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장 개방과 국가경쟁력

교육시장 개방과 국가경쟁력

다가올 교육시장 개방은 한국 교육자본의 잠식 및 문화 침탈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최근 ‘교육개혁안’도 발표됐지만 교육시장 개방을 맞아 한국 교육의 제자리를 잡는 데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을 살펴본다.

오늘날 우리는, 오랫동안 획일화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민족문화가 유실된 상태에서, 산업사회의 병리적 증후군과 외래 물질문명의 무분별한 수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부실공사와 관리소홀로 한강다리가 무너지고, 가스폭발로 대형 참변이 잇따르고 있다. 그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신판 고려장이 나타나는가 하면, 심지어는 조기 유산상속을 위해 자식이 부모를 살인하는 패륜이 저절러지는 등 반사회적 범죄와 사건도 계속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적 없는 X-세대 문화가 등장하고, 왜색 짙은 풍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민족문화의식의 미약함이나 윤리 실종 및 불감증 같은 병리적 현상들 이면에는 그 근본 원인으로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의 교육모순이다.

왜곡된 교육 현실과 폐해

교육은 공동체 속의 구성원에게 앞 세대의 유산인 지식을 가르치고 당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토록 하며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한다. 또 한편으로 그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공동체 속의 개인으로 성장토록 가르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런 교육의 본래 목표가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보편정신(또는 시대정신, 역사정신) 속의 자기실현(또는 개성완성)이 형성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한국교육은 보편정신 속의 자아실현자를 배출함으로써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통한 사회적 기여로 나타나기보다는, 왜곡된 자아실현을 통한 사회적 폐해 끼치기나, 자아상실로 인한 사회적 폐해 낳기, 자아상실과 사회 무기여로 나타나는 경향이 농후했다.

사회 건강지표의 하락과 야수 같은 개개인의 탐욕은 제도에서 비롯되지만 잘못된 교육에서도 기인한다. 현행 한국의 초중등교육은 입출력 매개교육으로 특징지어도 별무리가 없다. 입력자료는 교육부 심의필 교과서이고, 출력결과는 중고교 및 대학입시 내용이다. 교사는 입시라는 유용한 출력결과에 맞추어 입력자료를 매개하는 기능인의 역할만 할 뿐이다. 대학교육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과정에서 비판적 태도와 창의성은 유실되고 공동체적 규범 의식은 실종된다. 유용한 지식을 획득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실용적 지식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는 사회적 의식이 결여된 사회인만을 다수 배출했을 뿐이다. 그나마 우리 사회를 이만큼 지켜온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교육열과 한국인의 재능 때문이다.

교육시장 개방과 서구문화로의 종속

전반적으로 왜곡되어 있었던 한국의 초중등 및 대학 교육이 김영삼정권의 ‘5·31 교육개혁안’으로 변화 조짐을 맡고 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때늦은 까닭에,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로 인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등장과 그에 따른 교육서비스 분야의 개방은 당장 많은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UR은 미국 등 선진국이 자본 및 농업, 서비스 분야의 비교 우위를 무기로 세계경제를 장악하려는 패권전략의 하나다. 이로 인해 한국 농업이 피폐화됨은 물론, 교육서비스의 개방과 침투로 한국 교육계가 유린당할 것임도 자명하다.

예컨대 미국은 사회체육과 어학연수원, 예체능학원 및 소규모 대학분교 설립에 초점을 맞출 태세다. 그리고 영국은 문화원을 중심으로 대도시에 외국어 교육을 담당하게 될 사무소를 개설하고, 일본은 입시학원 진출을 위한 타당성 검토를 이미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교육부가 금년부터 개방하겠다고 발표한 전문학원의 시장규모가 1조3,000여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다른 교육서비스 분야까지 감안한다면 사교육비가 유독 많은 한국의 교육자본이 상당 정도 해외로 유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육시장이 대거 잠식당함으로써 국내 영세 교육관련 서비스업이 도산하고 자본 유출이 상당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문제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외국의 직접적 교육서비스에 의한 문화 침탈이 야기됨으로써 민족문화의 고유한 전통이 흐트러지는 것은 물론 그 침탈이 은연중에 지속됨으로써 문화 지배와 종속이 점차 당연시되는 마비 및 동화 현상을 초래할 거이라는 점이다.

국제화와 세계화, 하지만 민족문화가 위험하다

한국교육의 중요과제는 WTO체제 아래서 민족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국가경쟁력 강화에 부응하면서도, 민족의 주체성과 고유문화를 창달하고 보편정신 속에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학생을 사회에 배출하는 것이다.

국제화와 세계화의 추진도 이런 문제의식의 부분적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국제화란 통상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선진국의 문명과 학문 및 과학기술의 습득을 통해 선진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진국의 모든 것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이므로 서구문명으로, 좀더 정확하게는 미국문명으로 획일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문명으로 통일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 학문이 도태될 수밖에 없게 된다.

가령 세계화를 국제화와 다른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다양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보편적인 것의 공유를 제외하고, 각 국가나 사회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 학문, 기술이 그 민족의 역사와 특성에 따라 창조적으로 발전하여 세계무대에서 대등한 고유가치를 띤 것으로 교류되어야 한다.

우리가 추진하는 세계화 작업은 한편으로는 보편적 학문과 과학기술에 관한 한 국제화를 거쳐 그 다음 단계인 창조의 대열에 들어서는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속에 농축되어 있는 문화와 예술과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고 더 나아가 창조적으로 살려내어 서구의 그것과 견주어 당당하게 지구촌에 내놓은 것이다.

