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0월 2000-10-01   393

국정운용의 민주성 회복을 촉구하며

우리 민족 최고의 명절인 한가위를 치른 민심은 어찌된 영문인지 흉흉하기 이를 데 없다. 수십 년 전 추석 무렵 덮쳤던 사라호의 악몽을 되살리듯 태풍 사오마이가 수확기를 앞둔 한반도를 물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기 때문인가? 끝간 데 없이 치솟는 기름 값 때문인가? 아니면 바닥 모를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주가 때문인가? 의사도, 약사도, 정부도, 국민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싸움질만 하게 하는 의약분업 때문인가?

나라가 이 모양인데 이를 추스르고 바로잡아야 할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권이 보여 주고 있는 추태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국정의 난맥상을 따지고 바로잡아야 할 국정감사를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하는지 살피고 비판하겠다고 시민단체들은 국감연대까지 조직했는데 정작 정기국회는 시작부터 파장 상태의 연속이다. 야당은 국회를 포기한 채 거리를 헤매고 있고, 여당은 속수무책으로 청와대만 살피고 있는데, 정작 청와대의 시선은 국내에 머물지 않고 평양을 보고 있는지 오슬로를 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도대체 정국이 왜 이렇게 꼬이게 되었을까?

지난 4·13 총선에서 우리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한 의사를 명료하게 드러냈다. 총선연대가 지목한 수많은 반개혁적 정치인들을 퇴진시켰고, 시민의 의사에 명백히 반기를 들었던 김종필이 이끄는 자민련에게도 사실상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혔으며, 민주당과 한나라당 어느 쪽에도 뚜렷한 승리를 안겨 주지 않음으로써 대화와 타협에 의한 국정운용을 주문했던 것이다.

이 같은 국민들의 의사를 짓밟은 일차적인 책임은 분명히 현정부에 있다. 총선을 통해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김종필과 자민련의 정치생명을 다시 연장시켜 주고 있는 것은 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국회를 장악해야겠다는 현정부의 비민주적 정국운용 구상 때문일 뿐이다.

현재 대통령제를 제대로 운용하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과 프랑스뿐이다. 그런데 이 두 나라에서 행정부와 의회를 한 정당이 동시에 장악하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민주국가의 국민들은 그처럼 현명하게도 민주적 대통령제의 요체가 권력분립에 있음을 직시해 온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어리석지는 않다. 그래서 1987년 이후 치러진 어떤 총선거에서도 행정부를 장악한 정당에게 절대 다수 의석을 주지 않았고, 이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들에게 있었다. 대단히 불행하게도 한국의 대통령들은 권력분립이 민주적 대통령제의 요체라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무시해 왔다. 인위적 정계개편을 통해서든, 협박에 의해 타 정당의 의원들을 빼내 와서든, 아니면 국민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은 정파를 억지로 되살려서든 국회를 자신의 수족처럼 확실하게 장악해야 개혁이든 개악이든 국정을 운용할 수 있다고 믿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 문제의 본질이 있으며, 바로 이것이 민주개방 이후 10년이 넘도록 한국 민주주의의 착근을 가로막는 주 요인이 되어 왔다.

현재 국민들을 극도로 실망시키고 있는 정국 난맥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고, 또 인사청문회를 통해 그 자질과 도덕성에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난 인사를 끝내 국무총리에 임명하고, 또 지난 수십 년 간 지속되어 온 국회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또 다시 날치기 통과를 감행한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그릇된 신념의 산물이다.

문제는 또 있다. DJ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다 죽어 가는 JP를 살려내고 있음을 목격한 YS는, 기회가 왔다며 반DJ정서에 의탁해 세 확산을 획책하고 있다. JP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YS의 감언이설에 속아 야당 총재 역시 JP 살려내기에 나섰다가 정치적 망신을 자초하고, 또 여당의 국회법 날치기 통과 빌미를 제공해 주고 말았다. 다 죽어가던 3김정치는 이처럼 다시 부활하고 있고,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은 더욱 커져만 간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자금 실사 결과 처리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여당에 의한 선거법 위반 및 이에 대한 은폐 의혹은 그것이 사실일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명선거와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두 가지다. 첫째, 선거자금 실사 결과를 전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선관위의 태도는 결코 납득될 수 없다. 실사에 의해 선거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면 그들은 범죄 용의자들이다. 선관위가 숱한 의혹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의 명예를 보호해 주겠다는 저의는 과연 무엇인가? 둘째, 여당측에서 터져 나온 선거법 위반 공모 및 관권을 동원한 은폐 의혹이다. 지금 이 부분에 대한 야당의 공세는 치열하지 않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자신들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자행했던 행위를 지금 여당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 역시 시민들이 적극 제기해야 마땅한 문제로 남는다. 선거의 공명성과 법의 지배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국가를 어떻게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은 현정권의 도덕적 수준이 이전 정권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뚜렷한 예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정권은 이것을 덮고 지나가려 한다. 과연 세월이 약이 될지 화근을 더욱 키워줄지 지켜볼 일이다.

정부와 여당의 이와 같은 국정 운용 난맥에 편승해 야당은 물 만난 고기처럼 거리를 헤매고 있다. 남북관계, 의약분업 문제, 유가인상과 주가 폭락, 그리고 세제개편 등 민생과 직결된 경제 문제 등등 국회에서 따지고 가려 보아야 할 수많은 정책적 사안들은 오직 정치적 이유 때문에 완전히 방치되고 있다. 야당 역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이 국회를 무시하고 민주적 절차를 외면할수록 야당은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국회의 권능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한 해법은 사실 단순하다. 정치권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해 보겠다고 결심만 하면 된다. 우선 정부와 여당은 국회를 정부의 시녀로 만들겠다는 권위주의적 발상을 포기하고 국회의 권위와 권능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근본적인 발상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자민련과 같은 군소 정당에 여당이 질질 끌려 다녀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며, 야당과의 대화정치 역시 쉽사리 복원될 것이며, 현재 정국의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는 현안들 역시 쉽게 풀려 나갈 것이다. 의회정치와 민생정치 회복의 책임은 물론 여당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 안에서 정부를 상대로 진지하게 따져 보아야 할 정책 현안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모두 포기한 채 거리투쟁에만 주력하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잘못됐을 뿐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받지도 못할 것이다.

현재의 정국은 국정과 의정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이 좀더 근본적인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민주주의 근본 원리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제도개혁과 정치행위를 통해 이 원리를 적극 실천할 것을 정치권에 촉구하고 독려하는 데 시민단체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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