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8월 2000-08-01   807

흡수통일 전제로 북쪽 체제 비판

교과서 속의 ‘반통일’

통일과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학생들은 학교 교육과 교과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통일과 북한 문제에 대한 판단 정보를 어디서 얻는가 하는 설문을 해보면 중고등학생들의 80∼90%는 TV, 신문을 꼽는다. 선생님과 교과서는 10% 미만이다. 학생들에게 통일과 북한에 대해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언급하는 교사가 10%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통일교육의 변화, 교과서의 개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그러나 교과서 속의 통일관, 북한관은 바로 언론과 사회교육의 통일관, 북한관의 압축판이라는 점에서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통일관, 북한관을 알아보고, 통일교육의 전반적인 변화 방향을 모색하는 데 기초가 될 것이다.

현행 교과서에 나타난 통일관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체제 통일론’이라는 점이다. 교과서는 남북 양 체제가 공존하는 통일은 불가능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은 자유민주의의 체제로의 통일, 즉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변화시켜 통일을 이루자는 것(결국 흡수통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남북 양 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사회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위장한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이는 흡수통일 배제, 양 체제 공존 속에 남북연합으로 통일방향을 모색하기로 한 남북정상회담의 합의 내용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통일관으로서, 북한의 체제 변화나 붕괴 없이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잠재적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교과서의 구절들을 보자.

“통일을 추진하는 기본 철학은 자유와 민주를 핵심으로 한 인간 중심의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면서 민족 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갈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두고 있다.”(중2 도덕 265p ),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국토분단에 의해 형성된 2개의 체제를 하나의 민주적 체제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통일국가의 상태는 한반도에 하나의 주권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주권이 하나여야 하고, 국내에서 최고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부도 하나여야 한다. 곧 통일은 단일주권국가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윤리 257p) “북한의 이러한 계속된 적화 야욕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평화는 유지될 수 있을까?”(중2 도덕 225p),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우리의 통일정책과 크게 다르다. 첫째, 우리의 통일 정책 가운데 ‘남북연합’단계는 통일로 향하는 과도기인 반면, 북한의 ‘연방제’는 하나의 완전한 형태의 국가이다. 북한은 우리의 통일정책이 남북 분단을 영구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오히려 연방제를 완전한 국가로 보는 북한의 통일방안이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주장인 셈이다. 그 이유는 두 개의 제도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의 국가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상동 268~9p)

교과서에 나타난 북한관의 문제점은 ‘북한은 악, 남한은 선’이라는 독선적이고 이중적인 기준에 의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형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선 상호관계에 의해 진행되어 어느 일방의 책임일 수 없는 남북관계의 긴장과 대립을 북한의 일방적인 책임으로 돌리는 진술들로 나타난다. 즉 남한은 평화와 통일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며 북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진술로 나타난다. 통일운동 역사를 보면 전혀 객관적이지 못하며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진술들이다.

“남북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체결된 1992년 ‘남북한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문’의 이행에도 성실한 자세를 보이지 않았으며,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에도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비방을 계속하고 있다.”(중2 도덕 224p) “1974년 3월 25일 북한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는 미명(美名) 아래 북한과 미국 양자회담 개최를 주장하면서 대화의 상대를 남한이 아닌 미국으로 바꾸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공산화혁명을 위한 전략전술의 일환에서 나온 것이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1976. 8)은 그러한 속셈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고 윤리 263p)

다음으로 독선적이고 이중적인 기준에 의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진술은 북한 체제와 제도에 대한 기술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주택은 국가 소유로, 주민들의 신분과 직위에 따라 등급을 정하여 임대 형식으로 배정된다. 북한의 주택난은 아주 심하기 때문에 도시 지역에서 신혼 부부는 주택을 배정받지 못해 1~2년씩 별거하기도 한다.”(중2 도덕 241p) “북한은 1947년부터 노동자, 사무원, 및 그 부양가족에 대하여 무상치료제를 실시해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모든 근로자들은 기본 임금의 1%를 매월 ‘사회보장비’ 명목으로 공제당하고 있으며, 각종 공과금에도 치료비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241p) “일반대중들은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하여 뇌물을 일상적으로 주고 있으며, 그나마 진료가 매우 형식적이다.”(242p)

“그들은 오랜 집단 생활로 인해 인간의 보편적인 성격마저도 개조되어 자유와 평등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제되고 억압된 사회에서 복종과 노예적인 삶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에게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뿐만 아니라 인류애라는 측면에서도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중3 도덕 244p) “북한의 정치 지도층은 우리의 전통적인 이념이나 사상과는 전혀 다른 체제를 유지하면서 인권을 짓밟고 있다. 그리고 비효율적인 경제체제를 운용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욕구도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은 우리 민족 전체의 번영을 위한 것이므로, 북한 주민들을 이와 같은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하겠다.”(고 윤리 284p)

일부 구절만 예로 들었다. 어디를 보아도 북한에 대한 긍정적 언급은 없다. 복지제도 등 긍정적 측면조차 지엽적인 측면을 확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시키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적 시각에서 북한의 모든 현상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더구나 남한에서도 흔한 현상을 북한 체제를 부정하기 위한 비판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 상식과 달리 교과서에서 북한 사회를 다루는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중2 도덕의 소단원 ‘북한의 현실’, 중1 사회 소단원 ‘북부지방의 생활’, 고 교련 소단원 내 ‘북한의 실상’, 초중고 국어 소단원 각 하나(남북의 언어 차이)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빈약한 북한 사회에 대한 내용조차 부정적 이미지 일변도라는 것은 남북 화해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화해는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 그리고 상호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런 면에서 남북화해시대에, 북한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교과서는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북한 체제를 부정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이 남북 체제 공존 속의 협의통일론으로 바뀌어야 하며, 남측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된 북한에 대한 기술은 북한의 긍정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비판 또한 객관적인 남북 상호 비교에 의한 합리적인 비판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 없이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장원 영신고등학교 교사, 전교조 통일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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