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2월 2000-12-01   1081

홍콩은 지금 공민혁명 중

돈 버는 데에만 관심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홍콩 사람들이 시민불복종운동을 시작했다. 홍콩의 학생운동단체와 일부 민간단체들은 공안악법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들은 이 활동을 ‘공민혁명’이라 부르고 있다. 그들의 생생한 투쟁현장으로 달려가 보자.

한국에서 흔히 간디의 운동은 ‘비폭력운동’이라 알려져 왔고, ‘비폭력’은 일종의 ‘도덕성’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왔다. 일본에서 ‘폭력적’ 운동에 참가한 바 있는 어느 일본인 친구는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간디의 운동이 ‘비폭력’이라는 말은, 번역에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결부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에요. 그 말의 영어는 ‘disobedien-ce’, 즉 ‘불복종’이지 ‘비폭력’과는 상관이 없어요.” 사실 간디가 주장했던 것은, 상대방이 폭력으로 누를 때 우리가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면 똑같이 폭력을 써서 맞서게 되며, 그러면 우린 결국 상대방과 똑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 자체를 이겨내고 상대방이 어떠한 억압을 가하더라도 ‘불복종’으로 맞서자는 것이었지, 여기서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하는 대립구도 자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공안악법 철폐하라!

흔히 사회문제에는 안중에 없고, 돈 버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홍콩사회에서는 지금 놀랍게도 ‘시민불복종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이 운동의 시작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호인 ‘공안악법 철폐’ 운동이다. 홍콩의 중국반환 직전 정해진 ‘공안법례(公安法例)’에 따르면, 시위나 집회활동을 할 때에 최소한 7일 전 경찰측에 신청해서 ‘반대하지 않는다는 통지서’를 받아야만 비로소 합법시위·집회가 된다.

홍콩의 학생운동단체와 일부 민간단체들은 최근 이러한 공안법의 규정에 불복종해 집회·시위의 사전 신청을 거부해 왔다. 이는 그동안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최근 홍콩에서 가장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문제(홍콩인이 중국 본토에서 낳은 자녀들의 ‘홍콩인’ 자격 문제)와 관련한 시위 참가자들을 경찰측이 뒤늦게 잡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이는 분명히 특정 문제를 겨냥한 것이요, 동시에 사회운동을 억압하려는 정부의 시도라며, 공안법에 불복종하는 시민혁명(‘공민혁명’- 우리가 쓰는 ‘시민’이라는 말을 중국어에서는 ‘공민(公民)’으로 쓴다)을 광범하게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공민혁명은 자기희생 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법률상의 책임을 받아들이며, 법률 위반에 따른 모든 대가(감옥에 가거나 죽는 것도 포함하여)를 치른다. 이처럼 자기 몸의 희생을 통해 법률·정책의 불공정과 불합리성을 드러내어 사회의 도덕적인 공감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이러한 법률이나 정책이 더 이상 집행되지 않도록 하는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운동권의 배후에 검은 손이 있다?

이러한 ‘시민불복종운동’은 홍콩에서 과연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홍콩의 운동 기반은 안타깝게도 매우 취약하다. 최근 홍콩의 가장 전통 있는 명문대학인 홍콩대학의 총장이 대학 내 연구소에 “행정장관에 대한 시민 지지도 조사를 행정장관이 좋아하지 않으니 중지하라”고 압력을 넣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문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 크게 일어난 바 있다. 이때 홍콩대학의 학생회는 교장에게 당장 물러날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대해 모든 언론에서는 “홍콩에 중국 문화혁명시기의 홍위병이 출현하고 있다”며 이 ‘위험한’ 학생들을 비판했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맹목적인 총장 몰아내기’로 매도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모두 현재의 정부를(그리고 중국정부를) 전복하려는 ‘검은 손’의 조종을 받는다는 주장도 공공연히 제기되었다. 이는 ‘운동권의 배후에 검은 손이 있다’는 논리로 운동세력에 찬물을 끼얹었던 1991년 한국의 보수진영을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처럼 홍콩사회에서 ‘진보’냐 ‘보수’냐의 판단기준은, 사회의 전망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친중국정부’냐 아니냐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그 기반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홍콩에서 유명한 소위 ‘민주파’ 정치인들(극히 소수인)은 기본적으로 영국통치시절에 대한 향수를 근거로 한다. 그들은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에는 홍콩이 그래도 민주적이었으며, 민주화 퇴보의 주요 원인은 중국으로의 반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홍콩에서는 중국정부를 비웃는 것이 곧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인 양 여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극히 회의적인 어느 홍콩친구는 내게, 홍콩에는 ‘진정한 민주파’는 없다고 단언한다.

불공정한 법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이처럼 운동 기반이 취약한 홍콩은, 한국 시민운동진영의 문제로 지적된 바 있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홍콩에서 가장 선두적인 인권운동단체라 할 수 있는 ‘홍콩인권감찰’은 홍콩의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매년 인권보고서를 작성해 유엔인권위원회에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 단체는 철저하게 홍콩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 외국인 변호사·교수 등의 엘리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보통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는 전혀 없다. 필자는 그 단체에서 몇개월간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과연 이들이 홍콩 하층민의 생활과 고민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서 홍콩의 또 다른 대표적 운동단체인 ‘홍콩사구조직협회’는 훨씬 더 홍콩인들의 생활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20여 년간 홍콩 하층민들의 열악한 거주문제 등에 대해 앞장서서 발언해 온 유명한 운동가가 이끄는 이 단체는, 중국에서 온 신이민 문제와 노인문제 등 아주 실제적인 문제들에 천착하는 반면, 홍콩의 전반적인 시민운동의 발전방향 등을 제시하는 데에는 소극적이다.

물론 최근 홍콩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시위·집회 등을 통해 드러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지만, 사실 이는 자기 이익과 아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것일 뿐, 이를 일반적인 사회문제나 시민운동과 연관·발전시키는 기회나 프로그램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현재의 ‘공민혁명’ 운동은 단지 ‘집회·시위의 자유’에 국한돼 논의되는 것이어서, 그것이 얼마나 시민들에게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광범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또 ‘시민불복종운동’이라는 관념을 얼마나 널리 제기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공안악법 철폐’ 시위에서 학생들이 맞춰 입은 티셔츠에 새겨져 있는 간디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불공정한 법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시민 불복종은 시민의 천부권이다.”

장정아 본지 홍콩통신원 서울대 인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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