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과 교육자율화

대학개혁과 교육자율화

‘5·31교육개혁안’ 발표 이후 앞으로 대학교육의 자율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확대될 전망이다. 이때 철저한 시장원리가 도입돼 강자의 논리가 대학교육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도 커졌다. 대학교육의 자유화에 관련한 여러 문제점을 진단하고, 선진교육의 사례를 알아본다.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는 지난 5월31일 ‘교육개혁방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발표된 것이기에, 정부의 ‘신교육정책’으로도 간주할 수 있는 이 개혁안에는 사실 획기적이라 할 만한 세부안들이 망라됐다. 정책의 기조는 각급 학교의 교육을 다양화, 자율화, 양질화하고, 교육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우리 교육을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교육이 안고 있는 망국적 현실의 핵심고리에 해당하는 대학입시 위주의 획일적 교육과 과열경쟁, 학벌주의 등을 혁신함에 있어서 대단히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5·31 신교육정책’이 실질적으로 ‘지속성’ 있게 추진·집행된다면, 우리 교육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학벌을 위해 공부하고 오직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그릇된, 낭비적인 교육, 학습, 진학풍토는 이제 가라앉게 될 것이다.

획기적인 5·31 신교육정책

5·31 정책안들 가운데 대학과 관련하여 가장 획기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대학입학 전형 및 정원의 자율화라 할 수 있다. 이를 살펴보면, 우선 국·공립 대학을 제외한 사립대학에서는 ’97학년도부터 – 비수도권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 대학 정원을 자율화하여 정원 규모나 모집 시기를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이와 함게 대학 설립도 단계적으로 자율화하여, ’96학년도 비수도권 지역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한편, 국·공립대학에 대해서는 ’97학년도부터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대학별 본고사를 폐지하는 대신, 고등학교에서 작성된 ‘종합생활기록부’를 필수 전형자료로 삼도록 했다. 이 기록부에는 총점 위주의 현행 내신제를 학생의 다양한 적성, 인성 및 공통과목과 진로에 따라 이수한 선택 교과목의 성적 등이 반영되며, 기록내용에 대한 입시 반영비율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또 학생들이 여러 개의 전공을 가질 수 있도록 최소 전공인정 학점제를 도입, 전공필수부담을 총이수 학점의 1/4~1/6 수준으로 줄였으며 대학의 편입학을 용이하게 했다. 그리고 학점은행제 및 시간제 학생등록제를 도입하여 언제 어디서나 객관적으로 평가 ·인정된 교육과정을 이수한 경우 학점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만일 이상의 정책들이 제대로만 실현된다면, 사실상 정부의 의도대로 과열, 경직된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 학습, 진학풍토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책들을 통해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지금보다 더 열악해지고 심각해질 소지가 있다. 그것은 이미 대학발전기금 모금을 비롯한 대학간의 치열한 살아남기 경쟁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듯이, 교육이 상품시되고 대학교육이 시장경쟁원리에 내맡겨짐으로써 생겨나게 될 각종 부작용들이다.

