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0월 1998-10-01   856

풀리지 않는 화두

풀리지 않는 화두

경기도 의왕시 내손2동에 온 지도 벌써 13년이 넘었다. 이 지역에 살면서 지난 91년 나는 ‘모락산 환경보존 및 지역발전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이 모임을 통해 여러 지역운동을 벌이며 시민의 작은 권리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95년 경기도 의왕시에서는 의왕시민의 의견도 묻지 않고 「'97 의왕 세계연극제」를 그린벨트 지역에 사업비 640억여 원을 들여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95년 12월 30일에 이에 대한 기본 및 실시 설계서를 계약한 바 있다. 그러나 96년 6월 21일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가 개정 불가 처분을 결정함에 따라 의왕시는 세계연극제를 취소하게 됐으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게 되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엄연히 시의 예산 낭비다. 따라서 우리 단체는 97년 7월 세계연극제 사업에 대해 회계책임관계직원의 책임에 관한 법률 제4조 “회계 관계직원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법령, 기타 관계규정 및 예산에 정하여진 바에 위반하여 국가 또는 단체 등에 재산에 대하여 손해를 끼친 때에는 변상의 책임이 있다”는 조항을 위반하고, 시민의 재산 5억 6천만 원 상당을 낭비한 의왕시를 대상으로 감사원의 감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경기도 감사 2회, 감사원 감사 2회에 따른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감사원은 회계책임관계직원의 책임에 관한 법률 운용기준(감사원 예규 제115호) 제5조 [손해로 보지 않는 경우] 중 각 호의 1항을 빌려 의왕시에서 사용한 예산에 대해 이는 손해가 아닌 ‘예산의 낭비’에 해당되므로 변상시킬 수 없다는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러나 시민의 의견도 묻지 않고 시민이 납부한 소중한 세금, 시 예산을 15억 원이나 ‘낭비’한 것이 결국 ‘예산의 손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감사원에서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하자 조항에 대해 우리가 좀더 알아보려 하자, 90일 간이나 공개하지 않으려고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 더욱 의구심만 자아내었다. 결국 우리 단체는 이러한 감사결과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법령 위반하여 국민 또는 시민의 재산을 낭비한 것은 손해가 아니다’라는 이 모순된 사항에 대하여 행정소송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결에서 나는 또다시 어이없게도 “모든 소송은 법률적 이익이 있는 당사자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므로 원고는 당사자 부적격"이라는 이유로 각하되어버렸다. 나는 의왕시의 시민이고 시민은 납세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권리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납세의 의무를 다한 시민으로서 의왕시의 예산 낭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비단 의왕시의 경우를 보지 않더라도 지방자치는 책임행정구현의 귀결이다. 따라서 주민의 혈세를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낭비한 사안에 대하여 변상의 책임을 물지 않는 것은 지방자치의 책임행정에 어긋남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러한 사안이 누적되는 것은 또 다른 국가부도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왕시에서처럼 엉뚱하게 시 예산을 낭비한 경우 지역주민의 힘으로 이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회계관계직원의 책임에 관한 법률의 운용기준」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그래서 독단적인 시의 예산 낭비를 막고 시민의 세금을 함부로 남용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 이것부터가 진정한 시민의 권리찾기가 아닌가 싶다. 이 화두를 가지고 나는 계속해서 예산감시운동을 벌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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