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0월 2000-10-01   631

자율규제 외면한 통신질서확립법

지난 8월 26일 정보통신부 홈페이지(www.mic.go.kr)가 다운된 사건이 발생했다. 정통부에서는 네티즌들에 의한 ‘사이버테러’ ‘해킹’이라며 사법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통신질서확립법’개정안에 반대하는 ‘사이버시위’라고 설명하고 계속적으로 통신질서확립법 입법저지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법안에 대해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이 반대하는 이유와 개정법안을 둘러싼 쟁점을 살펴보자 편집자 주

정보통신부의 소위 통신질서확립법은 오늘날 통신공간에서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 인터넷 내용규제, 주소관리정책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이를 법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아놓은, 가히 사이버공간의 종합법이라고 할만한 법이다. 이 법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나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은 주로 인터넷 내용규제와 관련된 내용인 등급제에 맞춰졌으나 실제로 등급제는 이 법안에서 인터넷 내용규제에 관련된 내용들 중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법안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 중에서도 특별히 등급제 관련 내용이 검열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으나 다른 한편 이 문제만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바람에 다른 중요한 문제들이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일부 집단의 의견만 수용한 절차의 문제

이 법안은 지난 7월 20일 공청회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현재 정부의 입법과정 일반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이 법안 역시 다루고 있는 사안들의 중요성에 비추어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엇갈리는 입장과 의견들을 조율하면서 제안된 법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법안에 대한 공청회 이후 전개된 논의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이 법안작성을 위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참여했다는 사람들도 결국은 해당 정부부처의 관련 공무원이나 산하기관의 실무자, 전문인사들에 지나지 않고 여러 입장과 견해가 엇갈릴 수 있는 사안의 경우 특정 입장만을 전달해 일부 집단만의 의견을 수용했다고 하는 점에서 고질적인 입법과정이나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이 법안은 정보통신부측에서 밝혔듯이 입법예고 후 의견수렴을 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고 사전 공청회를 통해 대체적인 입법초안을 우선적으로 공개하고 이후 의견수렴의 과정을 거쳐 입법예고의 단계를 밟았다는 점에서 일면 전향적인 면도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의견수렴을 해서 나왔다는 입법예고안도 원래 입법초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되 단지 피상적인 자구 수정이나 누가 보아도 불합리했던 내용만을 삭제하거나 정정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아 결과적으로 의견수렴이라는 명분이나 절차를 무색하게 했다.

통신네트워크를 법으로 규제한다고?

통신질서확립법의 전체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이 법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한두 마디로 재단하거나 평가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 전체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몇 가지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법안의 의도는 일차적으로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사회적으로 대중화ㆍ보편화함에 따라 생겨나는 새로운 문제들 (개인정보보호, 인터넷 주소정책, 인터넷 내용규제 등)에 대한 법적, 제도적 대응을 위해 마련되었다. 그러나 통신네트워크 자체의 특성 때문에 정보통신 공간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문제들에 대하여 사회제도적인 대응책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통신네트워크를 전통적인 법적 규제의 방식으로 규율하려는 약간은 성급하고 안일한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다.

둘째, 법안의 목적이 정보통신 공간의 역기능 측면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 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응을 위한 사회적 대책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정보통신부의 소관 업무영역의 확장 및 권한강화라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어 지나친 부처이기주의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셋째,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의 자율적 문제해결 능력의 신장, 혹은 자율규제로의 지원 및 강화라고 하는 측면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그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제도의 틀이 짜여 있다.

시민사회가 이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네티즌들의 온라인 시위는 이 법안의 여러가지 요소 중에서도 특별히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네티즌들은 이 법안이 제시한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사실상의 검열이라고 간주하고 ‘검열반대’ 시위에 나섰으나 정통부측은 논란의 초기부터 시종일관 자율등급제라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정말로 자율등급제라고 한다면 굳이 법으로 제도화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며, 현재의 법안에서 등급제가 자율등급제인 것도 아니다. 사실 이 부분과 관련된 법조항의 핵심은 청소년보호법이 규정하는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규제를 사이버공간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심의권한을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부여한 데에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를 적용하려면 영리, 비영리, 개인의 정보제공 간의 구분이 없는 사이버공간에서는 결국 모든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제공정보의 유해성여부를 심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 부여되는 청소년유해정보라는 등급은 정보제공자 쪽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적 강제력을 갖게 된다.

허울좋은 자율등급제, 진실은 법적 규제

인터넷과 같이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는 정보통신 네트워크에서는 사법관할권(Jurisdiction)의 문제 때문에 법적 규제가 근본적으로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는 하루에도 수만 개씩 정보사이트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작업으로 심의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결국 기계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빈대 잡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해외의 경우에도 정책적으로 등급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정보제공자 쪽에서나 이용자 쪽에서 언제든지 주도적인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자율등급제의 형식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자율등급제의 경우에도 내용규제의 한 방편으로서의 등급제 자체의 실효성이나 특정 등급기준이 시장을 독점지배할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통신공간에서 유해정보를 규제해야 한다거나, 개인정보를 보호한다거나, 혹은 인터넷 주소자원에 대한 정책을 수립할 경우 시민사회와 시장의 자율규제적 능력을 강화하고 자율규제의 관행을 정착시키는 일은 당장 어렵다 하더라도 결국은 이뤄내어야 할 불가피한 숙제이다. 물론 개인정보보호 문제와 같은 경우에는 자율규제의 관행을 성립시키는 것과는 별개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법적 규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 때문에 어차피 법적규제 방식에 일정한 제한이 있는 이상 전통적인 규제 일변도의 법적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실제로 기대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어렵다. 물론 아직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시민사회나 시장의 자율적인 규제 가능성이나 규제능력에 대해 회의적이고, 따라서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율규제의 가능성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가는 전통적인 법적 규제방식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여러가지 행정수단 및 인센티브와 같은 직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시민사회와 시장의 자율규제능력을 적극적으로 신장시키는 일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사이버공간의 질서를 형성해 가는 데에 있어서는 이제 정부나 시민사회, 시장 모두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거나 단기적 안목으로 문제에 대처하기보다 훨씬 더 문제를 근원적으로 보고 사이버공간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미래라는 장기적 안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진지하게 모아가야 할 때인 것이다.

정응휘 피스넷 사무처장(ehchun@peace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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