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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1998년 11월
  • 1998.11.01
  • 1292
병원은 무슨 병원, 아프면 죽는게지
하동읍에서 진주시 방향으로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30여 분 달렸을까 방화마을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을 힘겹게 지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바쁜 가을걷이가 한창인 요즘, 방화보건진료소를 찾았다. 지금은 팻말을 내려 평범한 가정집과 다름없이 변해버린 방화보건진료소. 그러나 방화보건진료소는 14여 년 동안 방화리, 사평리 등 2개 리 5개 부락 800여 주민의 사랑방이었다. 그런 방화보건진료소가 팻말을 내리고 문을 닫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방화보건진료소는 다른 보건진료소와 같이 84년 문을 열었다. 84년 농촌의 복지 향상을 위한 『농촌특별조치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 방화마을은 진주시와 하동군을 사이에 둔 사각지대로 교통이 좋지 못한 곳에 위치해 있다. 병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주눅이 들고 어렵기만한 마음은 제쳐두고라도 방화마을 주민들이 병원에 한 번 가려면 하루 4번 밖에 안 다니는 버스를 타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 때문에 마을 주민들에게 보건진료소는 적지 않은 위안이 되어 주었던 곳이다. 그런데 지난 9월 초, 방화보건진료소가 문을 닫고 말았다. 공무원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이용률이 낮다'는 이유가 그것. 연내에 10%의 공무원을 감축해야 했던 지방자치단체가 10%의 군살빼기 1순위로 별정직에 속했던 산간오지의 보건진료소에 칼을 댄 것이다. 이에 따라 방화보건진료소 뿐아니라 전국 2,080여 개 보건진료소 중 162개의 보건진료소가 9월 10일 문을 닫았고, 앞으로도 그 수는 늘어날 전망이다.

구조조정의 피해자는 산간오지 주민들

보건진료소는 한 사람의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면서 운영을 한다. 이들은 대부분 15년 이상씩 근무를 한 사람들로 대상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거의 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주민들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24시간 상주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바쁜 농사철에는 저녁 늦게나 새벽에도 진료를 해 왔다. 이런 농촌보건진료소는 농기계로 인한 크고 작은 외상에서부터 신경통, 관절염, 당뇨 등 퇴행성 만성질환의 환자관리까지, 때로는 엄마 없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자식을 멀리 도시로 내보낸 노인들의 위안처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농촌 지역의 유일한 복지혜택에 다름아니었다.

또 의료보험카드만 있으면 1,000원 안팎의 싼 진료비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어려운 농민들의 가계살림에도 적잖은 보탬이 되기도 했다. 특히 농촌은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응급처치가 가능했다. 그래서 이 지역 노인들은 “보건진료소 불빛만 봐도 든든하다"고 보건진료소 폐쇄조치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런 보건진료소의 운영에 예산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별정직 공무원 1인의 임금이 전부.

보건진료소 운영비는 의료보험조합에서 2/3, 그리고 치료를 받는 환자 자신이 1/3 책임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보건진료소에 칼을 댄 점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김창엽 교수는 “공무원 구조조정이 지방자치단체 내에서 주민들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각 부서가 면밀히 검토했다기 보다는 ‘힘없는 부서'가 밀려나는 식의 조직 개편이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있을 2차 지방조직 개편에서는 주민들의 필요를 중심으로 진정 불필요한 기능은 잘라내고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조정할 수 있는 철학이 정립되어야 하겠고, 또 중앙정부가 복지나 보건 측면에서 국민의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필요한 최소한의 지침을 마련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 주장한다.

하동군 성천보건진료소 소장 김영림 씨(37세)도 “사용회수가 낮다는 이유로, 그것도 별정직이라는 이유로 보건진료소를 없앴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특히 ‘복지' 부분에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대었다는 점은 주민의 복지를 위한 지역행정이라 했을 때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간과된 결정”이라고 말한다.

지역 주민들 역시 반대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이제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어. 병원은 무슨 병원. 이러다 아프면 죽는 거지." 몇 번의 탄원서를 군청에 제출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게 되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내뱉는 이곳 주민들의 말이다.

“제발 좀 다시 복구되도록 해 주이소." 누구보다 보건진료소가 각별하게 생각되는 정금수 할머니(64세)의 간곡한 부탁이다. 3∼4년 전 당뇨합병증으로 도저히 가망없을 것 같던 할머니가 이제는 농사일도 거뜬히 해내게 된 데는 보건진료소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눈도 가고, 귀도 가고 형편이 없었어. 기운이 없어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는데 이렇게 좋아졌어." 그에게 운동노트를 만들어 매일 5시 보건진료소를 찾게 하고 당뇨체크를 하게 한 보건진료소 덕분에 할머니의 병세는 호전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는데 그냥 방치되고 있어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방화보건진료소장이 특히 헌신적이었다기 보다는 보건소 자체가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의 경우 50명 이상만 되어도 양호실을 의무적으로 만들게 되어 있는데 500명 이상이 되는 주민들에게 보건진료소는 과분한 게 절대 아닙니다." 현재 각 500여 명의 주민을 포괄하고 있는 보건진료소를 없애버린 것은 옳지 않다는 김영림 씨의 주장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복지에 투자해야

이제 방화마을과 같이 복지혜택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 산간오지의 주민들. 비록 힘없고 빽없는 그들이지만 세금을 내고 있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복지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음에도, 단 하나밖에 없는 의료혜택을 빼앗아가는 정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면 단위 보건지소를 더욱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서비스를 확충시켜나갈 계획"이라 말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적지 않다.

르완다나 소말리아, 인도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이들 나라에 IMF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실시된 이후 행해졌던 긴축재정과 의료, 교육 등 복지단체에 대한 투자감소로 사회복지단체가 대거 민영화되었거나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야기되었던 혼란과 재앙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공무원에 대한 구조조정과 의료단체에 대한 민영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대부분 약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 보건진료소 등 사회의료시설이 통폐합되고 민영화되었을 때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에서 한국갤럽에 의뢰, 전국 성인남녀 1,536명을 대상으로 「보건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10명 중 9명인 89.7%가 ‘경제수준에 비해 사회보장 수준이 낮다'고 응답했고 6명 이상인 62.6%가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복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응답했다. 굳이 설문조사 결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정부가 IMF구조조정 계획 속에 최후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국민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조라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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