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1월 1998-11-01   1603

통계로 본 IMF 1년

통계로 본 IMF 1년

"고속성장은 끝났다. 저성장, 저소비에 대비하라!"

지난 12월 3일 IMF 구제금융 조인서에 서명한 지 1년이 지나고 있다.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사태를 맞았던 우리는 그야말로 카오스의 상태로 빠져 들었다. 금모으기를 시작으로 애국을 호소하던 각계 인사들은 근검절약으로 IMF극복을 주장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국하는 심정으로 소비하라’는 등 시민들에게 비일관적인 생활패턴의 변화를 강요했다. 정부가 이렇게 갈팡질팡 하던 사이, 많은 시민들 사이에는 불안, 공포, 허무, 자살 증후군이 망령처럼 떠돌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저소득층은 예전보다 확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IMF 1년이 속절없이 지나고 있다. 통계를 중심으로 IMF 1년 이후 변화된 한국 사회를 조망해보자.

빈익빈 부익부 심화현상

97년 조세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60% 안팎에 달했다. 그러나 IMF 이후 제일기획 조사에 의하면 중하류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22%에서 33%로 늘고, 상류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13%에서 7%로 줄었다. 또,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시 주부를 대상으로 펼친 조사에 의하면 IMF사태 이후 평균 수입감소율은 무려 32%나 차지한다. 더군다나 월평균 가구소득 100만 원 이하인 저소득층에서 수입이 감소한 경우는 89.3%로 높게 나타났으며, 300만 원 이상 고소득층의 경우는 58.9%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또 100만 원 이하 저소득층의 수입감소율은 45.9%인데 반해 300만 원 이상 고소득층의 경우는 24.9%에 지나지 않아 IMF사태는 저소득층에 더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가 또 나왔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거주하는 자활보호 이상의 저소득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IMF사태 이후 서울시 저소득가구의 생활실태 변화 및 복지욕구 파악’이 그것. 일대일 면접조사를 통해 IMF 이전과 이후를 구분, 변화한 생활상을 조사했다.

가구주의 취업률은(표1 참조) IMF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때 평균 77.8%에서 65.7%로 12.1% 감소했다. 취업을 하고 있는 경우도 주당 근로시간 18시간 미만의 불안전 고용상태에 처해 있는 경우가 5.3%에서 11.9%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평균 근로시간(표2 참조)은 주당 55.6시간에서 49.5시간으로 감소했다. 단순 일용직 종사자들이 많은 저소득층의 근로시간 격감은 일감부족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으며, 그에 따른 소득감소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

특히 미취업 가구주 중 월평균 소득 50만 원 이하의 극빈층 가구주가 56.8%를 차지했으며, 이들은 생활보호대상을 희망(52.8%)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저소득층의 가구당 월평균 수입은 작년 11월 122.5만 원에서 금년 5월 현재 86.9만 원으로 IMF 이전의 약 71% 수준으로 감소했고, 지출 역시 월평균 72만 원으로 약 87.5%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수입이 감소함에 따라 부채를 지거나 저축을 해약하는 가구가 증가(부채가구 : 32.7%, 적금이나 보험해약가구 : 53.2%)하고 있다. 이들은 또 가계와 관련, 가장 어려운 점을 물가상승(34.5%)과 수입감소(32.3%)로 꼽았으며 이로 인한 가정불화가 늘었다고 응답한 가구가 39.3%, 이로 인해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답변한 가구가 20.9%로 높게 나타났다.

강남 ‘이대로족’, 이대로 좋은가

반면 최근 강남에는 ‘이대로족’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건국이래 최대의 경제난국인 IMF체제가 ‘이대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담고 있다는 것. IMF체제 이후 환차익 등으로 느닷없이 많은 돈을 벌게 된 강남의 졸부들이 맥주와 양주의 비율을 똑같이 섞어 ‘이대로酒’까지 만들어 마시며 만들어낸 신조어다. 이처럼 IMF 1년은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계층별 소득분배의 차이를 심화시켰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정부도 사실상 한몫을 했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

지난해 12월 31일 공포, 시행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정부는 금융소득이 4,000만 원 이상인 자에게 최고 40%까지 세금을 물리던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유보하고, 금융소득에 대한 분리과세 세율을 적용, 16.5%에서 22%(주민세 포함)로 올렸다. 이는 금융소득에 대한 누진적용없이 균일하게 22%가 적용돼,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에게 유리한 조치가 내려진 셈이다. 사실상 이 때문에 고소득자들의 세 부담은 크게 줄었다. 이뿐아니라 비실명 장기채권을 발행해 증여세, 상속세 회피수단의 길을 사실상 터줬다. 또 현재 정부와 지자체 및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빚은 대략 194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로 인해 1인당 국가부채가 400만 원 꼴이 되고, 앞으로 금융기관과 기업구조조정 및 외환위기 해결을 위한 국가채무 증가액이 200여 조 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2000년대초 1인당 국가채무부담액은 800만 원선으로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국가가 빚더미에 앉아 국민 제각기 빚을 한 짐씩 지고 있는데 부자는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됐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이와 같은 불균등 조건은 기업간에도 나타난다. 96년말 52조 5,144억 원이던 30대 재벌그룹 대출금이 지난해 9월말 62조 1,087억 원으로 10조 원 가까이 늘었고, 98년 6월말 현재는 74조 6,448억 원으로 다시 8,000여 억 원이 늘었다. 이처럼 96년말∼97년말 사이 30대 재벌의 대출금이 21조 3,000여억 원이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금은 88조 2,536억 원에서 95조 8,267억 원으로 7조 5,731억 원이 늘어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결국 이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국가경제의 총체적 위기를 맞아 주로 ‘재벌 살리기’에 역점을 뒀던 것을 반증해준다.

실제 지난 4월 3일자 『중앙일보』는,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돌지 않아 재무구조가 괜찮은 우량 중소기업들이 무더기 도산하는 사태가 빚어졌다고 밝혔다. IMF체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이후부터 지난 3월까지 부도를 낸 34개 상장사(금융기관 제외)중 2/3가 넘는 23개사가 장부상 이익을 냈음에도 일시적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것.

이는 결국 30대 재벌은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등으로 은행의 신용을 독점, 자금을 대출할 수 있었지만, 중소기업은 은행이 요구하는 담보설정 등의 신용대출이 안되고, 또 은행이 대출금에 대한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거나 어음부도로 인한 흑자도산에 처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재벌 위주 경제체제로 인한 피해가 건실하게 운영되던 중소기업에게로 전이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처럼 IMF 1년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불렀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재벌개혁은 온데 간데 없고, 벼랑 끝에 몰린 중소기업은 무너지고 있다. 이런 사회현상에 대해 성공회대 사회학과 김동춘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의 양극화, 고금리·종합소득과세의 유보·비실명 장기채·고물가·주택가격 폭락으로 인한 소득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계약제와 연봉제가 확대되면서 봉급생활자와 임금근로자의 삶이 고용불안정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인해 피폐화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또 이런 사회적 양극화 현상은 계급간 차별화로 이어져 폭력과 범죄의 증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미 고실업사회로 들어선 우리는 실업자의 재취업, 종합적 사회안전망의 획득 등 삶의 질을 중심으로 한 한국사회 재편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올 연말까지 서울지역 노숙자 수가 3,300여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사회적 대책마련을 위해 부심해야 한다. 아마도 IMF 1년은 우리에게 다가올 21세기를 긴 호흡으로 여럿이 함께 가기를 권고하고 있는 듯하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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