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1155

화가 임옥상의 새로운 문화개입 문화연대운동

이제 문화로 사회를 바꾸겠다

NEWS PAPER. 똥을 닦고, 깔고 싸고, 잎담배를 말아 피우고, 불쏘시개로 쓰고….

민중에게 용도는 고작 그뿐인데, 그 권력은 실로 막강하구나! 1980년 서양화가 임옥상은 작품 ‘NEWSPAPER’에서 신문권력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로부터 19년 후 평창동 작업실에서도 그는 ‘같잖은’ 신문에 대해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가차없이 재단한다. 옆에 있다보니 우연히 그의 전화내용을 엿듣게 됐다. “아, 그래요? 난 조선일보 안 봐요.” 이른바 진보적 문학인들이 조선일보 필진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정보에 그는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내뱉는 것이었다.

“괜히 보고 인상쓰고 싶지 않아요. 작년 이맘때 ‘조선일보 다시 태어나기’ 한다면서 조선일보 비판하라 대요. 진짜 해도 되냐 했더니 진짜 하라고 그러더라구. 나중에 보니까 중요한 건 다 뺐어. ‘국민의 이름으로 경고한다’ 그런 얘기 막 썼더니 다 뺐더라구요. 그리고 최장집사건 이후 조선일보를 보니까…, 그들이 변해요?”‘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말이 숨어 있었다. 그는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기득권을 쥐고 놓지 않는 모든 것들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휘두른다. 정의·평등·인간애의 가치에서 삐딱선을 탄 것들과의 타협은 없다.

변화한 시대의 새로운 문화운동

80년대 민중미술을 주도했던 화가 임옥상은 최근 재미난 운동을 구상중이다. 문화개입 문화연대가 그것. 일단 ‘문화개입’이라는 말이 청량감을 준다. 그 속뜻에 대해 그는 문화를 매개로 전 사회 모든 분야에 개입해서 잘못된 것들을 하나하나 고쳐가겠다는 발상이라고 소개했다.

“정치개혁 경제개혁 사회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생활과 밀접한 문화개혁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지요. 시대는 문화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 문화운동이 답보상태에 있다보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거침없이 얘기했다. 시대가 변한만큼 운동도 변해야 하는데 지금의 문화운동은 현실에 대한 분석과 판단에서 그리 명민하지 못한 것 같다고. 그래서 그는 여러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문화개입 문화연대’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게 됐단다. 80년대에 결성된 미술운동단체들이 이렇다할 활동없이 잠잠한 때 그가 펼치는 이런 시도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85년에 설립된 민미협(민중미술운동협의회)이 지금 침체돼 있는 것은 문화예술인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은 대중책임도 있는 거예요.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되는 건데…. 물론 지금은 문화예술인이 새로운 움직임을 준비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새로운 문화운동을 펼칠 요량으로 모든 사회문제에 문화적으로 개입해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문제제기뿐 아니라 대안제시까지도. 전문가끼리가 아니라 대중과 함께 사이버 공간에서.” 포부가 대단했다.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해 무한정 회원을 확대하고 사이버공간에서 회원들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생각이다. 또 그동안엔 대중을 단순히 수용자의 입장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생산할 수 있는 주체로서 그들을 운동 속으로 깊이 끌어들일 거라고 했다. 이런 ‘문화개입 문화연대’에 참여하는 면면은 이렇다. 조태병 한성대 디자인과 교수, 서동화 신구대학 교수, 이중재 멀티미디어예술가, 박찬국 M조형 대표, 이명복 MBC 보도국 컴퓨터그래픽 전문가, 백지숙 문화평론가, 윤자정 동의대 교수, 손철주 국민일보 문화부장, 김준기 가나아트 기자 등. 지금까지는 20명 정도가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30여 명으로 확대하고 일반회원도 가급적 많이 늘릴 생각이다. 회비는 연 1만∼3만 원. 회원이 되면 그림 한 점을 공짜로 준다.

먹고 싸고, 생산하지 않는 우울한 대중문화

그가 20세기 끝자락에서 이런 센세이셔널한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단 그는 한국문화 풍토의 열악함을 토로한다.

