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0월 2000-10-01   1089

모두의 깨달음을 지향하는 마을 공동체 운동

스리랑카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니운동

인도 옆에 있는 불교의 나라, 오랜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후 다수 싱할리스족과 타밀족의 갈등, 타밀 무장군(LTTE)의 인간 폭탄, 폭탄테러에 의한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들의 사망이나 부상…. 일반적으로 스리랑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곳에 두 달 간 있었던 어떤 분은 스리랑카에 간다는 내 얘기에 “사람들 많이 붐비는 쇼핑가나 고급차 근처에는 가지 마시오”라고 충고했다.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곳,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생활할까? 가난한 경제 여건에서 그들의 행복은 무엇일까? 바다로 둘러싸인 조그만 섬나라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수도 콜롬보에 가는 길에 마주친 순박하기만 한 버스 승객 얼굴에 여러 생각이 겹쳐졌다.

내가 스리랑카를 방문한 이유는 가난 속에서 대안적인 마을 개발운동을 하고 있는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 운동체(이하 사르보다야)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사르보다야는 인도의 독립 지도자인 간디에게 사숙한, 콜롬보에 있는 나아란다 대학 총장인 아리야라트네 씨가 1958년 간디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학생들과 농촌활동을 시작한 데서부터 출발했다.

영국의 식민지배는 독립 후에도 스리랑카 사회에 극소수의 권력 지배층과 빈곤대중이라는 이중구조를 만들었다. 아리야라트네 총장의 시도는 농촌의 현실에 무지한 학생들로 하여금 수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지고 낙후된 농촌에서 휴가를 보내게 함으로써 미래의 엘리트들이 농민에게서 배우고 주민을 위한 개발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사르보다야의 의미는 ‘모든 이의 깨달음’이고, 슈라마다나는 ‘자발적으로 시간, 자원, 사상, 에너지, 노동을 공유함’을 뜻한다.

여느 빈곤퇴치운동이나 개발 정책과 다른 차이점이 이 말에서 표현된다. 즉 사르보다야는 가난극복을 물질적인 증대로만 보지 않는 새로운 사회 전망을 가지고 있다. 사르보다야 사회는 빈곤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으며, 진실, 비폭력, 자기희생을 기초로 하며, 권력과 자원이 중앙집중성에서 벗어나 참여민주주의 정치를 추구하며, 그 사회에서는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고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충족된다.

슈라마다나 집회를 통해 시작된 마을 공동체 운동은 처음 10년간 오로지 봉사활동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1970년경부터 이 운동을 지원하는 개발교육센터, 운동 보급센터, 전국본부 건설로 이어지고 현재는 복지, 난민, 인권, 평화, 여성, 아동, 출판, 재활, 명상센터, 친환경적인 농업기술개발센터, 경제개발프로그램, 민중은행 등으로 체계적인 조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르보다야 전국본부가 위치한 콜롬보의 라와타와트 거리는 버스차장이나 교통경찰들도 알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그 골목에 접어들면 전체가 사르보다야 촌인 느낌을 줄 정도로 여러 사르보다야 법인체들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슈라마다나 집회는 주민들이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기 때문에 단 1회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의 중추로 장기간에 걸쳐 의사결정하는 의결기구다. 그러나 50여 년의 긴 역사 속에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뤄질 수만은 없는 일일 것이다. 사르보다야도 여러 난관을 넘어왔고, 어떤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1990년 초에 스리랑카 정부는 아리야라트네의 성공과 권위를 의식하고 사르보다야 활동에 대한 언론보도를 통제했고, 스리랑카 아동을 외국입양기관에 판매했다는 허위사실을 근거로 비난했다. 이는 국민들에게 사르보다야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었다. 93년 이후 정부는 비난을 멈추었으나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중됐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사르보다야의 주요 재원 중의 하나는 해외 민간재단이었는데, 이 기부자들은 양적 접근을 시행하고 사르보다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부자들은 ‘세계은행 식의 재정적, 관리적 시스템’을 강요하고 사르보다야의 행정과 재정 경영을 중앙집권식 체계로 바꿔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르보다야의 기본정신인 참여민주주의, 예를 들어 모든 지도자는 마을 공동체에서 선출하고 전국본부나 법인체들의 기술을 실무적으로 지원하는 전통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개발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는 양적 잣대로 마을 개발사업을 평가하려는 기부자와 마을의 개발은 지속되는 것이라는 사르보다야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사르보다야는 재정고로 1,0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고, 여러 프로그램들이 중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을 맞는 지도자 아리야라트네 씨의 태도는 단호했다. 사르보다야는 후원자의 지원이 없이도 이뤄질 수 있으며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후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르보다야의 전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빈국인 스리랑카에서 사르보다야운동이 진정한 자립을 이루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르보다야는 참여 마을에서 모든 구성원에게 회비를 받고 있지만 대안에너지 개발이나, 용수 사업 등은 그 회비로만 운영하기에는 너무 큰 계획이다. 몇 개의 서구 재원이 끊기는 어려운 과정에서도 사르보다야는 발전 3단계에 접어든 3,000여 마을을 중심으로 저축을 통한 민중은행 건립을 시작하였고, 현재 축적한 기금은 1,000만 달러 정도이며, 이는 각 마을에서 소규모 사업을 진행하는 데 쓰이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 신용사업은 자립·자족하는 공동체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만약 사르보다야가 참여민주주의, 깨달음, 검소한 삶을 바탕으로 성공한다면, 유엔개발프로그램(UNDP)보고서의 “새로운 개발 전형이란…인간을 개발의 중심에 놓고 경제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닌 하나의 수단으로서 간주한다…그리고 모든 생명이 의존하고 있는 자연적 체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모범이 될 것이다.

이러한 대안은 서구의 산업화만이 유일한 개발 모델로 삼고 좇아가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들`―`산업화의 폐해, 환경파괴, 공동체의 해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지구상에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살아온 민중의 삶에서 단 하나의 개발의 길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억지이다. 각각 다른 전통과 지혜에 뿌리를 둔 사회들은 그에 맞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고 그 길은 사회구성원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르보다야 운동 성장 5단계

스리랑카 전국에 있는 촌락 수는 약 2만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1만여 개의 촌락이 사르보다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는 5개의 단계로 성장하며 이 단게에 따라 타 공동체와의 관계, 권리, 의무사항이 다 다르다. 사르보다야는 인간의 욕구를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 안전한 물의 적당한 공급, 깨끗한 최소의 의복, 균형잡힌 식사, 간소한 가옥, 보건, 통신, 자급가능한 연료, 교육, 문화적 교육적 개발환경 10가지로 정의하고 각 항에 대한 자세한 실천 지침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연료확보를 위해선 태양에너지, 생체천연가스, 등겨나 코코넛 껍질 등 대안적 에너지원 이용을 촉진하고 있다.

1단계 : 공동체 정신과 슈라마다나(자발적인 노동) 공유.

2단계 :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훈련프로그램을 진행.

3단계 : 모든 자원과 노동력을 사용, 경제활동과 고용기회 증가, 하나의 법인체로서 마을 수준의 사르보다야 공동체가 출현.

4단계 : 사회개발프로그램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소득이 높아지고 점차 자체적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독립적인 지역사회로 발전.

5단계 : 자체적인 재원조달이 계속되고 경제적인 이익이 발생하며, 다른 지역으로 확산

장소영 ASEM민간포럼 실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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