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7년 01-02월 1997-01-01   1250

참여의 눈

대선과 무심증

대통령선거의 해가 밝았다. 이제 열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아무리 집권자가 권력누수와 퇴임 후를 염려해 갖가지 억제책을 써도, 또 나 같은 소시민이 관심을 갖건 말건 곧 온 나라가 대통령선거 열풍에 휩쓸릴 것이다.

분명 대통령선거란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장래를 가늠하는 더없이 중요한 일일 터인데 나는 불행히도 그다지 관심도 깊지 못하고 그 어떤 기대도 갖고 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내 이러한 무심증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됐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당과 후보군에서 터져나오는 주장이나 외침이 무척 공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와 불리를 얘기할 뿐이지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내놓는 대안과 비전은 별로 눈에 안 띈다.

때가 되면 공약으로 명문화해서 제시하겠지만, 언제는 대통령 출마자들 공약이 없어서 나라가 이 모양인가. 역대 대통령 후보와 당선된 사람들이 내건 공약대로라면 이 땅은 벌써 지상낙원이어야 하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도 눈앞에 보여야 한다.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을 오죽하면 공약(空約)이라고 얘기하겠는가.

내 무심증의 또다른 이유는 선거판도가 뻔하게 눈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은 어느 정당, 누구를 찍을 것이라는 걸 이제 어린 아이들도 다 안다. 나는 선거에 관한 한 대다수 우리 나라 사람들이 두 가지 큰 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한다. 그 병명을 내 나름대로 ‘인연중독증’과 ‘소아병적 이익추구증’이라고 부른다.

국민들이 미래지향적 국가발전과 사회발전적 측면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인물을 선택하지 않는다. 동향인이니까, 동문이니까, 문중이니까 찍어주고, 심지어 웬지 그 정당, 그 사람은 인상이나 느낌이 안 좋으니까 안 찍겠다는 식의 비과학적이고 불분명한 무소신, 무객관, 무책임의 선택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가 되면 나에게 좀더 이익이 따를 것이라고 넘겨짚은 결과로 오늘날 통일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고, 수없는 중소기업이 문을 닫고, 국가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이 뒤틀리고, 군과 관의 부패는 끊이질 않고, 정치판은 여전히 인신공격과 비방의 아귀다툼 속에 하루 해가 뜨고 진다.

더 이상 이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면, 또한 권력에 기생하여 한자리 하거나 그 부스러기를 얻어먹을 사람이 아니라면 이번 대선에는 반드시 ‘인연중독증’과 ‘소아병적 이익추구증’을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당장 나를 비롯해 우리 세대에는 다소 불편하고 부족할지라도, 민족과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자질을 갖춘 후보가 과연 누구인지 눈여겨보자. 갖가지 미사여구로 장식한 공약(空約)이 아닌 공약(公約)의 실천에 대한 검증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가를 꼼꼼하게 따져보자.

그리고 더 이상 지역주의적 발상과 정서를 등에 업고 국민을 호도하려는 정치인은 발디딜 수 없도록 대국적이고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후보들을 바라보자. 어떤 후보가 당선돼야 지역차별 없는 인재의 고른 등용, 중소기업의 국가 경제 기반화, 전인적 교육체계 확립, 그리고 무엇보다 통일을 향한 큰 걸음과 부정부패 없는 공직사회를 건설할 수 있겠는지 냉정하고 차분하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에 두 가지 병세가 호전될 조짐이 보인다면, 그리고 우리 사회 제반 문제들을 꿰뚫어보고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그것의 실천 검증과 결과 책임을 당당하고 분명하게 보장하는 인물이 보인다면 내 대선 무심증은 쾌유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후보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나서 전단이라도 돌릴런지 모른다.

김지현 킴스·원·에이젠시 대표·참여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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