“난 형편없는 그림 놓고 자본의 논리로 재단해서 얼마얼마 하는 걸 보고, 이건 끝없는 소모전이라고 규정했어요. 내 자신 스스로가 쓰레기로 전락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우리 대중문화라는 게 먹고 싸는 문화지, 생산하는 문화가 없잖아요? 저는 이런 점에 착안해 ‘문화개입 문화연대’를 시작했어요. 아주 재미있는 운동이 될 거예요. 기대해도 좋습니다.”국어도 잘 모르는 미술평론가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쓰고 미술평론이라 지껄이는 것에 대해 앞으로 ‘문화개입 문화연대’는 이렇게 비판한다. “아무개가 모월 모일에 쓴 글 100개의 문장 중에 모모모는 말도 안 되고, 몇개는 읽을 만하다.” 구체적으로 실명을 거론하며 문제를 들출 작정이다. 사회적 검증과정없이 누구나 간판걸면 미술평론가 되는 그런 구태를 없애는 게 목표이기도 하다.

‘문화개입 문화연대’ 활동의 면모를 조금 더 살펴보자. 하나의 도시를 선택해 간판정리사업을 한다. 그 이유는? “간판도 법이 있는 법인데, 가끔 상가를 쳐다보면 가관이에요. 그런 걸 정리해 준다는 거죠. 물론 이것은 지자체에서 프로젝트를 따야 하는 것이겠지만.” 하나의 도시를 상징적으로 바꿔놓으면 다른 시·도도 본받아 깨끗한 도시만들기가 현실화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런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도 한몫할 계획이다. 이른바 국회 딴지걸기.

“국회를 오페라하우스 혹은 현대미술관으로” 권위주의적인 국회를 서울시민의 문화공간으로 만들자. 국회 그 넓은 공간을 싸움질이나 하는 의원들만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정작 세금내고 옳은 소리 한번 못하는 시민들이 이용하자는 것이다. 공간이 너무 커서 의장과 의원이 멀리 떨어져 있고, 자유롭고 진지한 대화보다는 멱살과 주먹다짐하기가 훨씬 용이한 국회를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한 공간으로 바꿔주고, 나머지 의원들에게는 불필요한 공간을 시민들에게 달라는 거다. ‘왜, 그러면 안 되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는 삶이 아름답다

화가 임옥상은 이처럼 사회·정치·역사·교육·재벌·소외계층·교통 등 다양한 우리 사회 주제들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접근할 생각이란다. 그 계획 중 첫포문은 ‘갯벌살리기 운동’으로 연다.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환경운동단체와 함께 연대운동으로 펼치게 되는 이 운동은 독일 갯벌국립공원에서 아이디어를 따 왔다. “독일 국경지역에 있는 갯벌에 둑을 막아 공업단지를 만들려 했다가 포기하고 30년을 방치했더니 천연자연생태계가 생겼다더군요. 우리도 갯벌이 죽어가고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볼 때 한번 해볼만한 운동이라고 생각했어요.”이 운동 연대방식 또한 다양하다. 그의 말을 빌면 ‘서로 다른 코드’로 갯벌을 살린다는 것. 생태학적 환경접근은 환경단체에서, 문화적 대중적 접근은 ‘문화개입 문화연대’가, 각종 법률문제 등 행정적 지원은 참여연대가 맡게 될 것이라고. 임옥상 씨는 이번 ‘갯벌운동’을 시금석으로 서로 다른 NGO간의 네트워크가 생성될 거라고 조망했다.

그는 앞으로 세계적으로는 인종문제, 국내적으로는 인간성 회복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할 계획이란다. 가나아트센터 건너편 조각상이 서 있는 붉은벽돌건물 1층. FM음악이 흘러나오는 넓은 작업실에서 그는 한지에 붓펜으로 쓴 작업일지를 보여줬다. 일기이기도 하고 작품계획서이기도 한 공책에는 유려한 그의 글과 그림이 빽빽히 들어 차 있었다.

“대작을 준비중인데…, 사람얼굴을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어 놓고 나열된 그것이 또 사람얼굴을 만드는 거예요. 객체의 군중이 모여 하나의 전체 인간상이 나오게 하는 거죠. 또, 인종문제로 접근해서 같은 방식으로 흑인의 얼굴과 백인의 얼굴이 서로 대치되게 그려보고….”그는 공책을 넘겨가며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계획 그 자체로도 신바람이 나는 모양이다. 그가 올해 중점적으로 할 작업은 오늘의 노동자상을 그리는 것. “직접 공단에서 500명의 노동자를 사진으로 찍어 벽을 뒤덮는 강고한 노동자상, 그런 걸 그려볼 거예요.”역시 임옥상은 대작을 생산하는 우리 시대 큰 인물이었다. 그가 내놓을 작품이 기다려진다. 올 10월 <흙의 현실, 땅의 현실>이라는 작품전시를 준비중이라는데 어서 빨리 낙옆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심한가?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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