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화, 시민사회, 시민운동

한국의 민주화, 시민사회, 시민운동

민주화와 시민사회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있어서 시민사화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매우 넓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형성과 제도화에 있어서 그 핵심적 주동력이 사회를 구성하는 양대 영역 중 국가보다는 시민사회로부터 발원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한국에서 민주화의 과정이 시민사회에 대해 갖는 함의는 무엇이었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 그 함의나 영향력은 양면적인 것이었다.

즉, 민주화 과정은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기반으로서의 시민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정치적·사회적·이데올로기적 제약의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하였다. 현재의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구체제 하에서의 과두적 지배구조는 약화되었고, 시민적 정치참여의 기회는 확대되었다.

이를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부문적 확대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과거의 폭압적인 군부 관료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지금의 부문적 민주화를 가능케한 원동력이었던 사회세력들과 그들의 운동에 대한 파편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즉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없이 민주화의 완성을 말할 수 없다고 할 때, 지금까지의 민주화는 그러한 이행의 주도 세력을 배양해야 할 시민사회를 동결시켜 왔다. 시민사회의 강화와 재편성, 그리고 시민운동의 조직화와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연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시민사회는 국가와 개인·가족 사이에 존재하며 양자를 매개하는 중간 층위로서의 국가에 대해 자율성을 지키면서도 사적 관계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공공의 문제에 대한 시민적 개입을 통해 창출되는 공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운동은 시민들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합적 행위이며, 시민교육은 시민들이 그러한 집합적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와 사회에 대해 학습하는 일체의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민주화의 과정이 가져온 시민사회의 내용은 이러한 이념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민주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구체제 하에서 그나마 국가개입을 통해 힘겹게 유지되어 온 최소한의 시장질서와 집단 간의 규범을 형해화시키는 자유화와 시장원리의 준수라는 신자유주의 내지 신보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 사적 이익의 집단적 표출을 목도하게 된다.

김영삼 정부의 민주화와 시민운동

‘작고 강한 정부’라는 김영삼 정부의 언술의 정치가 정작 국가가 강해야 할, 재벌을 중심으로 한 사적 이익체들의 지대추구적 행위에 대해서는 너무도 유약하고, 국가가 새로운 유인체계를 제시하고 체제 내로 끌어들여야 할 주요 사회 집단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억압적 조치들을 온존시키는 구체제적 특징을 드러낸다. 사회의 핵심적 생산집단인 노동자의 집단적 정치참여를 봉쇄하는 법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제약의 지속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대가 실제로 가져온 것이 과거의 또는 새로운 기득세력의 이익확대 이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시민사회를 시장과 시장에서 우월한 힘을 갖는 그룹들만이 주도하는, 그러나 시장에 대응하면서 공생적 사회를 창출하려는 사회의 힘은 극도로 약화된 경제사회를 협애화하면서 소수 엘리트 지배구조를 영속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민주화는 군부 권위주의로부터 비롯된 정치적 지배의 틀의 변화는 가져왔으나, 민주적 공고화의 요건인 사회적 운영원리의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

이러한 변화된 지형에서 시민운동은 민주-반민주의 양극적 대립구도가 가능했던 시기의 ‘전면적 부정’의 운동이 아닌 ‘비판과 참여’의 운동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이제 체제의 비판은 대안의 조직화와 병행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사회주의 붕괴와 냉전질서의 소멸은 단지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민주화과정에서의 ‘조직화된 대안’의 범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 사회주의라는 대안은 분단과 전쟁을 통해 봉쇄되어 왔고, 그 모델의 세계적 수준의 총체적 실패로 인해 이제 그 논의 자체가 극히 비현실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주의와 함께 근대적 사회조직의 이념이자 정책인 자유주의의 한국적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기존의 한국의 자유주의는 냉전적 반공주의와 결합된 권위주의의 외양 이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대안의 모색은 한국판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 하는 것일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조직화해야 할 대안은 서구 자유주의의 이념적 원리에 바탕을 준 ‘개혁적 자유주의’이며, 그것은 시민사회의 재편성 뿐만 아니라 대안적 야당의 형성을 통한 정치사회로의 적극적 진입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 달리 말해, 우리가 ‘거리의 정치’라고도 부를 수 있는 밑으로부터의 집합행위에 압도적으로 의존하였던 ‘운동의 정치’가 민주화 과정에서 극도로 약화되기에 이른 반면, 구체제 하에서는 밑으로부터의 위로의 정치와 위로부터 밑으로의 정치의 한 좁은 통로에 지나지 않던 ‘선거의 정치’가 정치사회의 확대와 함께 그 중요성이 배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 체제로의 침투는 필수적이다.

자유의 문화-참여, 규율, 이니시아티브의 실천

민주화에서의 정당의 역할이 격변적 단절이나 총체적 해결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당연히 민주주의는 집단적 학습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즉, 개혁적 자유주의는 시민들에게 민주적 가치를 교육하고 실천하는 하나의 자유로운 학습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편화되지 않으면서도 다원성을 유지하는 사회, 각 사회집단이 치룬 인간적 비용에 대해 상응하는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되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발전을 지향하는 사회,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희원하는 소망스런운 정치공동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건설은, 페루의 작가 바르가스 요사가 말하듯이 우리가 “자유의 문화”를 창출할 때 가능할 것이다. 자유의 문화는 개인적 책임의식이 그 중심을 이루며, 모든 문제해결을 국가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고 개인 각자가 참여, 규율, 이니시아티브를 실천하는 것을 중심내용으로 한다. 민주주의의 건설은 궁극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최장집(고려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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