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2월 2000-12-01   782

명예회복과 보상 제대로 될까?

국회 앞에서 비닐천막을 치고 422일 동안 농성했던 유가협 회원들을 기억할 것이다. 1년이 넘는 기간을 거리에서 자고, 먹고, 농성하다 작년 12월 28일 명예회복보상법 및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이 통과되자 그들은 그동안 머물렀던 천막을 거둬들였다. 법이 시행된 지 3개월. 법안 자체의 문제부터 이런저런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무엇이 보완되고 바뀌어야 하는지 검토해보자. 편집자 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약칭 명예회복보상법, 이하 이 법)이 시행된 지 3개월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98년 4월 24일 서울역에서 시작된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명예회복 투쟁은 국회 앞 농성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422일간 벌인 투쟁의 성과로 작년 12월 28일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고, 대통령이 공포하여 5월 중순부터 시행된 것이다. 그러나 싸움은 여기에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올바른 법 시행을 위한 시행령 제정 작업은 행자부와의 지루한 싸움 끝에 7월 4일 국무회의 통과로 막을 내렸다.

이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 위원과 관련자 및 유족여부 심사분과위원회(이하 관련자분과위), 장해자 등급판정 분과위원회(이하 장해자분과위), 명예회복 추진분과위원회(이하 명예회복분과위), 국가기념사업 및 추모단체추진분과위원회(이하 기념사업분과위) 위원 선정 작업을 거쳐 8월 10일 위원들에 대한 위촉식과 신청공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법 시행에 돌입하였다. 내년 말까지로 법에 규정된 접수기간 중 1차로 8월 21일부터 10월 20일까지 신청공고를 냈다. 두 달간에 걸친 신청접수 결과 전국적으로 8,440명이 신청을 하였다.

국가보안법·민중생존권 포함 등 개정 요구

이처럼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청했지만 신청자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일단 신청한 당사자들이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그 이유로는 법이 가지고 있는 민주화운동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해 심의위원회 및 관련자분과위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고, 정부와 보수세력 일반에서 주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민중생존권 관련자에 대한 제외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김대중정권의 기본적 한계가 보태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법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토론과정을 통해 이미 밝혀졌다. 이렇듯 이 법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는 현실 역관계의 반영을 꼽을 수 있다. 법 제정은 일정정도의 상층교섭과 투쟁이 병행돼야 함에도 이 법의 경우 대중투쟁이 부재한 가운데 교섭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수세적 위치에서 법 제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제정될 법의 수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 이유는 정권의 문제이다. 현 정권은 이 법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대한 완전한 인식의 재정립이 아니라 일정한 수준에서 타협하려는 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들은 이 법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이 법이 가진 한계성을 극복하고 올바른 시행을 위해 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지적되고 있는 명예회복보상법의 개정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물론 이외에 다른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법 제정의 취지를 흔들지 않기 위해서는 세 가지 문제가 일차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첫째, 민주화운동 개념의 모호성을 보완하는 문제. 즉 민주화운동의 정의가 극히 추상적이어서 향후 심의과정에서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법에 의하면 민주화운동을 “69년 8월 7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 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이 정의만으로는 어디까지를 민주화운동의 범주로 볼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행령에 ‘항거’의 정의를 삽입했는데 “직접 국가권력에 항거한 경우뿐 아니라 학교·언론·노동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나 기타의 자에 의하여 행하여진 폭력 등에 항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의 통치에 항거한 경우를 포함한다. 다만 국가권력과 관계없는 사용자 등의 폭력 등에 항거한 경우는 제외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개정 작업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개념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고 시행령상 항거의 개념을 모법으로 옮겨야 한다.

보상차원을 넘어 역사청산의 의미로

둘째, 민주화운동 관련 대상자의 확대 문제. 현재 명예회복보상법에 의한 대상자는 사망자·행방불명자·상이자·학사징계자·해직자·유죄확정 판결자로 되어 있다. 민주화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 만큼 다양한 불이익 처분을 당한 이들이 많다. 장기간에 걸친 수배생활 때문에 여러 고초를 겪은 사람이나 적법한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강제로 입영되었던 강제징집자 등이 대표적이다. 1일 이상의 구류자도 포함되는 상황에서 10일 이상 구금되었다가 기소유예 등으로 석방된 경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볼 수 없는 것은 형평성에서도 어긋난다.

셋째, 명예회복 유형의 구체화 문제. 이 법에서는 명예회복과 관련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시행령에 신청과 관련한 내용이 있을 뿐이다. 명예회복 유형의 결정에 관해서는 심의위원회의 결정사항으로 남아 있다. 심의위원회 결정 이전에는 명예회복분과위에서 안을 마련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위원회의 결정사항이 법률적으로 강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명예회복 유형의 명시와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우리는 명예회복보상법에 대해 명확한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이 법을 통해 단순히 물질적 보상을 받는 차원이 돼서는 안 된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과거청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물론 사회적 여건이 완전한 과거청산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정권의 반민주성과 폭력성, 반민중성을 폭로하는 관점에서 이 법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 사회 역사적으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던 민주화운동이 법 제도적으로도 정당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그 어느 한시도 부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의 현실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색깔론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법 제도적으로 민주화운동 경력자는 불온시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법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반드시 밟아야 한다. 이 두 가지 관점을 명확히 해야만 비로소 이 법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손종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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