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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 01월
  • 1997.01.01
  • 1009
김 과장의 한탄, 명퇴족이라도 될걸...
출근하는 내 머리 뒤에 대고 아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이이“이번 달에 애들 학원비가 많이 올랐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왠지’ 마음이 아팠다. 출근할 때 문 밖에까지 따라 나와 살며시 웃으며 ‘여보, 일찍 들어와’라고 말하던 아내의 인사를 못 받아본 지 참으로 오래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회사에 도착했다.

뭔가 분위기가 술렁대는 것이 심상치 않다. 직원들이 모여 서 있는 회사 게시판에 가보니 감원 계획이 공고돼 있었다. 각 부서별 대상 인원수와 3개월 가량 남은 시행 날짜가 명시돼 있었다. 총 감원 대상 인원은 110명이나 됐다.

“만년 과장들 목이 허전하겠구만….”

젊은 직원 하나가 가볍게 던지는 말이지만 그 말이 가슴을 죄어왔다. 다른 직원이 그 젊은 직원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짓을 한다. 뒤에 내가 서 있으니 말 조심하라는 눈치였다.

회사의 운영이 계속 흑자를 유지하는 호황이었지만, 곧 감원 조치가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나 마찬가지였다. 2년 전에 회사가 90명을 감원했을 때는 회사가 유례 없는 불황으로 허덕이면서 연간 백수십 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을 직원들 모두가 실감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경영 방침을 ‘다품종 소량 생산 및 판매’ 방식으로 전환하고 신경영의 기치 아래 ‘팀별 실적 평가제’가 도입되면서 사람들에게 예전보다 두 배 쯤 더 일을 시키는 것이 가능해지자, 흑자 경영 속에 남는 인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 이제 올 것이 왔구나…, 명퇴족들의 행렬이 계속되겠구나….’

명예퇴직자들을 ‘명퇴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 사회의 공용어가 되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명퇴족의 하루’라는 코너가 생겼을 정도였으니까….



만년과장들 목이 허전하겠구만!

2년 전, 회사가 90명을 감원한다고 했을 때 노동조합에서 마련했던 교육에서 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앞에 지금 노동조합 위원장님이 앉아 계시군요. 여러분, 노동조합 위원장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입니까? 바로 이런 일 해결하라고 여러분이 뽑아놓은 사람 아닙니까? 회사에서 90명이나 감원을 하겠다고 하는데, 바로 이럴 때 총대 메라고 뽑은 게 위원장 아닙니까? 그러니까…, 회사가 지금 감원을 하겠다고 나오고 있는데…, 위원장이 혼자 그룹 본사 회장실에 들어가서 화끈하게 분신 자살하고 해결해주면 좋겠지요?”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 몇 명이 농담처럼 ‘예’라고 큰 소리로 대답을 했고, 모두들 크게 웃었다. 노조 위원장은 웃는 얼굴인지 찌푸린 얼굴인지 모를 묘한 표정이 됐다. 강사가 이어서 말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여러분들은 백 번 싸워서 백 번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의 싸움에서 여러분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가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회사가 제시한 명예퇴직 조치에 한 명도 응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 회사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유도하거나 강요하더라도, 단 한 명도 명예퇴직 신청을 하지 않고 버티는 것…, 그것이 이번 싸움에서 여러분이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방법입니다.”

처음 약 한 달간은 그 강사의 말대로 잘들 버텨주었다. 회사가 제시하는 명예퇴직 조건은 날짜가 지날수록 상향 조정됐다. 나중에는 명예퇴직위로금을 받으면 월급쟁이보다 몇 배 낫다는 포장마차 하나는 차릴 수 있을 만큼 올라갔다. 그러나, 가만히 당하고 있을 회사가 아니지…, 회사는 어느 날 아주 교묘한 발표를 했다.

명예퇴직 신청을 늦게 하는 사람은 그나마 대리점 운영권을 놓치게 된다는 그야말로 기막힌 ‘쥐약’이었다. 노동조합에서 철저히 단속을 한다고 했지만, 8명이 아무도 모르게 회사에 명예퇴직 신청을 하고 노른자위 지역의 대리점 계약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8명은 차곡차곡 쌓아 놓은 벽돌담의 맨 아래 벽돌이나 마찬가지였다. 삽시간에 직원들의 단결이 무너지고 명예퇴직 신청이 줄을 이었다. 진정으로 명예퇴직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꾸물거리다가는 정말 길에 나 앉게 될 것을 우려한 사람들이 50명 안에라도 들기 위해 몰려든 것이었다.

