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7월 2000-07-01   818

협상통일 머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방북길에 올랐던 역사학자 강만길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여사 서실(黎史 書室)’은 강만길 교수의 연구실이다. 나는 이 동네를 손바닥 보듯이 잘 안다. 중학시절 이 동네에 살면서 미아리 고개 너머에 있는 학교까지 매일 걸어 다녔으니까…. 그러고 보니 서실이 있는 건물 바로 맞은 편 집터가 바로 내가 살던 곳이었다. 벌써 삼십 년 전 일이지만 이 동네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개천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도 여전하고 좁은 골목길에 옛집들도 많이들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세상은 얼마나 변했던가. 오늘은 강만길 교수와 그 ‘바뀐 세상’에 대한 얘기를 할 참이다.

방북 길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무척 바쁘다. 여기저기 원고 써줘야 할 곳이 열 군데가 넘는다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덕분에 나도 바쁘다. 어렵게 시간을 받아 강 교수를 만나는 오늘이 원고 마감 하루 전이니까….

“가기 전에는 원고 청탁이 많지 않았어요.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니까 그랬겠지요. 돌아온 다음에 굉장히 많이 청탁이 들어와서 정신이 없습디다.”

이번 회담은 여러 가지로 ‘의외성’이 강조되곤 하는데 그도 그런 맥락에서 얘기를 시작하려는 듯하다. 하긴 정부가 강조하는 ‘의외성’이란 것은 어찌 보면 회담의 성과를 극대화시켜 선전하기 위한 일종의 포장술일 수도 있지만 강 교수에게야 그런 정치적 목적이 있을 리 만무니까 아래와 같은 질문은 우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몰랐을까요? 대개 정상회담을 하면 그 전에 웬만한 내용은 실무 선에서 합의가 되고 그게 언론에도 알려지고 그러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이번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 쪽에선 임동원 씨가 같이 가는 것도 전혀 몰랐잖아요? 특히 보수적 신문들은 회담 성과에 대해서 그리 낙관적으로 예상하지 않았지요.”

방북 수행 사실은 언제 아셨습니까?

“20일 전쯤 통보받았는데 정말 갈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그러다가 일 주일 전이 되니까 교육받고 신체검사 받으러 오라고 해서 정말 가는구나 했지.”

모두 아는 것처럼 그는 이번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자격으로 수행단에 합류했다. 그러나 민화협 얘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보다는 역사학자로서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한 그의 평가가 먼저 궁금하다. 강 교수의 말에 의하면 이번 정상회담에 참가한 남북한 양측의 모든 사람 가운데 역사학자는 그밖에 없었다니 그가 내내 어떤 중압감에 시달렸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더구나 그는 78년에 내놓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이후 누구보다도 ‘분단’의 의미와 그 극복을 위한 사학에 천착해온 학자로 각인되어 왔다.

“저는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로 남북이 어느 정도 트이게 되면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로 그 효과가 파급될 수 있다고 봐요. 생각해 보세요. 한반도의 분단은 한반도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분단으로 이어졌지 않습니까? 남한과 일본, 그리고 미국으로 연결되는 쪽과 북한, 중국, 러시아로 이어지는 쪽으로 분단되었지요. 그러니 남북이 트이면 동아시아 전체를 엮을 수 있다는 거예요. 더구나 21세기는 점차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공동체로 옮아가는 시대가 될텐데 그런 의미에서도 동아시아가 함께 엮일 수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바로 그런 역사적 시점에서 열린 것이라고 봐야지요.”

그런데 일본이 동아시아의 지역공동체에 편입될 것인가는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즉, 선생님이 말씀하신 동아시아의 지역공동체론에는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맞아요. 일본은 이미 근대로 오면서 소위 ‘탈아입구(脫亞入歐)’ 라고 해서 아시아에서 벗어나 구라파, 즉 서양으로 들어간다는 전략을 실천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국주의를 배우게 된 것이지요.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로 돌아올 것이냐, 아니면 동아시아에서는 발을 뺀 채 미국과 계속 같이 갈 것이냐는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건 한반도 통일 방식하고도 깊은 연관이 있어요. 만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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