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0월 2000-10-01   1335

화장에 대하여

“왜 립스틱 색깔이 전부 똑같아요? 이상하네.”

작년 겨울인가 외국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이 서울 도심을 둘러보며 재미있다는 얼굴로 물어온 말이었다. 그녀는 사람들마다 목에 두르고 있는 버버리 머플러와 여자들의 천편일률적인 검붉은 입술에 신기해했다. 아마 그때 어느 화장품 회사에선가 내놓은 검붉은 립스틱이 유행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어떤 인기 탤런트가 그런 입술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여성들은 쉽게 구별이 된다고 한다. 화장법과 머리 스타일 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화장과 외양 꾸미기에서 개성은 없고, 유행만이 존재한 결과일 것이다.

한국여성의 화장에서 유행추종과 함께 두드러지는 특징은 화장에 대한 강박증이다. 누가 무슨 근거로 한 말인지는 몰라도 ‘화장하지 않은 여자는 예의가 없는 여자’라는 가르침 때문일까, 갈수록 기세를 떨치고 있는 ‘예쁜 여자 콤플렉스’ 때문일까, 서울거리에서 화장하지 않은 여성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여대생들이 외국 여대생들에 비해 화장을 많이 하고 짙게 한다는 것도 자주 지적되는 사실이다.

몇 달 전 엄마가 한 종합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자주 들락거렸는데 간호사들의 화장이 보통 짙은 게 아니었다. 곧 숨 넘어갈 것 같은 환자들 옆에서 짙은 아이라인에 새빨간 입술을 한 채 버들가지 같은 몸매로 오가는 그녀들은 별로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왜 그렇게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위생적으로도 좋을 게 없어 보였을 뿐 아니라 위독한 상황에 있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도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5년 전 잠시 독일에 있었을 때 만났던 독일 간호사들의 얼굴에는 거의 화장기가 없었고, 몸매도 환자 몸을 뜻대로 다룰 수 있을 만큼 튼튼해 보였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쁜 간호사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간호사다.

그렇다고 내가 화장을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유행의 노예가 되거나 예쁜 여자 콤플렉스에 강박돼 있지 않는 한 화장은 자기표현의 수단일 수도, 자기만족의 유희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색과 향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드러내는 일은 삶의 기쁨 중의 하나이므로 나는 그런 기쁨을 박탈당한 남자들을 때로 안됐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든 남자든 화장이 진정 기쁨이 될 수 있으려면 그것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아는 50대 초반의 한 여교수는 결코 화장을 하는 법이 없다. 화장에 들이는 시간이 아깝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인 한 교수 부인은 마치 무대화장 같은 짙고 현란한 화장을 즐긴다. 그 화장을 통해 내면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교수 부인에게 요구되는 규격화된 정숙함에 반기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30대의 한 직장여성은 변화가 심하다. 기분에 따라, 혹은 때와 장소에 따라 화장을 전혀 안 하기도 하고 놀랄 만큼 야한 화장을 하기도 한다. 화장을 하든 안 하든 이들 셋의 공통점은 화장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는 자신이 없어 대문 밖을 나서지 못하는 여자, 정숙치 못한 여자라는 비난이 두려워 내키는 대로 화장을 못 하는 여자, 오로지 유행만 좇는 여자,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화장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남자, 이런 사람들이 줄어들수록 화장은 여성을 성상품으로 만드는 수단이거나 얄팍한 유행의 차원을 넘어 문화의 수준으로 격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런 소리를 안 듣게 되겠지.

페미니스트라더니 역시 뻔뻔하구먼.(화장 안 했을 때)

페미니스트도 별수없네.(화장했을 때)

김신명숙 『이프』편집위원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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