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0월 1998-10-01   576

언론개혁의 몇 가지 대안

언론개혁의 몇 가지 대안

언론개혁의 과제는 우리 사회에서 ‘다원적 언론문화’를 형성하고 언론영역이 사회의 ‘공론장'(公論場)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사회에서는 다양한 사상과 이념, 정보와 주장이 자유롭게 전달, 유통되는 과정을 전제로 사회의 여론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언론영역에서는 아직도 권위주의시대의 잔재인 획일적인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특별한 차별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신문, 정치적·경제적 권력에 편향된 보도, 사회의 여론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냄비 언론’ 체질 등이 우리나라 언론문화의 특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사회는 민주화해가는데 언론은 여전하니까 당연히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언론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따라서 우리 언론의 당면 과제는 다양한 입장과 특색을 지닌 매체들이 정보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고, 특히 민주사회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여론의 독과점’을 방지하는 일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금까지 언론을 장악해왔던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언론영역을 독립시키는 것이 우선이고, 아울러 언론시장의 정비를 통해 다양한 매체들이 질적 차별성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방송,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

언론이 제 역할을 하려면 그동안 언론을 장악·통제해왔던 세력으로부터 독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방송의 경우에는 정치권력의 통제가 제도적으로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다. 비록 공보처가 폐지됐지만,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제도적 개혁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요즈음 통합 방송법 제정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이다.

공보처가 없어진 이상, 그리고 방송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앞으로도 없어야 한다면 문제는 새로 구성될 통합 방송위원회의 구성, 위상과 권한에 관한 논의로 모일 수밖에 없다. 방송위원회는 현재와 같이 단순한 내용 심의에 머무르지 않고, 방송정책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모아내 방송이 사회적 책임을 갖도록 하는 실질적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같은 방송위원회의 위상 강화는 어느 정도 사회적 동의를 얻고 있지만, 여기에도 기득권 세력의 이해가 작용하여 변질될 우려가 있다. 방송위원회를 국가 행정기구의 하나로 해석해 예산을 통제하고, 공무원을 두는 등 관료기구화하려는 정부여당의 속셈이 그것이다. 또한 방송위원회를 단순한 민간규제기구로 인식하여 정책결정권을 배제하려는 한나라당의 주장 역시 잘못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방송위원회가 방송정책과 행정까지를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독립기관으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위원회의 구성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방송위원회는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의 공적 소유주)의 이사를 선임하고, 이들 KBS와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회가 양대 공영방송사의 사장을 선출하는데, 이 과정이 정권 핵심부에서 내정된 인물에 대한 ‘거수기’ 처리 과정이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실정이다. 사정이 그러할진대 공영방송이 정권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방송위원회는 방송 독립에 대한 의지가 있고 전문성과 책임성이 있는 인사로 구성되느냐의 여부가 관건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요즘 방송법 논의는 7 대 7이니 6 대 3이니 하며 정치세력간 지분 다툼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간의 배분, 국회내 여야 간의 배분 따위는 형식적 대표성을 반영할지언정 방송의 독립성을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문제는 방송위원회 임명절차의 투명성을 보장해 검증을 거치는 것이어야 하며 구성에서도 국민적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국회의 교섭단체 합의로 각계를 대표하는 추천인단을 구성하고 여기서 추천된 인사를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임명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신문, 소유구조 개혁이 관건

1987년 이후 신문은 정치권력의 직접적 통제는 후퇴한 것이 사실이다. 그 후 수많은 신문이 창간되고, 신문사 간의 무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오히려 자본의 지배력은 공고화되었다. 소위 ‘자사 이기주의’로 표현되는 신문 지면의 사유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상업주의, 선정주의, 무책임한 보도, 일방 편향적 논조가 판을 쳤다. 시장에서는 발행부수를 부풀리기 위해 판촉전쟁이 벌어지고 출혈을 무릅쓴 자원 낭비가 자행됐다. 지방에서는 소위 ‘사이비 언론’이 기승을 부렸다.

신문이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신문기업의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신문은 대부분 특정 가족이나 재벌이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소유 정도는 거의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언론기업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은 경영권·인사권을 장악하고 이를 통해 신문의 편집권까지 사유화한다. 언론이 단순한 장사가 아니라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한다면 이들 신문기업의 소유에 대해 일정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신문사의 소유에 관해 규제를 가하고 있는 법률은 있다. 정기간행물법 제3조 3항이 그것인데 재벌 소유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것도 허점이 많아 재벌은 관계회사, 개인 등의 명의로 얼마든지 신문을 소유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법률을 개정하여 재벌은 신문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족벌 소유도 대상으로 삼아 신문기업의 소유지분 상한을 정해야 한다. 편법의 여지를 막기 위해 관계 기업 및 법인, 그 최대주주 및 임원, 그들의 8촌 이내 친인척을 소유규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신문사의 개인 지분 소유 한도를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적당한가는 따져볼 일이지만, 신문사를 복수 소유할 경우에는 한 신문사의 소유 상한선의 1/2 이하로 해야 한다.

소유구조 개혁에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신문자본, 특히 족벌의 저항이 거셀 것이고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위헌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신문언론의 공적 성격을 회복하기 위한 길은 궁극적으로 소유구조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의 공적 논리와 힘에 따라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고 본다.

방송도 마찬가지이지만, 소유구조와는 별도로 언론사에서 편집권, 편성권을 독립시키는 방안도 유력한 개혁 수단이 될 수 있다. 편집권·편성권 독립은 언론종사자들의 활동이 사주의 일방적 지배 아래 있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음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확대하는 측면이 있다. 언론사 노사의 단체협약, 업계 차원의 윤리강령 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편집권 독립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법률로 보장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즉 각 신문·방송사는 노사 동수 또는 관련종사자의 합의에 의해 편집(편성)위원회를 구성하고 편집(편성)규약을 채택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지금처럼 사주에 의한 편집권 장악보다는 언론의 공적 기능이 나아질 것이다.

정권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전제로 하여 다양한 매체가 존립, 유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언론개혁의 이상일 것이다. 그러려면 언론 시장이 투명하고도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언론시장에서 질적 경쟁, 매체의 다원화는 기대할 수 없다. ABC 제도를 자율에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면 과도기적으로라도 정부당국이 신문통계를 실시해야 한다. 언론사의 경영은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언론수용자를 위해서라도 언론사는 기본적인 사항을 공개하도록 관련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신문의 경우 공동판매제를 유도, 실시하도록 하는 방안도 다원적 언론문화 형성에 도움이 된다. 판매에 대한 과잉투자 없이 질적 차별화에 주력하게 할 수 있는 제도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여론의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별도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IMF 상황에서 언론사간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됨으로써 독과점도 더욱 심화될지 모른다. 과도하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언론사에는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등 언론기업에 대한 독점규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임주웅 언론노련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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