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0월 1998-10-01   878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 시민입법운동

집 나간 부패방지법을 찾습니다

지난 8월 28일 정오 정부종합청사에서는 한 무리의 시위대가 항의집회를 열고 있었다. ‘박상천 법무장관의 고위공직자비리특별수사부 위헌 발언에 대한 항의집회’로 명명된 참여연대 주최의 이날 집회 보도자료에는 박상천 법무장관이 야당 원내총무 시절 서명발의한 국민회의 특별검사제안이 별첨자료로 복사되어 있었다. 피켓 라인을 형성한 참여연대 회원들은 “야당 시절의 정치적 소신을 여당이 되더니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정부가 과연 국민의 정부냐?"고 통박했다. 사실 ‘특별검사제가 행정부의 고유권한을 침해함으로써 3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위헌 시비는 새삼스러운 쟁점도 아니다. 이미 법제처 공무원들이나 국민회의 당직자 스스로 미국의 예를 들어 그 합헌성을 입증했던 낡은 쟁점이다.

박 장관의 발언으로 논란이 된 문제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특별검사제도의 일종으로 96년 11월 참여연대가 여야 국회의원 과반수(국회의원 156명, 비국회의원 1명 : 당시 김대중 총재)의 서명을 받아 입법 청원한 부패방지법의 핵심내용이다. 참여연대가 고안한 부패방지법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내부고발자 보호, 돈세탁 금지, 뇌물죄 처벌 강화, 공직자 재산등록제도를 비롯한 공직자 윤리규정 강화 등을 핵심 골자로 하고 있다. 한편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회의는 한 달 뒤 참여연대 안을 거의 그대로 원용한 국민회의 부패방지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또한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사실 박상천 장관의 이런 ‘소신을 뒤집는 발언’이 아주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부패방지법에 대한 국민회의측의 발언 강도는 점점 약화되어왔다.

한나라당, 의원연서로 특검제 입법발의

대선 당시 10대 공약의 하나로 공표되었던 부패방지법은 대선 뒤 인수위의 100대 개혁과제에서는 슬그머니 누락되었다. 그 직후 참여연대―한겨레신문 공동주최로 열린 국가개혁과제 토론회에서 이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가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토론회에 나온 유재건 국민회의 부총재는 당의 의지는 변함이 없으나 다만 집권 초부터 부패방지법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네거티브(?)한 인상을 줄 우려가 있어 발표에서 빠진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4월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실행위원들이 국민회의 천정배 의원(그는 참여연대 법안의 대표추천의원이다) 면담을 요청할 당시만 해도 천 의원은 ‘총리인준도 안 된 어수선한 마당이니 여유를 갖고 당의 노력을 지켜봐 달라’는 주문을 했다. 그런데 9월 초 국민회의 소속 푸른정치모임 의원들과 함께 간담회를 하기 위해 참여연대 사무실을 방문한 천 의원의 어조에서는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그는 부패방지법 등 개혁작업이 너무 지체되고 있지 않으냐는 참여연대 임원들의 지적에 대해 “검찰을 비롯한 각 행정부처의 만만치 않은 저항에 비해 당의 개혁추진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 주목을 끌었다.

지난 6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연내에 제정하겠다고 선언해 부패방지법 제정이 가시권 안에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지시는 몇 주 뒤 김 대통령이 “부패방지법보다 포괄적인 기강확립법 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모호하게 물타기(?)된 채로 남아 있다. 부패방지법에 대해 국민회의 당내에서 발표된 가장 최근의 언급은 대통령의 8·15 제2건국 선언과는 별도로 발표된 국민회의 8·15선언에서 발견된다. 선언을 통해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은 내부고발자 보호를 포함한 부패방지법 제정 추진을 약속했다. 박상천 법무장관의 위헌발언은 그 직후 나온 것이다. 지금 국민회의 부패방지법안을 재정비하는 임무를 맡은 담당자는 추미애 의원으로 특별검사제 부분이 제외된 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의 당론변화는 국민회의와 대조된다. 부패방지법이 입법청원될 당시 신한국당 정책위의장 이상득 의원은 부패방지는 공직자윤리법의 보완으로도 충분하며 별도의 부패방지 종합입법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당론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특별검사제도 당론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번 당직개편 전까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이상희 의원은 지난 7월 국회 의원회관을 찾은 참여연대 소속 이은영 교수와의 면담에서 부패방지법 제정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서인지 참여연대에서 추진하는 부패방지법 제정 국회의원 서명에 한나라당 의원들의 참여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며칠 전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으로 특별검사제에 관한 한나라당안을 입법발의해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부패방지법 제정 위한 시민로비단 발족

여야가 뒤바뀐 각 당의 태도변화는 기득권 구조 내에서 부패에 대해 단호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내키지 않는 일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패방지법 제정이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구야당 후보의 10대 대선공약 중 하나라는 사실만으로는 기득권 구조와 정략적 이해관계의 벽을 넘어서기 힘듦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참여연대는 여야 정치세력과 관료집단의 정치적 흥정에 이 법안을 맡겨두지 않기 위해서 지난 7월 11일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시민로비단’을 발족해 입법운동을 하고 있다. 시민로비단이 지금 전개하고 있는 운동은 지난 96년 부패방지법 국회의원 서명에 뒤이은 2차 국회의원 서명운동. 약 70명의 로비단원이 7개 조로 나뉘어 미서명 국회의원들에게 전화 걸기, 편지 보내기 등을 펼쳐 의원서명을 촉구하고 있다. 그 결과 국회 개원일인 9월 10일까지 시민로비단이 확보한 서명 국회의원 수는 196명. 국회 재적의원의 2/3에 해당하는 수다. 시민로비단은 9월 말까지 230명선까지 추가서명을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토대로 미서명 국회의원들의 명단을 언론에 공개하여 유권자들의 압력행사를 유도하는 한편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모든 의원을 상대로 한 맨투맨 로비, 여야 총재와의 면담추진 및 관계부처 방문, 언론사 논설위원 간담회, 각계인사들의 촉구서한 및 서명을 조직하여 압력의 강도를 높여간다는 전략이다.

시민로비단의 목표는 부패방지법의 98년 본회의 통과다. 시민로비단이 받아낸 국회의원 서명용지의 수만 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그 서명용지는 얼마든지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시민로비단의 한 회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낙관합니다. 우리가 신뢰를 가지고 진지한 압력행사를 멈추지 않으면 비록 건성약속을 했던 의원들일지라도 유권자와의 약속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될 겁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시민감시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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