대학교의 자율화와 상품화

정부는 대학운영과 설립을 자율화하는 한편, 대학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선별적인 재정지원을 펴겠다고 했다. 이는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을 잘 보여주는 정책인데, 소위 ‘경쟁력 있는 대학’은 지원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대학에 대한 선별적인 재정지원정책이 낳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만일 정부가 국영기업과 재벌기업만 지원하는 반면, 재력 없고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은 지원하지 않는다면, 과연 정상적으로 살아남을 중소기업이 몇이나 되겠는가. 중소 사립대학들은 유감스럽게도, 재정능력이나 경쟁력의 면에서 중소기업과 다를 바 없다. 도산하여 ‘문어발’ 대학에 합병되지 않으려면, 특히 중소 사립대학들은 교육내용의 면에서 경쟁력 있는 교육상품(?)을 개발해내야 함은 물론, 이곳 저곳에 발전기금을 구걸(?)하고, 기부금입학제를 도입하고, 등록금을 인상하며, 인건비 등 비용을 절감하는 묘안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대학교육에 철저한 시장원리가 도입되는 것이며, 이로 인해 학교구성원들 사이의 이해대립과 갈등은 기업에서처럼 첨예해지고 강자의 논리가 대학교육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교육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소위 교육상품이 다양해지고 고품질의 상품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지는 점이 있기는 하겠지만, 학비 부담이 부담스러운 계층에게 이 새로운, 비싼 교육상품들은 종전보다 더 심한 고통과 차별화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최소 4,000만 원 짜리 졸업장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은 매학기 20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을 내고 있다. 책 값, 회비, 용돈 등 월 30~50만 원 가량의 비용을 합친다면 연간 약 1,000만 원 정도를 들이며 대학을 다니고 있다. 대학졸업장의 가격은 이렇게 보면 약 4,000만 원에 해당하며, 여기에 4년이라는 시간과 정력을 비용으로 계산하여 합친다면, 그보다 훨씬 값이 비싸다고 보아야 한다. 정부의 신교육정책이 실현되는 경우, 이러한 등록금 부담은 더 늘어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학교는 그 만큼의 등록금을 받아야 그나마 최소한의 대학운영을 해나갈 수 있다. ’94년도 사립대학의 경우 운영수입의 70% 가량을 학생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국립대학의 경우도 50% 가까이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그 정도 만큼 ‘수익자 부담원칙’이 사립과 국립에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이 많이 오지 않으면 운영이 어렵게 되고, 학생을 무제한으로 뽑으면 그만큼 사정이 좋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처럼 정부가 교육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맡기는 경우, 돈 있는 사람만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되는 문제가 지속된다. 만일 이런 문제를 정부가 개입하여 조정하지 않으면, 결국 정부는 교육에 관한 한, 1인당 4,000만 원의 대학 교육비를 충당할 수 있는 중상류층 자녀들의 이익만 실현되는 것을 방조하는 셈이 된다. 잘 사는 집 아이들만 예뻐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대다수의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1차적으로는 최소 4,000만 원 짜리 대학졸업장을 응시자격 요건으로 내걸 것이며, 그 가운데 하위권 대학이나 지방대학의 졸업장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제 값을 쳐주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배부른 장사인가. 평균 4,000만 원 짜리 고급의 노동력과 인력, 그리고 고급의 기술과 지식을 공급받는 대표적인 수익자, 기업들과 국가기관들은 부담금을 내지 않고 이익만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입시지옥으로부터 국민들을 해방시키고 국제화·정보화 시대에 부응함으로써 소위 ‘교육복지국가’를 이룩하겠다는 정부의 신교육정책 기조는 한편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올릴 것으로 전망되지만, 새로운 형태의 부작용과 병폐들을 수반하며 진행될 것이다. 대학 자율화 정책을 통해 정부가 대학교육에서 거의 손을 뗀다면, 교육은 자유경쟁 자본주의 하에서 벌어질 수 잇는 무정부주의와 빈익빈 부익부, 그리고 부패현상 등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이며, 정부는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 하는 항변들이 제기될 것이다.

교육선진국 독일의 학제

이런 점에서 선진국의 대학교육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독일의 사례를 보자. 독일의 경우, 초·중·고·대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학교교육은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 6세부터 18세까지 12년간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인력수급의 채널이 되는 교육과정은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취업·기술 과정이고 하나는 고등교육과정이다.

취업과정은 10년에 걸친 초·중등 학교 과정으로 되어 있으며, 졸업 후에는 곧바로 취업한 상태에서 무상 의무교육인 직업학교를 2년간 더 다녀야 한다. 아니면 기술고등학교에 진학하여 2년에 걸친 무상 의무교육을 받고 고급기술직으로 취직한다. 고등교육과정(김나지움)은 일반 중고등학교로 9년으로 되어 있으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초등과정 4년을 합치면 13년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일반 정규대학에 진학할 자격이 생기는데, 의학, 경제, 경영, 법학 등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입학 시험도 없다.

대학들은 종교계 학교 등 특수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주립대학, 즉 공립이며, 등록금이 거의 없는 교육이 이루어진다. 대학 진학 인구는 진학 적령기에 해당하는 인구의 1/3정도로, 1990~91년도의 경우 대학 신입생은 31만8,00명이었고, 대학생 전체 인구는 170만 명에 달했다. 통일독일의 전체인구가 7,900만명선이라는데, 대학생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2%인 셈이다. 대학에서는 이런 숫자를 무상으로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등록금뿐 아니라 법에 의거해 광범위한 생활비도 보조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활비가 모자라는 학생들의 경우는 연방교육장려법(Baf G)에 따라 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 가운데 1/2은 장학금으로 처리되고 나머지 1/2은 학자금 융자로서 나중에 취업한 이후 갚아나가도록 되어 있다. 1991년도의 경우, 구동독지역의 대학 신입생 가운데 3/5이 이 장려금을 받았으며, 구서독 지역의 경우는 1/5 정도가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해서 구서독 지역의 경우 노동자가정 출신의 대학 신입생이 1952/53학년도에는 경우 4%에 불과했으나, 1987년 여름학기에는 19%에 이르렀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독일의 대학정책을 현재의 여건상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대학교육이 이번 대학 개혁에 내재하고 있는 ‘자율화로 포장된 대학교육의 상품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주목되어져야 한다.

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권한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신교육정책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며, 교육에 대해 정부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권한을 특히 재정적인 면에서 강화해야 할 것이다. 교육도 기회이자 복지라는 관점에서 정부는 ‘소외된 계층’에 대해 직·간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국민의 세금으로 공평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기업과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많이,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는 세금을 적게 거두어, 대학교육 기회를 공평하게, 교육을 원하는 수요자에게 공평하게, 배분해주어야 한다. 이 점에서 독일, 프랑스 등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대학을 대부분 국립으로 하여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국가경쟁력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유팔무(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이며 참여연대 정책위 부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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