지난 해 말, 노동법 개정을 앞두고 ‘정리해고제’가 도입된다는 것이 보도됐을 때 동요한 사람들은 오히려 관리자들이었다. 젊은 사람들과 달리 이제 중년의 나이를 넘긴 관리자들은 그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을 테니까…. 나도 과장이지만 명색이 좋아 ‘관리자’이지 언제 회사로부터 ‘나가달라’는 말을 듣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부러워하는 지경이 됐으니 회사에 나와 일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바늘 방석에 앉은 꼴이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간단히 차를 마실 때 옆 자리의 김 과장이 말했다.

“명퇴족이 또 110명이나 생기겠구만…. 대충 여섯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되지?”

“그나마 명예퇴직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야. 퇴직위로금 받아서 포장마차 자리나 하나 보러 다녀야지. 뭐.”

“요즘 그게 아주 좋다던데, 거 뭐야. 차 막히는 길목에서 호도과자 파는 것 있잖아. 자리만 좋으면 중소기업 하나 경영하는 것보다도 낫다는군. 보험회사에 있는 친구가 그러는데 그 호도과자 파는 사람이 한 달에 보험료만 200만 원을 낸데…. 그러니 수입은 얼마나 많겠어?”

“노동조합에 잘 부탁해서 퇴직위로금이라도 왕창 올릴 수 있게 해야지. 뭐. 별 수가 있나….”

그런데 며칠 후부터 회사 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번 감원에는 명예퇴직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번에 개정된 노동법의 ‘정리해고제’가 바로 명예퇴직 조치 없이 바로 회사가 원하는 만큼 언제든지 사람들을 감원할 수 있도록 돼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굳이 막대한 명예퇴직 위로금을 주면서까지 직원들을 내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에서 이번의 감원 조치에 대응하는 교육을 마련했다고 해서 강당에 가보았다. 조합원이 아닌 중간 관리자들까지 거의 모두 모인 듯 싶었다. 노동상담 활동으로 잔뼈가 굵었다는 어느 노동문제연구소의 소장이 나와서 차분한 목소리로 강연을 했다.

“지난 노동법 개정을 생각하면 저는 목이 잠깁니다. 아, 이제 우리는 세계 최악의 노동법을 갖게 됐구나. 겨우 이런 꼴이나 보자고 20년 세월을 노동운동에 바친 것은 아니었는데…. 짧지 않은 20년 세월 동안 노동상담을 해오면서, 이렇게 노동법이 우리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중년의 나이 쯤으로 보이는 강사는 그 말을 하면서 정말로 목이 잠기는 듯했다. 두 시간 가량의 강연이 끝난 후 질문을 받았다. 평소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데 앞장 섰던 인사과장이 그래도 뭔가 아는 사람이어서 유난히 예리한 질문을 했다.

“정리해고제가 근로기준법에 신설되기 전에도 정리해고가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았습니까? 정리해고제가 근로기준법에 신설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사의 답은 이러했다.

“물론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노동법 개정이 진행될 때 어떤 사람들은 정리해고의 기준에 관한 대법원의 해석이 그대로 근로기준법에 신설되는 것 정도는 법 이론상 노동자에게도 손해가 아니지 않느냐, 그런 견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그동안 없었던 ‘정리해고제’가 노동법 내에 신설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한 사실 자체가 기업으로 하여금 ‘아, 이제는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이를테면 ‘정리해고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노동법이 개정되고 나서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치고 ‘아, 이제는 마음대로 근로자를 내보낼 수 있게 됐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정리해고, 노동자에게는 사형선고

다른 사람들의 질문이 또 이어졌다.

“개정된 노동법의 정리해고제 때문에 이제는 회사가 명예퇴직을 시행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목을 마음대로 자를 수 있다고 하던데요. 다시 말해서, 이제 우리는 명예퇴직금이나 퇴직위로금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흉흉한 소문이 지금 회사에 나돌고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 좀 설명해 주십시오.”

