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1월 1998-11-01   2605

어느 부부의 슬픈 사랑이야기

어느 부부의 슬픈 사랑이야기

대학 들어가 2학년, 어느날 사슴같은 눈을 가진 한 여학생이 하루도 못 만나면 눈물이 날 것 같던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 남자 역시 똑같은 마음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시를 써서 그 여학생의 손에 꼭 쥐어주곤 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지금은 정문이라는 딸을 둔 부부가 된 박희영 씨(34세)와 정대연 씨(37).

약 두 달 전 서울에서 열린 인권집회에 나와 지금은 수인이 된 남편의 고통을 전하며 “월세방에서 살아도 정말 행복했다"는 한 여성의 깊은 눈에 고인 눈물을, 나는 보았다. 그녀가 남긴 깊고도 짧은 첫인상에서는 보지 못한, 평범한 부부가 시민운동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이번 인터뷰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부부에게서 무엇보다도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성을 느끼게 되었다. 남편 정대연 씨의 인생은 30대 중반을 이제 갓 넘긴 이 사회의 평범한 중년 남자와 비교할 때 시련의 연속과 사회로부터 받은 가혹함이 유난히 많았다.

지독하게도 가난한 농부 막내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시절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어이없이 퇴학을 당하고나서 겨우 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을 들어가 학생운동을 하며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87년 대선 당시 옥외집회에서 김대중 지지연설을 하다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오늘 바로 자신이 지지했던 김대중정부 하에서 또다른 이유로 수인이 되었다. 이 정도면 그와 함께 산 부인의 마음고생은 만만치 않았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남편없이 가정을 꾸리기에도 벅찰텐데 남편과 가까웠던 지인의 자식까지 키우며 30만 원 생활비로 살고 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물 한방울 안 묻혀보며 고생 모르고 살아온 박희성 씨는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지역운동에 뛰어들어 ‘살기좋은 동네만들기’, ‘쓰레기 청소하기 운동’, ‘꽃길가꾸기’, ‘북한동포돕기운동’ 등 지역 속의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민운동을 하면서 주변사람들에게 항상 모범의 화신이 되었다.

“남편은 결혼 후 제가 가정에 안주하지 않도록 채찍질했습니다. 사람 속에서 나누는 감정의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느끼지 않고 지역 시민들을 위한 여성운동을 할 수 없다며 오히려 제가 밖에서 활동할 것을 권유하곤 했지요. 만약 저희 남편이 저에게 이런 자극과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저는 이혼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 희영 씨는 평범한 다른 부부들보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참 깊다. 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오직 지역운동만을 위해 살아온 남편은 부인과 함께 살면서도 지역 주민들을 위해 보낸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도 부인의 생일이 되면 잊지 않고 항상 작은 선물이라도 손에 쥐어주고, 아는 친구들을 초대하여 기쁨을 안겨주곤 했다. 이런 두사람의 서로에 대한 배려는 비단 부부관계에서만 있지 않았다. 지금도 그들이 월세 20만 원짜리 방에서 사는 이유는 이웃들과 나눔과 베품의 자세로 일관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전세금으로 지역의 청년단체를 만들기 위해 선뜻 400만 원을 내놓고 작은 전세방으로 줄여서 옮기고, 잘 알고 있던 한 노동자가 해고되어 기숙사에서 나와 오갈 데 없자 그의 전세금을 만들기 위해 1,000만 원을 떼어 주면서 정작 자신들은 월세로 옮겨갔다. 그때마다 부인은 남편의 뜻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과 나누면서 사는 삶이 이 땅에서 그들이 사는 삶의 의미임을 믿기 때문이다.

‘빨간 조끼’ 안에 담긴 주민 신뢰

이들이 사는 곳은 전국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울산이다. 96년 4월 420원 하던 버스값이 480원으로 턱없이 올라가자 당시 울산연합의 집행위원장이었던 남편은 회원 200명과 함께 약 40일 동안 시청 앞에서 텐트를 치고 버스요금인상 항의싸움을 이끌었다. 90% 이상의 주민 지지를 받으며 버스회사로부터 13가지의 개선약속을 받아냈다. 단체의 상징인 ‘빨간 조끼’를 입고 회원들이 택시를 타면 요금을 안받는 운전사, 식사를 날라주는 시청 앞의 보험아줌마, 라면을 박스로 가져오는 술집 아가씨까지 예상치 못한 주민의 지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빨간 조끼’가 뜨는 곳에는 뭔가 감동이 있었다. 작년 북한동포돕기운동을 할 때는 조끼 입은 회원들이 가가호호를 돌며 설득하자 주민들은 버스요금인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아파트단지에서 부인들이 쌀을 걷고 금반지를 팔아서 동참했다. 저금통을 들고 나와 1,000원∼2,000원 내는 유치원 꼬마들부터 교사들까지 동참의 열기와 북한의 어려움을 함께 하려는 주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은 약 3억 5,000만 원이라는 성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주민들의 높은 참여가 이루어진 지역운동의 발전이 있기까지는 ‘살기좋은 울산 만들기’ 운동을 이끌어 간 정대연 씨의 헌신성이 컸다는 것을 울산시내 거리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울산의 아침을 열어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아침 7시에 출근하기를 몸소 실천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뜻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열심히 주민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온 이들 부부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쳐왔다. 그것은 또 한 번의 남편 구속이다.

7월 19일 문열어 놓고 잠을 자다 남편은 새벽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끌려가 자신도 모르는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첫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수사대의 말대로 도주의 위험이 있었다면 문열어 놓고 자는 바보같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사회에 대한 분노를 별로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가족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느낌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10년을 하루같이 살면서 본 남편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옥 안에서도 잡아간 경찰을 미워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인과의 인터뷰를 끝낸 후 남편을 만나기 위해 부산구치소로 발을 옮겼다. 0.7평의 방에서 국가보안법의 족쇄에 저항하며 이 땅의 분단 현실을 끌어안고 있는 남편, 그의 빈 자리를 홀로 채워가기 위해 “떨어져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사랑으로 이겨내려고 한다"는 부인의 모습이 마치 한반도 분단의 깊은 상흔같이 다가왔다.

인터뷰를 고사하다가 접견을 받아들인 남편 정대연 씨와의 제한된 시간 속의 인터뷰는 그의 전면모를 알기에 너무 부족했다. 그러나 나는 어두운 면회실의 유리창 너머로 전달되는 따뜻함과 그의 눈이 참 맑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난 주변의 지인들이 표현한 그의 강철같은 이미지보다는 겸손한 사람이 보이는 편안함이 유리창을 너머 전달되었다.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안고 실천하려했던 그에게 감옥 안의 근황을 물었다.

“감옥 안에 들어오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이런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 제가 반성해야 할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에 쓸 가족사진 한 장 조차 찍어보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온 이들 부부에게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 것이다. 남편의 진실이야 법정에서 가려질 테지만, 이들 부부의 떨어져 있는 시간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하지만 둘의 잔잔한 애정은 더 깊은 사랑이 되어 강물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차미경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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