정보화 시대, 세계화의 단계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우선 기존의 정보를 수용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잡다하고 난무하는 정보를 용이하게 인출하거나 기억하도록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하며 조직화하는 능력이 컴퓨터의 프로그램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존의 보수적 지식이나 정보가 갖고 있는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건강한 비판적 안목이 배양되어야 하며, 비판에 의해 도려내진 영역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서 창의성을 통해 채워내는 것이 긴요하다.

교육개혁안의 주된 흐름은 시장경쟁원리

최근 교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5·31 교육개혁안’은 세계화와 정보화 시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과정도 포함되고 있다. 학교급별에 따라 체계화된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지식중심의 도덕·윤리 교육을 실천중심의 교육으로 개선하며, 이를 위해 학생의 모든 활동사항을 ‘종합생활기록부’에 기재하여 상급학교 입학시 필수 전형자료로 사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성교육의 방법으로 유치원에서 국교 3학년까지는 예절과 기초질서 및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국교 4학년에서 중학교가지는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등, “전 교과목에 걸쳐 도덕·윤리 교육이 구현되도록 함으로써 학교를 도덕적 분위기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창의성의 함양을 위해서는 교육과정의 개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첫째로 초·중등학교의 필수 과목을 축소하고 그 대신 선택과목을 확대하며, 둘째로 컴퓨터·영어·한자·세계문화사 교육 등을 강화하며, 셋째로 여러 단계의 수준별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 안들은 역설적으로 현실속의 실현과정에서 좌초하기 알맞도록 전체적인 흐름과 상반되게 형성되어 있다. 교육개혁안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흐름은 시장경쟁원리다. 이 원리에 따른 제도로는 학교설립 준칙주의와 자립형 사립고의 허용, 자율화라는 이름 아래 조성된 대학간 무한 경쟁제도 등이다.

준칙주의한 학교의 설립 목적과 특성에 맞춰 최소한의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키면 자유롭게 학교 설립을 허용하는 것으로, 과거 부실한 교육기관의 난립을 막기 위해 규제 위주로 운영된 ‘학교설립심사위원회’의 심사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이것의 문제는 난립의 우려다.

이미 시설이나 교원 처우에서 일부 사립고의 그것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한 전문대학들이 4년제로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소규모로 여러 형태의 신규 대학설립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 개악을 거듭해온 사랍학교법 등 제반 교육법 아래에서, 반사회적·규범적 학교 운영에 젖어 있던 많은 사학재단이 경쟁시의 도태를 두려워하여 학교를 건강하게 운영하리라는 것은, 그럼으로써 “학교가 도덕적 분위기로 전환된다”는 것은 허망한 낙관론의 극치다.

‘자립형 사립고교’의 허용은 사실상 귀족학교의 출현을 예고한다. 게다가 권장사항인 사립고의 운영위원회 설치도 우려된다. 종합생활기록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려는 운영위원들의 순수치 못한 의도가 자칫 귀족가문의 기부금을 유도하는 창구로 전락함으로써 계층간 위화감을 극도로 조성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자립형 사학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다른 학교로 돌림으로써 전체적 형평을 맞출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 수십 학교에 대한 지원금이 나머지 수천 학교에 돌려진다고 해서 얼마나 일반학교 교육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되겠는가? 한국의 교육열이 상당한 정도로 학벌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하는 데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교육재정의 GNP 대비 5%의 확실한 확보 없이 그리고 기존 사학에 대한 지원과 대책을 빠트린 채 자율화란 이름 아래 시장경쟁원리를 도입한다는 것은 정부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자 교육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중고교서 수준별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받고 대학에 들어와서 전체 이수학점(대략 120학점)의 1/4에서 1/6인 30학점 정도(지금의 절반 수준)를 이수한 것으로 전문지식을 습득했느냐도 문제가 된다. 한문과목의 경우 교사 한 명이 1,000여 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에서 학생 개개인의 학업성취도를 종합생활기록부에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문제 이외에도 수준별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개설한다는 것이 영어·수학·국어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인성과 창조성 교육은 구두선?

결국 인성과 창조성교육은 선언에 불과한 것이 됨으로써 세계화 추진은 허울좋은 개살구로 빛바라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민족 고유의 문화, 예술, 학문 창달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거의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것도 큰 문제다.

그렇다면 현정권이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의 주장과는 달리 국제화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능력이 떨어지는, 재력 있는 부모를 두지 못한, 대도시에 살고 있지 못한 학생을 희생시키더라도,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많은 사학을 희생시키더라도, 인성과 창조성 교육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와 예술과 학문을 창달하지 못하더라도, 능력있는 학생과 대학을 주축으로 선진 지식과 첨단 정보를 빠른시일 내에 흡수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와 교육은 분명히 다르다. 시장의 논리에만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재정적 부담을 확실하게 더 짊어지고, 교육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해서 학교 구성원에 의한 자율성을 신장시켜야 한다. 그런 후에 세계화와 건강한 사회형성에 부응할 창조적, 도덕적 인간 창출에 한국교육의 근본을 두는 개혁을 이루어내고, 고육시장 개방이 이루어지더라도 외래 문화 침탈로 인한 문화 및 학문 주체성의 약화는 초래되지 않을 것이며 교육을 통한 민족의 장래도 밝게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한면희(성균관대 철학과 강사이며, 참여연대 운영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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