강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소 비장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흉흉한 소문은 ‘소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전에는 ‘그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으면 회사가 도산될 정도로 경영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만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됐습니다. 노동자에게 있어 해고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니까, 회사가 망하기 직전까지는 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을 감원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회사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무턱대고 감원을 시켰다가 나중에 그 감원당한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그러면 골치 아파지니까, 명예퇴직금이라도 주고 ‘사표’를 스스로 쓰게 하는 것이지요. 스스로 사표를 쓰고나면 나중에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든요.”

강사는 거기까지 설명을 하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입술을 축였다. 강사도 목이 타는 모양이었다. 다시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지난 번에 도입된 정리해고제에 의하면, 회사가 노동자를 내보낼 수 있는 이유를 정말 여러 가지로 자상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읽겠습니다. 너무 내용이 많아서 좀 빨리 읽겠습니다. 계속되는 경영의 악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조직이나 작업 형태의 변경, 신기술 도입 기타 기술 혁신에 따른 산업의 구조적 변화 또는 업종의 전환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강사는 정말로 그 대목을 속사포처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한 마디 또 덧붙인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정부는 지난 번 노동법 개정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덧붙였습니다. 그동안의 대법원 해석에서조차 없었던 것인데, 경총, 전경련 등 경영계와 재계가 강력히 주장해서 포함됐겠지요. ‘계속되는 경영 악화로 인한 사업의 양도, 합병, 인수의 경우도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재벌은 이제 계열 회사끼리 회사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종업원의 숫자를 절반 정도로 줄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감원할 수 있는데, 회사가 무엇하러 명예퇴직이나 퇴직위로금 제도를 실시하겠습니까? 퇴직금이나 주고 내보내면 그뿐이지요.”

강사의 설명이 끝나고 나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모두들 실낱 같은 희망이었던 명예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게 됐다는 말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노동조합 위원장이 힘없이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말이지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강사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참담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 뾰족한 수를 모두 예상하고 옴쭉달싹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지난 번 노동법 개정의 정리해고제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20년 간 노동상담에 몸바쳐 온 세월이 부끄럽습니다. 20년 동안 쌓인 제 노하우로도 여러분이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아무것도 일러줄 수가 없다니, 기가 막힙니다.”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노동조합 위원장이 마지막 질문이라고 ‘마지막’을 강조하면서 한 마디 했다.

“방금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비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강사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것은 제가 이런 자리에서 말씀 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 후 회사는 감원 대상자 110명을 발표했다. 물론 명예퇴직금이나 퇴직위로금 따위는 없었다. 이제는 ‘명퇴족’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그냥 목이 잘린 노동자들이 사무실 이곳저곳에서 짐을 꾸리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담한 풍경이었다. 그 참담한 풍경을 비단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이 땅 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나도 그 참담한 풍경의 한 구석에서 짐을 꾸렸다.

처음 며칠 동안은 가족들에게 퇴직 당한 것을 숨긴 채 퇴직금을 은행에 예금해 놓고 매월 월급 금액만큼만 찾아서 집에 갖다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며칠 해보았더니 그건 차마 못할 짓이었다. 저녁마다 탄로 났을까 봐 조바심을 내며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던가. 가족들에게 솔직히 말을 하고 그 후 며칠 동안은 공원 벤치에 앉아 소일해 보기도 했다. 사회단체에서 하는 창업 강좌를 들으러 다녀보기도 했으나, 내 나이에 그만한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하루종일 들춰보기도 했으나 딱히 목표가 없는, 할 일 없는, 인간의 독서는 얼마나 무료했던지…. 막노동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보았으나 건장한 젊은 사람들도 남아도는 판에 나 같은 중늙은이를 데려가려는 사장님은 없었다. 늦게 결혼한 탓에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머리를 아직 못 얹어주었다는 생각만 하면 앞날이 캄캄했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러다가 내가 필경 산에 오르고 말지…. 산에 오르다가 인적 드문 호젓한 곳에서 내 몸무게 하나를 능히 지탱할 나뭇가지를 찾고야 말지…. 그런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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