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1월 1998-11-01   1030

노태우가 제 연애를 방해해요

노태우가 제 연애를 방해해요

멜 깁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컨스피러시>란 비디오를 빌려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멜 깁슨은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의 행동은 내가 이미 겪었던 경우와 너무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너무나 순박해 보이는 아저씨가 사무실을 방문하셨다. 그 분은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절실하게 하소연하였다. 우리들은 그 분이 너무 조단조단 얘기를 잘 했기 때문에 참여연대가 나서서 미국과 전두환에게 자기 집에 전파를 쏘지 말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전까진 가혹한 독재정권에 의한 고문피해자라고 짐작했다. 그 분은 이어서 감시를 피하기 위한 나름의 비상조치를 나열했는데 그 장치라는 것이 다름 아니라 멜 깁슨의 그것이었다. 이를테면 냉장고나 음료수를 자물쇠로 잠가두는 것이다. 그것도 미제로.

참여연대의 문을 가장 적극적으로 두드리는 분들은 아마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분들일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연애를 방해하는 배후에 노태우 정권이 있다고 서류뭉치를 잔뜩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접하면서 마냥 웃고 지나쳐 버릴 수만은 없는 것은 그 분들이 하나같이 미국 CIA나 안기부,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곤한 격무에 한바탕 어이없는 웃음을 주는 경우도 있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깨끗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아저씨가 역시 서류봉투를 들고 찾아 오셨다. 참여연대에 제안할 것이 있단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무언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자리를 내드렸다. 조사만 빼고 한자투성이인 자료를 건네며 참여연대 조직이 달라져야 한다고 큰 소리를 치신다. 가만히 듣다보니 대표도 바꾸어야 한다고 하신다. 이건 좀 심한데. 속 말을 가까스로 삼키며 “어떤 분이 적당할까요?"라고 물어보면 바로 자신이란다. 기가 막힌 경우지만,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우기는 경우 보단 낫지 싶다.

요즈음엔 ‘그냥’형이 많이 늘었다. 언로가 막혀 있기 때문일까? 무작정 사무실로 찾아와 하염없이 이 얘기 저 얘기를 늘어놓고 가기도 하고,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전화를 하기도 한다.

“여보세요? 시민연대죠?" “아닌데요." “그럼 어디에요?" “참여연대입니다." “아 그래요. 시민참여연대" “아니요. 그냥 참여연대라니까요." 시민단체는 무조건 시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름을 써야 한다고 확신을 갖고 있는 분들과 말씨름을 계속할 수 없어 바로 용건을 유도하면 그 대답이 어이없다. “거기 뭐하는 데에요, 방송에 나오길래 그냥 전화해봤어요." “그냥요?" 궁금한가 보다. 그냥 전화를 한다. 심지어는 우리 상근자가 전화로 방송이 연결되어 첫마디를 하는데 전화가 온다. “거기 어디에요? 뭐하는 데에요? 방송에 나오더라구요." 그럴 땐 “그래서 어떻다구요. 용건을 말해주세요"라고 따지고 싶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아, 그래요. 저희는 시민단체인데요… 회원이 되어주세요"라고 가까스레 대화를 이어본다. 그러면 “그러죠, 뭐.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하고 쉽게 나온다. “회비를 내셔야 하는 데요" 하면 전화는 툭 끊어진다. 조심스레 그 분들의 처지를 가늠해 보려다가도 우리 의식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얘기를 잘하다가 전화가 민망하게 끊어질 때가 또 있다. 제보나 의견을 받고 이름을 알려달라고 요청하면 어떤 경우에도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또 다른 피해의식이다.

권력이 시민의 힘에서 나올 때, 그래서 그 시민의 힘으로 세상이 바뀔 때 쯤이면 위의 등장인물들이 당당하게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리게 되지 않을까?

박영선 참여연대 시민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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