영역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매개항이자 통로로서 이른바 여론이 형성되고 결집되는 사회적 공간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근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계급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와 부르주아 계급간의 갈등을 공공영역에서의 다양한 토론을 통해 해결하려는 정치체제의 한 형태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르주아 공공영역은 20세기에 들어와 국가개입의 증대와 거대 사회조직(정당 및 노동조합 등)의 성장과 함께 급속히 축소되고 소멸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공공영역의 재봉건화’라 부를 수 있는 이러한 과정은 바로 그 공공영역의 활력을 제거함으로써 근대 민주주의를 한낱 ‘선거곡마장’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진단이다.

생활세계의 식민화와 신사회운동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초기 하버마스의 이러한 이론화는 1980년대 초반 발표한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체계와 생활세계 모델로 이동한다. 하버마스는 근대화에 따른 시민사회의 내부 분화, 곧 경제영역의 합리화에 따른 사회로부터의 경제의 분화 현상에 주목하여 현대사회를 경제체계와 행정체계로 구성되는 ‘체계’와 사적영역과 공공영역으로 구성되는 ‘생활세계’로 양분한다. 각기 독립적인 그러나 상호작용하는 이 두 영역은 근대화가 진행함에 따라 그 관계가 변화한다. 곧 근대화의 진전과 고도화에 따른 체계의 복합성과 강제성의 증대는 생활세계를 위협하는 병리현상을 야기한다.

이러한 병리현상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번째 그것은 체계의 과도한 발달이 생활세계의 일상적 실천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형태를 띤다. 두번째 그것은 지식생산이 제도화되면서 등장하는 전문가 문화가 일반인의 문화적 참여를 차단함으로써 초래되는 생활세계의 문화적 빈곤이다. 하버마스가 진단하는 현대 서구사회의 위기는 체계의 기능혼란(대량실업, 생태위기 등)이 체계영역 내부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활세계의 하부구조에 전가시키는 것, 다시 말해 체계의 기능상실이 상징적 재생산의 영역에서 혼란을 낳고, 그것이 다시 의미상실, 아노미, 노이로제 등과 같은 정신적 병리현상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이러한 병합현상을 하버마스는 이른바 ‘생활세계의 식민화’로 개념화한다.

하버마스에게 신사회운동이란 바로 이러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저지하고 방어하는, 그리하여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의사소통을 제도화하려는 일련의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지칭한다. 이 운동들은 그 갈등이 분배의 문제에서 점화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형태의 문법, 즉 문화재생산, 사회통합, 사회화 분야에 대한 질문에서 점화된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체계의 생산 및 재생산영역에서 발생했던 계급투쟁 및 권력투쟁과는 다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러한 신사회운동들은 체계에 대항하는 잠재력의 성격에 따라 ‘해방운동’, ‘저항운동’, ‘퇴각운동’으로 구별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과 여성운동이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려는 해방운동의 사례라면, 환경·평화·시민주도·녹색당·농촌 코뮨 등 다양한 대안운동들은 저항 및 퇴각운동에 속한다. 현재 여성운동의 사례를 제외한다면 대다수 저항 및 퇴각운동들은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는 데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행위영역을 지키려는 방어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데 그 공통점이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 관료제의 강화와 자본주의의 심화에 대항하여 자율과 연대로 상징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려는 급진 민주주의적 정치기획이 다름 아닌 신사회운동이라는 것이다.

민주적 토론정치를 향하여

하버마스는 1990년대 초반에 발표한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이러한 급진민주주의 기획을 담론이론의 시각에서 포괄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우선 그는 권력을 상호이해를 추구하는 의사소통의 힘으로 규정하는 한나 아렌트의 이론에 의존하여 권력을 행정적 권력과 의사소통적 권력으로 구분한다. 나아가 이 의사소통적 권력이 법치국가의 정치적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 그것이 언제나 행정적 권력에 언제나 선행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의사소통적 권력은 어디서 생성될 수 있는가. 여기서 하버마스는 「공공영역의 구조변동」에서의 초기 문제의식으로 되돌아가는데, 자율적인 공공영역에서의 연대와 상호주관성에 입각한 토론정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정당한 의사소통적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쌍선적 토론정치’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의회 안의 내부 공공영역과 의회 밖의 외부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긴장과 협력의 다양한 쌍선적 토론정치를 적극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권력이 생활세계를 침범하는 식민화를 차단할 수 있는 유효하면서도 민주적인 전략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남는 문제들

앞으로 검토될 다른 신사회운동론과 비교해 볼 때 하버마스 이론은 신사회운동을 ‘탈근대적’ 혹은 ‘전근대적’ 운동으로 설명하는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모더니즘의 신사회운동론을 대표한다. 신사회운동이 추구하는 목표가 계몽과 해방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가치들을 전승하는 것에 있는 한, 이 운동의 기본적 성격은 ‘부정적 근대화에 대한 근대적 비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버마스와 그의 동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이러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기존의 정치체제와 사회운동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다. 이론적 지평에서는 쌍선적 토론정치가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지평에서 신사회운동의 목표는 여전히 방어전략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저항의 잠재력을 어떻게 해방의 잠재력으로 변화시키고 제도화할 수 있는가. 하버마스에게 던져질 수 있는 이 물음은 모든 신사회운동 담론에도 동시에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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